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로선 그야말로 크게 한 숨을 돌렸다. 만약 이틀 연속 패해 4연패에 빠졌다면 3위 자리마저 내줄 뻔 했다.

김기태 감독이 이끄는 LG는 3일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2013 한국 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연장 10회말 오지환의 끝내기 3루타에 힘입어 1-0으로 신승을 거두며 하루만에 2위 자리를 탈환했다.

1-0이라는 스코어가 말해주듯 이날 경기는 투수전으로 흘러 갔다. LG선발 레다메스 리즈의 7이닝 9탈삼진 호투도 빛났지만 야구팬들을 더욱 놀라게 한 선수는 기를 쓰고 달려든 LG타선을 8이닝 무실점으로 막아낸 한화의 신인 좌완 송창현이었다.

2000안타의 장성호를 포기하며 데려 온 평범한 신인투수

작년 11월 27일, 스토브리그를 즐기고 있던 야구팬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트레이드가 성사됐다. 9년 연속 3할 타율과 통산 2000안타에 빛나는 '스나이퍼' 장성호의 롯데 자이언츠행이 그것이었다.

김주찬(KIA 타이거즈)과 홍성흔(두산 베어스)이 떠난 롯데에서 장성호처럼 경험 많은 타자를 원한 것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한화가 얻은 선수가 프로에서 전혀 검증되지 않은 신인 좌완 송창현이었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사실 김태균과 김태완, 이양기 같은 1루 자원을 보유한 한화에서 장성호는 엄밀히 말해 '잉여자원'이었다. 반면에 롯데 입장에서 장성호는 붙잡고 싶은 존재였고 협상 테이블은 당연히 한화가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한화가 얻은 수확은 고작 무명의 신인 투수 뿐이었다.

제주 국제대 출신의 송창현은 김응용 감독이 야인으로 제주도에서 지내던 시절 눈 여겨 보던 투수였다고 한다. 한화팬들은 수 많은 스타들을 지도했던 '거장' 김응용 감독의 안목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송창현에 대한 한화팬들의 기대는 금방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5월에야 겨우 1군 무대를 밟은 송창현은 8월까지 총 24경기에 등판해 2승4패 평균자책점 5.24라는 지극히 평범한 성적을 올렸다.

빠른 공의 구속은 시속 140km를 넘기기도 쉽지 않았고 그렇다고 올 시즌 돌풍을 일으키며 신인왕 후보로 떠오른 유희관(두산)처럼 날카로운 제구를 앞세워 '느림의 미학'을 뽐내지도 못했다.

한화는 매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신인 투수를 얻기 위해 양준혁의 2318안타 기록을 깨트릴 수 있는 1순위 후보를 포기했다. 아마도 9월의 대반전이 있기 전까진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9월 이후 1.89에도 무승, 승운 따르지 않는 것마저 류현진 닮은꼴

송창현은 9월 5일 LG와의 경기에서 6.2이닝을 2피안타 무실점으로 틀어 막으며 야구팬들의 눈길을 모으기 시작했다. 송창현에 대한 시선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그 때까지도 LG가 낯선 신인 투수를 만나 잠시 고전했을 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송창현의 호투는 이후 5경기 동안에도 계속 이어졌다. 8월까지 한 번도 6이닝 이상을 던지지 못한 송창현은 9월의 5경기 중 3경기에서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이하)를 기록하는 반전을 만들어 냈다.

급기야 3일 LG전에서는 무려 8이닝 동안 104개의 공을 던지며 4피안타 2볼넷 무실점으로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던 LG타선을 완벽하게 틀어 막았다. 탈삼진은 1개에 불과했지만 실제 구속보다 빠르게 느껴지는 묵직한 공에 LG 타자들의 방망이는 밀리기 일쑤였다.

초반 4개월 동안 평균자책점 5.24에 그쳤던 송창현은 마지막 6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89(38이닝 8자책)라는 호성적을 기록하며 기분 좋게 시즌을 마감했다. 비록 류현진에 비해 구위는 많이 떨어지지만 과감한 승부와 마운드위에서의 묵직한 존재감은 마치 '공이 느린 류현진'을 보는 듯 하다.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여느 에이스들 못지 않은 호투를 보여줬음에도 송창현이 9월 이후 단 1승도 챙기지 못했다는 점이다. 3일 경기에서도 한화는 송창현이 마운드에서 고군분투하는 동안 산발 6안타 빈공에 시달리며 단 1점도 내지 못했다.

한화는 류현진이 활약하던 작년에도 만족스런 득점지원을 해주지 못해 리그 탈삼진왕을 9승 투수로 머물게 한 바 있다. 어렵게 발굴한 '저속형 류현진'을 불운의 아이콘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한화는 내년 시즌 공격력 강화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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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송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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