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하면 안 돼" "늘 겸손해야지" 등등. 꼭 어느 위인이 한 말이 아니더라도 나의 부모, 나의 친구, 나의 누이, 내 지인들이 나에게 던진 작은 메시지 하나가 내 삶에 큰 교훈 혹은 삶의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꼭 화려한 스타들의 삶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나만의 숨은 사람, 그들을 <오마이스타>와 함께 찾아가 보아요. [편집자말]
 섬유디자이너 이해은씨가 6일 오전 서울 목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섬유디자이너 이해은씨가 6일 오전 서울 목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조경이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이해은씨는 섬유디자인을 전공했어요. 목동에 '땀(ddam)'이라는 작업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문양, 천, 한지 등으로 공예품을 만드는 작가예요. 필통·지갑·옷부터 커튼·이불까지 천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재주를 늘 발전시키고 노력하며 한길을 걷고 있어요." (연극배우 김현)

연극배우 김현이 추천한 열 번째 '숨은사람'은 바로 섬유디자이너인 이해은이다. 현재 부산과학기술대학교 쥬얼리디자인학과 겸임교수이기도 한 이해은은 우리의 전통적인 것을 살리는 섬유디자이너로 활약하고 있다. 

이해은 디자이너의 예술가적인 끼는 어디서부터 왔을까. 답은 그녀의 부모님에게 있었다. 이해은의 아버지는 서울대 출신 작가들이 주로 참가한 '앙가주망'에서 활동하는 화가였고, 어머니는 그 옛날 손자수 선생님이었다.

"아버지는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획을 그으신 장욱진 선생님의 제자였어요. 교편을 잡고 있었지만 앙가주망의 회원으로 전시회를 꾸준히 하고 계세요. 어릴 때 앙가주망 분들과 함께 방학마다 여행을 떠났어요. 그분들의 자녀와 함께 버스 한 대를 빌려서 자유롭게 타고 가다가 좋은 곳이 있으면 아이들은 다 내리게 하고 그분들은 스케치를 하는 식이죠.

보길도도 자주 갔고, 알프스 스키장도 개발 전에 갔었어요. 대관령에서 놀기도 하고, 어느 절에 가서 쉬기도 하고 그랬죠. 어릴 때 아버지와 그런 여행을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풍성한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미적 감각은 부모님으로부터...8살 때부터 뜨개질 시작"

 섬유디자이너 이해은씨가 6일 오전 서울 목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섬유디자이너 이해은씨. ⓒ 이정민


 섬유디자이너 이해은씨가 6일 오전 서울 목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미소짓고 있다.

이해은은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중요무형문화재 89호 침선장 구혜자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다. ⓒ 이정민


1971년생인 이해은은 목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최근의 아파트와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기 훨씬 전, 아버지가 마련한 목동의 14평 집 앞에는 논도 있고 개천도 있었다. 넓은 앞마당에서는 잔디도 깔려 있었고 닭도 키웠다. 마당의 한 공간에는 아버지가 지능개발에 좋다고 직접 두 트럭의 모래를 부어서 만든 모래밭도 있었다고 한다. 그 집을 헐고 건물이 들어선 그 자리에 이해은의 작업실 '땀'이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아버지(이학영)는 지금도 앙가주망 그룹 전시회를 1년에 2, 3회씩 하세요. 최근에도 대학로 문예회관에서 하셨어요. 어머니는 손자수를 하셨어요. 결혼하기 전에 손자수 선생님이었어요.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었고, 손자수 한 것들을 수출하기도 했어요. 그때 당시 자수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60년대 가발을 수출할 당시라서 여자들은 자수도 배우고 시집갈 때 혼수로 병풍 등을 해갔죠. 그때 어머니가 자수를 가르치기도 했어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미학적인 감각과 어머니의 손자수 등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이해은은 8살 때부터 뜨개질을 시작하면서 손으로 무엇이든 척척 만드는 재주꾼이 되었다. 또래 친구들이 밖으로 세상구경을 하며 돌아 다닐 때, 이해은은 학교를 마치고 나면 바로 집으로 와서 이것저것 손으로 만들어 보는 것을 좋아했다고.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낸 이해은이 잘 하는 것은 "천으로 무엇이든 만드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청주대학교 예술대학 공예학과에 입학해 섬유 전공을 했고, 이후 전주대학교 문화산업대학원 한지문화산업학과를 석사로 졸업했다.

 섬유디자이너 이해은씨가 6일 오전 서울 목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며 미소짓고 있다.

섬유디자이너 이해은씨가 6일 오전 서울 목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며 미소짓고 있다. ⓒ 이정민


디자이너 이해은은 특히나 한국적인 것, 전통을 살려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가 한국적인 것에 매료돼 평생의 업을 전통을 살려내는 것에 힘쓰겠다고 결정했던 건 대학교 때부터다. 

"아버지 친구 분 중 부산대학교 회화과 교수님이 계셨어요.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수석 교수님이신데, 응용미술을 전공하셨습니다. 책을 많이 쓰셨는데 문양집을 내셨어요. 친구들이다보니까 책을 출간할 때마다 저희 집에도 보내 주셨는데, 그 교수님의 책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문양을 접하게 됐습니다.

