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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됐다. KBS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말이다. 27일 방송된 18회의 시청률은 32.3%(닐슨코리아, 전국기준).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 고공행진을 기록하고 있는 <왕가네 식구들> 이다. 하지만 시청자는 높은 시청률만큼이나 거센 불편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줄거리가 저질이고 내용이 막장이라는 비난을 한껏 쏟아내면서.

해도 해도 너무한 드라마라는 말이 맞다. 어느 것 하나 말이 되는 이야기가 없다. 왕가네라는 대가족을 중심에 둔 것만으로 보면, 이 작품은 분명 전형적인 홈드라마 스타일이다. 게다가 평일 늦은 밤 시간대가 아닌 주말 저녁에 방송되는 드라마가 아닌가. 하지만 <왕가네 식구들> 은 무늬만 홈드라마였을 뿐, 막상 그 안에는 실소를 터뜨릴 만한 '막장' 설정으로 가득하다.

18회에서도 어이없고 기막힌 장면들은 등장했다. 호박(이태란 분)의 남편 허세달(오만석 분)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수박(오현경 분). 그는 자신의 동생을 대신해 광박(이윤지 분)과 함께 내연녀 은미란(김윤경 분)을 찾아 간다. 망신을 주든지, 요절을 낼 작정의 기세로 말이다.

 27일 방송된 KBS <왕가네 식구들>의 한 장면

27일 방송된 KBS <왕가네 식구들>의 한 장면 ⓒ KBS


결국 수박은 유부남인 줄을 알고 만나고 있으면서도 뻔뻔하게 코를 높이 쳐들고 있는 은미란의 얼굴에 물을 끼얹고 따귀를 때린다. 이것이 바로 물따귀라고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동생 수박을 위한 언니의 따끔한 복수다. 그런데 결코 통쾌하지도 시원하지도 않은 장면이었다. 수박이 내뱉는 말도 안 되는 대사들 때문이다.

'나 80평짜리 아파트에서 살던 여자야' '나 외제차 몰고 다녔던 여자야' '나 미스코리아에 나갔던 여자야' 결국 수박은 여동생 남편과 불륜관계에 있는 여자에게서까지 미스코리아 얘기를 꺼낸다. 수박의 대사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분간이 서질 않았다. 도대체 수박이라는 캐릭터를 언제까지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여자로 만들 요량이며, 어째서 이 두 자매의 얕은 형제애조차도 우습게 그려야만 했을까? 어이없는 수준을 넘어 의혹이 드는 장면이었다.

어디 이뿐인가.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수박이 애지중지하는 유모차가 갑자기 박살이 났고 그 자리에는 수박의 삼촌 왕돈(최대철 분)이 있었다. 수박은 삼촌의 짓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다그치기 시작했고, 요란을 떠는 소리에 수박의 엄마 이앙금(김해숙 분)과 왕돈의 엄마 안계심(나문희 분)이 합세를 했다.

이앙금과 안계심은 며느리와 시어머니 관계다. 아무리 몇 십 년을 같이 살았다고 해도, 그래서 허물이 사라졌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막말을 할 수는 없는 관계다. 이앙금은 시어머니 앞에서 삼촌 왕돈을 향해 자식이었으면 패버리고 싶다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수박은 삼촌을 향해 '니네 엄마가 우리 엄마 얼마나 못살게 했는지 아냐'며 할머니라면 징글징글하다고 소리를 지른다.

어떻게 손녀딸이 할머니에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으며,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덤빌 수가 있을까? 이앙금과 수박의 막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오랜 시집살이라는 설정을 두기는 했다. 하지만 공감이 갈리는 만무하다. 설사 시집살이를 했다 치더라도 이렇게까지 위아래가 없을 수는 없으며, 이앙금의 성격에 무던히 시집살이를 감당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아서다.

 27일 방송된 KBS <왕가네 식구들>의 한 장면

27일 방송된 KBS <왕가네 식구들>의 한 장면 ⓒ KBS


언니가 동생 남편의 내연녀를 찾아가 물을 끼얹고 때리고, 당장 끝내라며 두 눈을 부릅뜨고 앙칼지게 소리를 지른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조카는 삼촌에게 할 소리 못할 소리 분간을 못하고 거침없이 대든다. 분명히 자극적인 장면이며, 이렇게 소란스러운 장면은 욕을 먹든 비난을 듣든 시청자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해서 <왕가네 식구들> 은 높은 시청률을 얻고야 말았다. 아직 중반도 채 오지도 않았는데 시청률 30%를 넘기는 데 성공했다. 이로서 문영남 작가는 다시금 시청률 제조기라는 수식어를 얻게 되었고, 전작 <폼나게 살거야>의 부진을 말끔하게 만회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진정한 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방송국 입장에서, 작가의 입장에서 높은 시청률은 눈에 보이는 득이 확실하다. 시청률이 높아야 인기드라마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드라마를 써야 스타 작가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이것이 정도는 아니다. 막장 드라마의 성공은 일시적인 편법에 기인한 위태로운 불꽃놀이에 불과하다. 욕을 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매력은 분명 한계가 있으며, 이제 그 한계의 끝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인내심은 이제 극에 달한 듯하다.

<왕가네 식구들>의 전작들이었던 <최고다 이순신> <내딸 서영이> <넝쿨째 굴러온 당신> 은 막장 드라마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내딸 서영이>나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작품들이다. <왕가네 식구들>은 어떨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까? 아니면 하도 요란해서 보긴 봤지만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졸작으로 남게 될까?

<왕가네 식구들> 초반에 작가가 보여준 훈훈함은 단 몇 회 만에 막장으로 변질됐다. 높은 시청률에 대한 갈망이 착한 드라마를 버리게 했고, 막장 드라마의 손을 잡게 한 것이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성공의 길을 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좀 더 고민해 보자. 이것이 바르게 가고 있는 것인지, 뒤를 이어갈 이들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 당당한 걸음인 것인지. 작가의 안타까운 회심(回心)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음대성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topicasia.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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