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

루시드폴(38, 조윤석)이 2011년 발매한 정규 5집 이후 약 2년여 만인 올 10월 말 정규 6집을 발매했다. ⓒ 안테나뮤직


|오마이스타 ■취재/조경이 기자| "이번 앨범을 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까' 그런 기대를 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이런  음악을 좋아하거나, 이런 음악을 기다렸던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런 분들에게 좋은 음반이 되고 싶어요. 모든 분이 다 듣게 하고 싶은 포부는 없어요."

'가요계의 음유시인' 루시드폴(38, 조윤석)이 2011년 발매한 정규 5집 이후 약 2년여 만인 올 10월 말 정규 6집을 발매했다. 정규6집 <꽃은 말이 없다>는 루시드폴이 6월 중순부터 8월말까지 서울 북촌에 있는 한옥, 즉 자신의 집에서 만든 곡들이다.

이번 6집 앨범은 전 트랙을 어쿠스틱 악기로 녹음해 자연미를 더욱 극대화했으며,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악기 편성에 루시드폴만의 시적인 감동이 넘치는 노랫말로 음악을 채웠다. '검은 개' '강' '나비' '연두' 꽃은 말이 없다.' 등 총10곡을 루시드폴의 설명과 함께 듣는다면 곡에 대한 감성과 이해를 더 극대화하지 않을까 싶다.  

1. '검은 개'

"이번 앨범을 준비하며 처음 쓰게 된 곡이다. 원래 앨범 작업할 때 첫 곡을 쓰기가 되게 어렵다. 약간 워밍업을 하고 뭔가 해야 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첫 곡을 쓰기가 조금 힘들었다. 이걸 완성한 후 그 다음부터는 일주일에 한곡씩 썼다.

'검은 개'는 작년에 집 앞을 지나가는데 집 앞 계단에 굉장히 마르고 새까만 개가 있었다. 보니까 눈물이 말라붙어 있었다. 목걸이가 없는 떠돌이 개. 요즘 서울에 길냥이는 많지만 떠돌이 개는 보기 힘들지 않나. 한참을 보고 있었는데 주인을 찾아 줄 수가 없었다.

너무 배가 고파 보여서 일단 집으로 들어갔는데 개가 서럽게 울더라. 집에 있던 강아지 밥을 들고 그 개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밥그릇에 두고 먹으라고. 근데 계속 울기만 했다. 혹시 이제 나를 경계할 수 있으니 밥만 두고 왔는데 밥을 안 먹고 개는 사라졌다. SNS에 글을 올렸는데 그 개를 정독도서관 어디서 봤다고 누가 올렸다. 떠돌이 개는 맞더라. 그 기억을 담았다." 

2. '강'

"패닉의 '강'을 능가하는지 보자(웃음). 섬진강 생각이 많이 났다. 식구들이랑 섬진강을 간적이 있었다. 하동 근처에 이르렀을 때 섬진강 중류 쯤이었는데 강이 참 좋았다. 상류는 사실 좁거나 급하고, 하류는 강폭이 굉장히 넓다. 그런데 중류는 백사장도 있고 급하게 막 흐르지도 않더라. 그런 강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항상 잔잔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3. '나비'

"올봄에 나비가 많이 보였다. 집 뜰에도 그렇고 공원에서도 그렇고. 그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거 같다. 나비 색깔도 크기도 너무 다양하다. 우리 집이 디귿 모양의 한옥인데 뜰 한 가운데가 푹 패여있다. 나비들이 들어오면 갇혀서 못 나갈 거 같은데 훅 나가더라. 신기하고 재밌는 일이다. '나비들은 아침부터 참 바쁘게 여기저기 좋아하는 꽃을 찾아다니는구나'하고 생각했다."

 루시드폴

루시드폴 ⓒ 안테나뮤직


4. '햇살은 따뜻해'

"난 사실 마냥 밝고 마냥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늘도 좀 있다. 그렇지만 가끔씩은  그늘도 없고 경계도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햇살처럼 따뜻한 그런 밝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 원래 비오는 날과 흐린 날을 좋아하는 편이다. 집에서 서쪽을 보면 인왕산이 있다. 가끔씩 그 산에서 햇볕이 내리쬘 때가 있다. 그때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마냥 행복해진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쓴 곡이다."

5. '서울의 새'

"길거리에 비둘기들이 다니는 걸 보면 참 안됐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데 필사적으로 먹을 것을 찾아다니다가 죽거나 한다. 우리 집에도 새들이 많이 온다. 참새, 박새, 비둘기, 산에 사는 멧비둘기도 온다. 새들 먹으라고 쌀이랑 좁쌀을 종지에 담아서 놔둔다. 비를 쫄딱 맞은 새들을 보면 뭔가 짠하다. '새들이나 사람이나 도시라는 곳에서 잘 날지 못하는구나'."

