메뉴 건너뛰기

close

"정치는 물과 같다. 일직선으로 가는 강을 아직 못 보았다. 갈지자로 바다로, 바다로 향했다. 정치는 강의 흐름과 같다고 생각한다."(<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사진집> 80쪽)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005년 5월 한 지인에게 한 말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정치의 목적이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삶과 소박한 행복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말했다"(2013년 5월 19일 기사 참고)고 한다. 직업 정치인'에서 '지식소매상'으로 돌아간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떻게 살 것인가>(아포리아)에서 "정치를 하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정작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시간은 언제나 부족했다"면서 "왕의 심기를 살피는 신민처럼, 변덕스러운 여론을 언제나 최고의 진리로 받들어야 하는 정치인의 직업윤리가 너무 무거운 짐으로 느껴진다"고 밝혔다.

어떤 정치인은 "정치는 생물"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잘 해석한 것인지 몰라도, 이들 말을 종합하면, '다양한 생각을 통해,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현실 정치에서 다양한 생각은 존중받지 못하고,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해주보다는 정치에 혐오감만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8일 국회시정연설을 했다. 지난 1년 동안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국정원 부정선거에 대해 '혹시나' 작은 해답이라도 제시할 줄 기대했지만, '역시나'였다. 야당이 요구한 특검을 거절했다. 정보기관이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선거에 개입했는데도, 자신은 도움받은 것이 없다는 인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정국은 더 꼬일 것이고, 시민들은 더 외면할 것이다. 대통령이 정치를 더 꼬이게 만들어 버렸다.

즐거운 정치는 없을까? 정치인에게 즐거운 정치를 바라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일까. 우리에게 하늘에 별 따기 같은 정치인이 있다면 2013년 대한민국 현실을 보면서 좌절하지 말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정치의 즐거움>
 <정치의 즐거움>
ⓒ 오마이북

관련사진보기

"서울시장인 지금은 시민의 삶을 행복하게 바꾸는 재미가 바로 저의 원동력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저의 재미이기도 하지만 시민들의 재미이기도 하다고 감히 말씀을 드립니다. 저에게 바람이 있다면 정치를 통해 시민들에게 재미와 즐거움, 행복을 드리는 것입니다. 경쟁과 상처, 실망과 분노가 아니라 정치 때문에 시민들이 웃고 즐거우셨으면 합니다."(<정치의 즐거움> 중)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 패배한 민주개혁세력이 절망할 때 <오마이뉴스> 오연호는 "박원순의 사전에는 절망이 없어 보였다, 쉼 없는 희망의 출처는 과연 어디일지 궁금했다"며 박원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박원순은 "정치 때문에 시민들이 웃고 즐거우셨으면 한다"고 답했다. 그 질문과 답이 한 데 모여 <정치의 즐거움>(오마이북)이라는 책으로 나왔다.

"정치가 즐겁다"니 매우 생경하다. 우리나라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정치는 즐거움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박원순은 인민이 즐기는 정치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정치권은 박원순을 정치권으로 불러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오연호도 "박 변호사님 같은 분이 정치를 하셔야죠"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은 "시민사회가 더 맞다"고 했다.

정치는 즐거울 수 없다? 이 책을 보시라

시민사회가 더 맞다고 했던 그가 정치권에 발을 내딛게 된 계기는 2011년 8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반대를 밀어붙이면서부터다. 그는 책에서 "끝없이 쏟아진 폭우로 동료들 눈치를 보지 않고 그렇게 하루 종일 울었다"며 "한반도의 눈물을 그치게 하기 위한 내 자신의 역할과 운명에 대해서 묵상하고 또 묵상했다, '이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고 회상했다.

언뜻 보기에 원대한 꿈이고, 엄청나게 큰 일을 하겠다는 다짐 같지만 박원순은 서울시장에 취임한 뒤 '보도블록 혁신 10계명'을 같은 아주 작은 일에 충실했다. '큰' 것을 좋아하고, '(서울시장)쯤 되면 조국과 민족의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박원순은 서울시장 자격이 없었다. 한 때 '박원순 저격수'로 이름 날렸던 강용석 변호사(전 한나라당 의원)은 "박원순 시장은 철학이 없다"고 비난한 바 있다.