문양이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웠어요. 대학교에 가서 염색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저는 그 교수님의 영향에서인지 전통적인 것 안에서 찾고 싶었어요. 어린 시절 절 구경을 다닌 기억도 많고요, 단청 등의 색채도 그렇고요. 그 영향에서인지 졸업 전시회 등을 시작으로 제 작품을 할 때는 전통적이고 한국적인 것을 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적인 생활 안에서 전통을 살리는 게 목표"

 섬유디자이너 이해은씨가 6일 오전 서울 목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미소짓고 있다.

이해은 디자이너는 2013 CCF 세계문화소통포럼 폐막식 기념만찬 테이블보 제작 및 세팅을 맡은 바 있다. ⓒ 이정민


그렇게 본격적으로 전통을 살리는 섬유디자이너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1991년에는 무형문화재 22호 매듭장 김희진 공방 매듭기초과정 수료했으며, 1996년부터 1997년에는 문화재보호재단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자수과정을 수료(조각보명장 김현희)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는 중요무형문화재 89호 침선장 구혜자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런 배움의 과정을 통해 더욱 기술을 연마하고, 후에 본인의 브랜드를 직접 갖고 싶었던 이해은 디자이너는 2004년도에 '땀'(http://cafe.daum.net/ddam2004/)이라는 작업실을 자신의 태어나고 자랐던 목동에 열게 됐다. 

"'땀'에서 섬유에 관련된 모든 것을 다 만듭니다. 집안의 전반적인 것들을 다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불, 침장, 커튼, 슬리퍼, 조각보 등 홈패션을 다 만들고요. 의상도 다 직접 해보고 싶더라고요. 집안에서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홈웨어. 옷부터 시작해서 가방, 신발, 머리띠 등 다 직접 만듭니다."

집 안의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이해은 디자이너는 모든 작업을 한국적인 것과 어우러지게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국적인 것을 계속 하다 보니 내 안에 '전통을 알리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전통의 맥을 잇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한국적인 것을 계속 발전시켜나가고, 옛것을 현대적으로 변형하는 작업도 계속 하고 있어요. 현대적인 생활 안에서 전통을 살리고, 전통이 생활에 무던히 안착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섬유디자이너 이해은씨가 6일 오전 서울 목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섬유디자이너 이해은씨가 6일 오전 서울 목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 이정민


전통이라는 것, 한복 등으로 대표되는 옛 스타일 등의 키워드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이질적으로 다가오고 불편한 것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일본에서는 전통적인 것의 활용을 많이 하더라고요. 기모노 천을 청바지 뒷주머니에만 대서 브랜드화한 경우도 있어요. 티셔츠에도 전통 무늬를 찍어서 내놓는 경우도 많고요. 우리나라도 그런 시도가 있긴 하지만 아직 활발히 일어나고 있지는 않고 젊은이들도 이에 동참을 많이 하고 있지는 않아 아쉬움은 있어요.

하지만 그런 것도 우리들이 해야 할 숙제이겠죠. 전통을 응용하면서 현대적인 분위기와의 자연스러움을 전혀 깨뜨리지 않게, 세련되게 만들어 내는 게 저희들의 일인 것 같아요. 그런 시도가 더욱 대중화되고 요즘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30여 년 이상을 손에서 바느질과 천을 놓지 않고 살았던 이해은 디자이너. 그녀는 앞으로 한복과 한지를 응용해서 더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더불어 소외된 사람들에게 본인의 재능이 쓰임이 있다면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싶다고.

"사실 이렇게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돈 벌이가 될 것이 많지는 않아요. 그런데 저는 회사에 소속돼 있지 않고 개인 작업을 하면서 여태까지 온 것 자체가 굉장히 큰 행운이었다고 봅니다. 재봉틀도 정말 많이 밟았어요. 물건 납품을 꾸준히 해서 전시회도 하고요. 열심히 작업을 하면서 많은 것도 누렸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우리나라보다 더 소외되고 발전이 되지 않은 곳의 사람들을 찾아가서 저의 재능의 쓰임이 있다면 가르쳐드리고 싶어요. 제 작업도 중요하지만 조금 더 베풀 수 있는, 찾아가는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섬유디자이너 이해은씨가 6일 오전 서울 목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며 미소짓고 있다.

이해은 디자이너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복생활화를 위한 한복고쳐입기> 공모전에 당선된 바 있다. ⓒ 이정민


[숨은사람찾기⑪] 비올리스트 김남중을 추천합니다
"활이 춤 춘다는 걸 처음 느꼈어요"

이해은 디자이너는 다음 '숨은사람'으로 비올리스트 김남중을 추천했다.

"실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 정말 굉장히 소녀 같은 포근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연주하면 정말 카리스마가 넘치죠. 연주하면 활이 이야기를 걸어와요. 음악에 따라서 굉장히 사랑스럽다가도, 굉장히 야생마적으로도 변하는 그런 팔색조와 같은 연주를 선보이는 분입니다. 활이 춤춘다는 것을 처음 느껴봤던 분이에요."



이해은 섬유디자이너 김현 김남중 숨은사람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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