6. '늙은 금잔화에게'

"국화꽃 계열의 꽃이다. 내가 키웠던 금잔화는 주황색이 굉장히 밝은 금잔화였다. 얼핏 보면 코스모스처럼 생겼다. 봄에 양재꽃시장에 가서 여러 꽃을 사서 뜰에 심었다. 수선화도 심고 물망초도 심고. 금잔화도 보자마자 너무 예뻐서  심었다. 밝고 환한 형광 주황색이었다. 수선화는 봄이 지나면서 졌지만, 금잔화는 굉장히 오래 피었다. 꽃대가 계속 올라왔다. 시든 꽃대를 자르면 또 올라오더라.

가을이 되니까 꽃 색깔이 점점 옅어지고 없던 벌레들이 생기고 이파리가 시들해지더니 꽃을 더 이상 안 피우고 죽어갔다. 맨 마지막에 남은 금잔화가 딱 한 송이 꽃을 피었다. 처음에 심었을 때는 제일 꽃을 안 피우던 금잔화였는데 제일 오래까지 꽃을 피우더라.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나이 들어가는 어르신을 보는 그런 짠함. 또 한편으로는 수명을 다 하고 살 때까지 살아줘서 고맙기도 했다. 한 때의 내 동반자였다." 

7. '연두'

"초록색이나 연두색 꽃은 왜 없을까. 찾아보니까 아주 없지는 않지만 거의 없더라. 흰색·보라색·주황색·빨간색은 많은데 연두는 없다. 잎색과 달라야 벌도 오고 나비도 오고 하겠지만 연두색 꽃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너무 화려하거나 잎보다 튀거나 잘나거나 그렇고 싶지 않다. 사람들은 빨간 꽃처럼 살길 원하고, 더 향기롭고 잘 나길 원하지만 꼭 그게 정답일까."

 루시드폴

"바람 처럼, 귀뚜라미 소리처럼, 비소리처럼 있는 듯 없는 듯 귀 기울이는 사람한테 들리는 그런 노래를 하고 싶다" ⓒ 안테나뮤직


8. '가족'

"작년에 꿈을 꾸었는데 목조 건물 같은데에 식구들이 나왔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냥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표현해야할 불안함인지 모르겠다. 아직 부모님이 살아 계신데 이제 연로하시고 칠순이 넘으시면서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는 몰랐는데 아침이나 밤에 부모님에게 전화가 오면 깜짝 놀라면서 받는다.

가족이라는 관계를 보통 샤방샤방한 사랑의 관계로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선택한 사랑은 아니고 매어 있는 사랑에 가깝다. 결코 버릴 수 없는 대상.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 미움도 많고 상처 주기도 쉽다. 가족들은 주로 걱정·근심·불안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런 꿈을 꾸고 나서 노트에 적어 둔 것을 보고 곡을 썼다."

9. '바람 같은 노래를'

"동네 체육관에서 운동할 때 내가 원하지 않는 음악이 나올 때가 있다. 아주머니들이 에어로빅을 하거나 할 때 나오는 음악이다. 난 내가 원하지 않는 음악은 안 듣고 싶다. 내 노래도 역시 사랑을 받느냐 못 받느냐를 떠나서 누군가에게 지루한 노래가 될지언정 소음은 안 됐으면 좋겠다.

내가 아니라도 충분히 소음은 이미 많은 거 같다. 운전대만 잡고 나가도 온갖 소음이 들리지 않나. 비와 바람처럼, 귀뚜라미 소리처럼 있는 듯 없는 듯 귀 기울이는 사람한테 들리는 그런 노래를 하고 싶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항상 소음에 둘러싸여 있다. 귀가 사실 굉장히 혹사당하고 있다. 음악을 만드는 입장에서 보면 종종 멜로디를 흥얼거리다가다 소음 때문에 금방 까먹어서 귀마개를 한참 하고 다닌 적도 있었다." 

10. '꽃은 말이 없다'

"'바람 같은 노래를'과  이 곡은 기타 연주곡으로 만들었다. 참 미묘한 차이인데 전자는 멜로디랑 가사를 붙이면 노래가 더 좋아질 것 같았다. '꽃은 말이 없다'는 여기에 뭐가 됐든 가사가 붙으면 멜로디와 연주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한곡은 가사를 적고, 나머지 한곡은 연주곡만 담았다. 공교롭게 노래 제목이 '꽃은 말이 없다'다. 제목을 붙였는데 말이 없으니까 더 좋았다. 이적 형님도 '가사 없니?'라고 물으셨다.    

꽃이 피었다가 질 때 그냥 순리대로 살아가고 피고 진다. 동네 길가나 공원에 핀 꽃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봄이면 씀바귀, 고들빼기, 제비꽃도 피고 애기똥도 노랗게 피고 가을엔 코스모스가 핀다. 순리대로 살아가는 꽃들. 애써 스스로를 막 드러내려하지 않고 강요하거나 싸우지 않고 조용히 피었다고 조용히 지는 꽃이 참 좋았다."

 루시드폴

루시드폴 ⓒ 안테나뮤직


* 루시드폴 인터뷰 2탄 '루시드폴..."유희열,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형님"'로 이어집니다.

루시드폴 꽃은 말이 없다 바람 같은 노래를 가족 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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