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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사 대웅전에서 바라본 8각 13층탑과 묘향산 멧부리(2005. 7. 24.).
 보현사 대웅전에서 바라본 8각 13층탑과 묘향산 멧부리(2005. 7. 24.).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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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의 밤

"야, 준기야. 저낙(저녁)밥 먹자구나."
"오마니, 발쎄(벌써)요?"

그 말에 준기는 대답을 하며 벌떡 일어났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어머니의 그 말인가. 어머니가 곁에서 준기를 흐뭇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 모든 게 현실이었다. 준기 곁에서 풋잠이 들었던 순희도 얼른 일어났다.

준기 부부는 양쪽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아래층 구내식당으로 내려갔다. 밥상에는 칠색송어튀김, 애기돼지다리찜, 조기구이에 산나물과 버섯 등이 차려져 있었다. 순희는 시어머니 밥숟가락 위에 송어튀김과 애기돼지다리찜, 그리고 조기구이를 낱낱이 찢어 놓아드렸다. 

"내레 이제는 죽어두 한이 없어야. 내레 너들 보디 못하구 죽을 줄 알았디."
"오마니, 이제 길이 트여시니(트였으니) 자주 올게요."
"너들이 남조선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중국으로 돌고 돌아 요기까디 찾아오느라구 얼마나 고생이 많구 힘들었갓네. 그만 돼서야. 사람은 욕심이 과하믄 탈 나. 우리 동네에서 조국 해방전쟁에 나갔다가 아딕까디두 소식 모르는 집이 수태 많아. 긴데, 준기 네레 어드러케 살아왔네?"
"이게 다 오마니 덕분이야요."
"머이, 내레 무슨 일을 했다구."
"오마니가 그러셋디오. '준기야, 네레 무사히 돌아올래믄 전쟁터에서는 아무튼 입이 바우터럼 무거워야 돼'라구요. 기래서 오마니 말대루 살았디요."

묘향산 강선대의 단풍.
 묘향산 강선대의 단풍.
ⓒ 조선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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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처럼 살라

"그랬니? 내레 다 닞어삐럿는데(잊어버렸는데). 아무튼 내 아들 당(장)하다. 앞으로는 소터럼(소처럼) 살라."
"메라구요? 소터럼 살라구요?"
"기럼. 사람이 소한테 배울 기 많아. 기저 묵묵히 일만 하구 죽어서두 어디 한 가디 버릴 게 없디 않니."
"알가시오, 오마니."
"기래. 참 아이들은 멧 남매를 두었니?"
"딸 아들 둘이야요."

준기가 얼른 대답했다.

"말 타믄 종 두구 싶다더니 내레 이데 갸들이 보구 싶네."
"다음에 올 때는 데리고 오가시오."
"내레 기때까디는 살는지 모르가서."
"오마니, 꼭 사시라요."
"기게 어데 내레 마음대로 되나. 어드러케 구색을 맞춰 낳았니?"
"삼신할미가 점디(점지)해준 대로 낳았디요."

평양~묘향산고속도로 중, 청천강 금성다리 아래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는 양떼들(2005. 7. 24.).
 평양~묘향산고속도로 중, 청천강 금성다리 아래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는 양떼들(2005. 7. 24.).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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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기의 대답에 준기 어머니 강말순은 며느리의 손을 잡았다.

"남덩(남정, 남편)이 속을 안 썩이든?"
"아니에요, 어머니. 오히려 제가 서방님 속을 더 많이 썩였어요."
"네로부터 남덩들은 젊을 때 속을 썩이디 않는 이가 드물디."
"서방님은 그렇지 않았어요. 어머니."
"내레 기분 도으라구(좋으라고) 한 소리디."
"아니에요, 어머니."

준기 부부는 저녁을 끝내고 양쪽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호텔 마당으로 나갔다. 밤하늘의 별들이 금세라도 쏟아질 듯 반짝거렸다. 준기는 어린 시절, 이맘때면 여름밤 고향집 마당에 모깃불을 지핀 뒤 멍석을 펴놓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밤하늘의 별을 헤아렸다. 준기 가족은 호텔 마당 나무 의자에 앉았다.