그는 지난 8월 29일 종편 JTBC <썰전>에 출연해 "서울시장으로서는 너무 작은 일"이라며 "그건 공무원들이 할 일이다, 서울시장은 큰 문제를 잡아서 굵직한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원순은 "작은 것이야말로 시민을 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시장도 구청장도 공무원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거죠. 작은 것을 중히 여기는 문화가 없었고, 시민의 이익을 가장 최우선으로 두는 자세도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작은 일을 제대로 하는 문화'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집중해서 작은 일부터 하나하나 고치면 다른 행정 영역에도 이런 문화가 파급될 것이라고 봅니다."(<정치의 즐거움> 중에서)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은 자주 쓰면서 왜 박원순의 "작은 일부터 하나하나 고치면 다른 행정 영역에도 이런 문화가 파급될 것"이라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걸까. 작은 일 하나하나를 귀하게 여길 줄 모르면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할 수 없다. 자칭 애국세력들은 국익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작은 것이란 인민의 자유와 권리가 될 경우가 많고, 국익은 자신들 사익일 경우가 많다. 그러면 인민은 고달퍼진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즐겁지 않다.

박원순은 작은 것, 즉 시민이 바라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니 시민도 즐거워지고, 자신도 즐거워진다. 그는 "시민참여 형정 실험, 마을 공동체 만들기, 역사도시 보존과 활용, 시민의 삶의 질 확보, 협동조합 지원, 원전 하나 줄이기 같은 일은 시대의 요구이자 화두이면서 제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도 맞으니까요"라며 "정말 신나게 일하고 있습니다"고 말한다. 일이 신난다니…, '일벌레 박원순'답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작은 것을 귀하게 여기기에 이런 것도 가능하다.

정치를 즐겁게 만들다

박원순은 "최선을 다해 실천하다 보면 그 과실을 지금 내가 따 먹지 못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우리의 것이 된다고 믿게 된다"며 "5초 후에 사라질지라도 강물에 돌팔매를 던져 보자, 내일은 온다"고 말한다. 여기에 답이 있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의 영역에서 반드시 자신이 그 열매를 따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힘들어질 수밖에. 밀알이 돼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삶을 살려고 하면, 결국 그 열매를 더불어 함께 따 먹을 수 있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박원순은 말하고 있다.

지난 대선 때 김성주 공동선대위원장은 "박 후보는 미혼의 몸으로 국가의 일을 책임졌고 국가와 결혼한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도 이를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어떤 때는 국가를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부정당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생각마저 한다. 5·16 군사반란을 '구국의 결단'이라고 하는 말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 같은 생각은 작은 것을 귀하게 여기는 박원순과 매우 다르다. 박 대통령이 <정치의 즐거움>을 읽었으면 좋겠다. 야당 목소리는 듣지 않는 '무통(無通)'의 정치는 인민을 짜증나게 한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불행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박원순은 그래도 긍정을 제시한다.

"설령 우리 시대에 빛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지켜야 할 원칙은 지키면서 자신의 신념을 사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름 한 자 없이 사라지더라도 시대의 양심이 요구하는 그 길을 가야 하는 거죠. 운이 나빠서 큰 역할을 못하거나 업적이 알려지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이런 생각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일을 묵묵히 하다 보면 즐겁지 않을까요?"

박원순은 "이름 한 자 없이 사라지더라도, 업적을 남기지 못해도 양심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 즐겁게 될 것이란다. 정치를 즐겁게 해주는 '대통령 박근혜'는 가능할까? 현재 상황만 봐서는 '기대난망'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자. "큰 구호보다 뭔가 작은 결정이라도 시민이 위로가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 그런 일을 해보니 즐거웠다"(<정치의 즐거움> 중에서)는 말이 있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정치의 즐거움-오연호가 묻고 박원순이 답하다> 박원순·오연호 지음 ㅣ 오마이북 펴냄 ㅣ 15000원



정치의 즐거움 - 오연호가 묻고 박원순이 답하다

박원순.오연호 지음, 오마이북(2013)


태그:#박원순, #오연호, #정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