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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열린 청와대 비서실 국정감사 오전 일정을 마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점심식사를 위해 차량에 오르고 있다.
 지난 1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열린 청와대 비서실 국정감사 오전 일정을 마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점심식사를 위해 차량에 오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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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 4년 연속 KDI(한국개발연구원) 법인카드를 사용합니다. 이게 무슨 날이냐. 부인 생일입니다."(김성주 민주당 의원)
"법인카드 사용에 대해 (인사)검증할 때 충분히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청와대 국정감사.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업무추진비 사적 유용 의혹에 대한 민주당 의원들의 공세가 이어지자,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예상 밖의 반응을 보였다. 문 후보자에 대한 인사검증이 부실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김 실장은 고위공직자 추천·검증을 책임지는 청와대 인사위원장이다. 그동안 숱한 인사검증 논란에도 침묵해 왔던 김 실장이 검증 소홀을 시인한 건 처음이다.

"최선 다했지만..." 김기춘, 처음으로 검증 소홀 인정

김 실장은 "문 후보자의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직 시절 법인카드 사적 사용에 대해 저희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모든 사생활에 대해 세세히 검증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며 "앞으로 더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말했다. 

문 후보자는 KDI 재직 시절 수년간 아들과 부인의 생일날 법인카드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관할 근무지를 벗어나 법인카드를 사용하거나 공휴일에 쓰는 등 정부 지침에 어긋나는 사례도 500건을 넘었다.

결국 야당의 반대로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상태다. 민주당은 아예 문 후보자가 사퇴해야 감사원장과 검찰총장 임명에 동의하겠다며 낙마 대상으로 점찍었다. 문 후보자도 지난 12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사적으로 쓴 게 밝혀지면 장관에 임명돼도 그만둔다고 약속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문제는 진화하지 않는 청와대 인사시스템이다. 박근혜 정부 인사에 '참사'라는 말이 따라 붙을 정도로 인사 실패가 줄을 이었음에도 부실 검증은 이번에도 반복됐다.

김기춘 실장은 검증을 제대로 못한 이유로 시간 부족을 들었다. "검증이 비교적 짧은 시간에 중요한 것 위주로 하다 보니 세세한 것까지 검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완벽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검증 부실 시간 부족 핑계... 기본 검증 대상도 놓친 청와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관계자와 답변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관계자와 답변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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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에 대한 점검은 가장 기본적인 검증 대상 중 하나다. 특히 청와대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실패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 취임 전이긴 하지만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인사였던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특정업무경비(특경비) 사적 유용 문제로 낙마했다. 특경비는 법원·검찰·감사원 등 수사나 감사 기관 직원들에게 주는 비공식 활동비인데 2000년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시작된 후 특경비 사용이 문제가 돼 낙마한 사례는 이동흡 후보자가 처음이었다. 이 후보자의 사퇴로 그동안 용돈을 쓰듯 지출하는 관행이 도마에 올랐고, 마찬가지로 공무 처리에 써야할 업무추진비 지출에 관심과 검증 강도도 높아졌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야당 의원들이 의혹을 제기하기 전까지 문 후보자의 업무추진비 유용 의혹에 대해 사실 파악조차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실장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문 후보자의 법인카드 사적 유용에 대해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하다가 밝혀진 사항이어서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고 밝혔다.

때문에 인사 실패가 이어질 때마다 검증을 강화하고 인사시스템을 고치겠다고 했지만 변한 게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성주 의원은 "최근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아직도 청와대 인사위원회가 제 역할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베일에 가린 청와대 인사위원회의 구성과 활동도 문제다. 이날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은 인사위원회에 관한 자료를 제출해 달라고 했지만 청와대는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에 제약이 될 수 있다며 거부했다. 그러자 민주당 의원들은 "인사위원회 구성원을 비공개로 하기 때문에 수첩인사라는 말이 나온다"(김현 의원), "투명하게 인사를 한다고 하지만 인사위 회의 횟수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다"(전해철 의원)고 비판했다.

청와대, '문형표 카드' 밀어붙이기?

청와대는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문 후보자를 놓고 저울질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국정감사에서 김 실장은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했다면 사퇴하겠다'는 문 후보자의 답변을 언급하며 사퇴 수용 여부를 묻는 최동익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국회에서 처리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이 검증 부실을 인정한 데다 문 후보자를 적극 방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자 청와대가 '문형표 카드'를 버리는 수순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이라는 큰 산을 넘기 위해 문 후보자를 희생양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 13일 인사청문회가 모두 마무리 됐고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을 입증할 명확한 증거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문 후보가 낙마할 경우, 청와대 입장에서는 인사 잡음만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밀어붙이기를 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야당 의원들의 공세가 이어지자 김 실장은 "(문 후보자의 법인카드 유용 여부는) 금전의 출처와 KDI 내부 사정이나 관행이 어땠는지 몰라 속단하기 이르다"며 "인사청문회를 거친 후 모든 것을 참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맞섰다.


태그:#문형표, #김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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