개구리 소리들이 요란히 울렸다. 준기 귀에는 그 소리들이 어린 시절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이 들렸다. 지난 45년의 세월이 한바탕 꿈만 같았다. 준기는 어머니를 아내에게 맡긴 채이런저런 추억에 젖으며 호텔 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깊은 산이라 밤공기가 금세 싸늘해졌다.

전란의 잿더미 속에 새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서울시민들(촬영일자 미상).
 전란의 잿더미 속에 새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서울시민들(촬영일자 미상).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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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날

"여보, 그만 들어갑시다. 어머니는 낮잠도 주무시지 않으셨어요."

순희가 산책하는 준기를 불렀다.

"야, 오늘 하루는 자디 않아도 괜찮아."
"아니에요, 어머니. 오늘은 저희 곁에서 푹 주무세요. 건강히 오래 사셔야 저희들이 또 찾아뵙지요."

세 사람은 방으로 들어왔다. 몸을 씻고는 잠자리를 폈다.

"오마니 오늘은 가운데 주무세요."
"싫어. 난 메누리한테 미움 받기 싫어야. 가에서 잘래."
"괜찮아요, 어머니."
"싫테두. 넷날에 한 심술궂은 시어미가 아둘 메누리 가운데 누워 잠을 잤는데 메칠 후 기만 입이 삐뚤어졌대."

그 이야기에 세 사람은 한 방 크게 웃었다.

"아니에요, 어머니.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꼭 가운데서 주무세요. 이제 언제 우리가 다시 한 방에서 자보겠어요."

준기 부부는 어머니를 가운데 모시고 한 손씩 잡았다.

유엔군 포로들이 반전 플래카드를 들고 시가지를 행진하고 있다(서울, 1950.).
 유엔군 포로들이 반전 플래카드를 들고 시가지를 행진하고 있다(서울, 1950.).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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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두 돟아

"내레 오늘 밤은 조선 천디(천지)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야."
"어머니, 저도요."
"오마니, 저두요."

준기와 순희가 번갈아 말했다.

"우린 이제 통일이 돼서야."
"기러네요, 오마니."
"기럼. 내레 이젠 죽어두 돟아. 오늘밤 너들 손잡고 아주 눈을 감았으믄 도카서(좋겠어)."

준기 어머니는 아들과 며느리 손을 당신 두 손으로 꽉 잡았다. 상현달이 창 너머로 흐뭇이 방 안을 비췄다.

그날 한밤중이었다. 준기는 누군가 손을 잡는 촉감에 잠에서 깼다. 어머니가 자기의 손을 꼭 잡았다. 준기는 일부러 잠을 잔 척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자기 손을 잡은 채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그제야 준기가 잠에서 깨어난듯 말했다.

"오마니, 어디 편찮으세요."
"아냐. 내레 기저 돟고 잠이 안 와 기래. 네레 내 옆에 누워 있다니 도무디 실감이 나지 않아. 기래 네 손을 잡아본 거디."
"네, 오마니. 나두 오마니 옆에 누워 있다니 덩말 실감이 나디 않는구만요."

모자는 서로 마주 보며 두 손을 잡은 채 말없이 흐느꼈다. 옆자리의 순희도 눈을 감고는 혀를 깨문 채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묘향산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전란 중이지만, 한 농부가 뒤늦게 모내기를 하고자 써레로 논바닥을 고르고 있다(1951. 7.).
 전란 중이지만, 한 농부가 뒤늦게 모내기를 하고자 써레로 논바닥을 고르고 있다(1951. 7.).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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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 이 작품은 99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덧붙이는 글 | 여기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들과 답사 길에 직접 촬영하거나 수집한 것입니다. 본문과 사진이미지가 다를 경우 한국전쟁의 한 자료사진으로 봐주십시오.



태그:#어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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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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