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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아버지와 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는 자신의 인종이 '캐블리내시안(Cablinasian)'이라고 했다. 아버지에게는 'Caucasian(백인)'과 'Black(흑인)', 'Indian(미국 토착민)'의 피가 섞여 있고 어머니는 'Asian(아시아인)'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타이거 우즈는 혼혈이 아니라 흑인이다. '피 한방울 원칙(One-drop rule)' 때문이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우생학 바람을 타고 성립된 이 인종구별법은 지금도 미국 일반 백인들의 의식에 잠재되어 있다. 흑인 피 한 방울만 섞여 있어도 흑인이라는 것이다.

아일랜드계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머라이어 캐리도 자신이 '흑인'이라고 선언한 후에야 대중들과 미디어들이 붙들고 늘어지는 고약스런 '정체성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마이클 잭슨이 아무리 자신의 몸을 솔로 박박 문지르고 수십 번 성형수술했어도 결코 '흑인신분'을 벗어날 수 없었다. 백인 어머니와 케냐 출신 흑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버락 오바마도 비록 세계 최강대국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 역시 흑인이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지휘하다 '상부보고' 논란으로 업무에서 배제된 윤석열 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참철 대회의실에서 열린 서울고검, 서울중앙지검 등 검찰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직원 체포 보고 경위에 대해 설명한 뒤 승강기를 타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지휘하다 '상부보고' 논란으로 업무에서 배제된 윤석열 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참철 대회의실에서 열린 서울고검, 서울중앙지검 등 검찰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직원 체포 보고 경위에 대해 설명한 뒤 승강기를 타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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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피 한 방울만 섞여도 흑인

박근혜 정권의 탄생음모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권은희, 채동욱, 윤석열의 고향이 어디 어디 아니냐는 말들이 슬금슬금 떠돌아다니는 모양이다. 권은희 경장의 경우, 용감무쌍한 '평양의원' 조아무개 덕분에 전 국민이 보는 TV중계로 그의 고향이 광주임이 밝혀졌지만, 채 총장과 윤 지검장의 경우 아직은 풍설만 낭자한 듯 하다.

아주 오래전 이문옥 감사관이 감사원의 부정을 폭로할 때도 그랬고,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리를 폭로할 때도 그랬다. 대부분 사람들은 상상조차 못 했고 전혀 관심 가질 이유도 없는 사안인데, 그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들은 교묘하게 이 문제를 끄집어내 인구에 회자시킨다. 전라도가 고향이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정의의 문제'라는 본질은 그렇게 스테레오타입화 된 지역감정에 가려진다. 

채 총장과 윤 지검장의 고향이 어디인지 알 필요도 없고 관심도 없다. 전라도 어디쯤일 수도 있고 혹은 서울이나 경상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들은 묻고 또 물을 것이다. 당사자의 고향이 전라도가 아니라고? 그럼 부친은? 모친은? 할아버지는? 선산은 어디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그럼 처가는? 내가 느닷없이 '피 한방울 룰'을 떠 올린 이유다.

윤석열 지검장은 국정감사장에서 "나는 (검찰)조직을 사랑하나 사람에게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과연 그는 참여정부 시절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람들을 무던히도 괴롭혔으며 지금도 노 전 대통령 유족들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맡아 "자신의 수사역량을 충분히, 자유롭게, 혹은 제멋대로 발휘"(노 대통령 사위 곽상언 변호사)함으로써 과도한 고통을 주고 있는 인물이다.

원칙과 상식, 양심마저 왜곡시키는 '지역 차별'

이렇게 자기 직업관에 투철한 사람, 상식과 원칙을 지키려는 사람, 그것이 결과적으로 정의에 복무하게 된 보수성향 인물들이, 오랫동안 진보와 민주를 부둥켜안고 피 흘리고 굶주리며 싸워 온 이들보다 훨씬 더 대접받는 세상이다. 그런데 같은 소신과 원칙, 그리고 용기를 지녔어도 '전라도 출신'은 예외다. 왜? 전라도 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정치적으로 편향된 사람들이니까!

우리 사회에서 '좌빨'과 '호남차별'은 거의 동격으로, 수구기득권세력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불러내는 두 개의 악령이다. 좌빨에 '종북' 하나만 더 붙이면 천안함에 대한 의혹제기도 막아 낼 수 있고, 국정원이나 국군 사이버사령부(사이버사)의 음모가 밝혀져도 "(이걸 문제 삼으면) 가장 좋아하고 기뻐할 조직은 바로 북한일 것"이라거나 "나라의 안보는 뒷전으로 미뤄놓은 채 비밀 사이버 안보조직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라며 오히려 몽둥이를 들고 달려 들 수 있는 것이다.

'종북좌빨'이란 원래가 허상의 개념이어서 아무데나 막무가내로 갖다 붙일 수 있지만(그리고 언제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시침을 떼도 되지만), '호남차별'은 상대가 분명하고 폭발력이 강하기 때문에 은밀하게, 그러나 더 교활하게 자행된다는 차이점이 있기는 하다. 아마도 박근혜 정권은 앞으로도 호남차별을 이명박 때보다도 더욱 은밀하게 교활하게 강화해 나아갈 것이다. 권력기관, 군, 정보기관, 사정기관 고위급 인사에서, 핵심라인 인사에서 호남출신을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수구기득권세력의 음모적인 지배카르텔을 철옹성처럼 굳히려 할 것이다.

혼외아들 의혹으로 사의를 표명한 채동욱 검찰총장이 9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혼외아들 의혹으로 사의를 표명한 채동욱 검찰총장이 9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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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배제로 지배카르텔 굳히려는 수구세력

그러면서 수구기득권세력은 고려 태조 왕건이 주절거렸다는 훈요십조와 조선시대 '정여립사건'을 18번 레퍼토리처럼 읊조리면서 다른 지역 민심을 우롱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그런 왕건의 넋두리와 '조선판 조작사건'에 있지 않다. 진실은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이순신 장군의 탄성에 온전히 담겨 있다.

왜란 때 호남인들의 활약이 그랬고 지금도 호남은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한국의 현대사는 '약무호남 시무민주주의'를 그대로 증거하고 있으며 이제 '약무호남 시무국민통합'이며 '약무호남 시무국민행복'이어야 하는 것이다.

부통령이란 소리를 듣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출신은 경남이다. 황찬현 감사원장 내정자의 출신도 경남이다.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4대 기관장 가운데 호남 출신은 없지만 영남 출신도 없다던 자랑아닌 자랑은 이제 채동욱 후임으로 경남 출신 김진태를 내정함으로써 그 속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대목에서 '서울출신'으로 되어 있는 남재준 국정원장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서울에서 태어난 게 맞는가? 아버지 고향은 어디신가? 할아버지는? 선산은 어디에 있고? 아, 참! 처가는 어디신가?"


태그:#호남차별, #종북놀음, #수구카르텔, #박근혜 정권, #권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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