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서'는 과거 청소년이 선망하는 직업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가수의 뒤에서 춤을 춘다고 하여 '백댄서'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듣는 음악'에서 '보고 듣는 음악'으로 발전한 요즘은 무대의 구성과 안무가 중요해짐에 따라 댄서의 중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 연예기획사에서는 음반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댄서들의 의견을 묻고 콘셉트를 정하기도 한다. <오마이스타>는 연예인에 비해 덜 알려진 댄서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K-POP의 나라에서 댄서로 산다는 것'을 짚어본다. - 기자 말

나는 댄서다 그룹 신화의 안무를 담당하는 댄스팀이 11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연습실에서 <2013 신화 그랜드 투어 "더 클래식" 인 도쿄> 콘서트를 앞두고 안무를 맞춰보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룹 신화의 일본 콘서트를 앞두고 안무를 맞추는 댄서들. 맨 왼쪽이 이정희씨, 오른쪽 앞줄이 박준희씨, 그 뒤가 이은지씨.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언혁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박준희(34)씨와 이정희(34)씨, 이은지(31)씨는 모두 경력 10년을 넘긴 프로 댄서다. 변화무쌍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한 덕에, 지금은 어느덧 중견 댄서의 위치에서 활약하고 있다. 세 사람에게 댄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까지 모두 들을 수 있었다.

- 춤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나요? 어떤 계기로 댄서를 시작했는지 궁금해요. 
이은지: "원래 춤에 관심이 많았어요. 옛날에 유승준을 담당하던 ING라는 팀이 잘 나갔거든요. 요즘 가수 지망생들이 연예기획사를 찾아 오디션을 보는 것처럼 그때는 댄서를 하겠다는 애들이 많았어요. 오디션에서 한 번에 붙었어요. 팔, 다리가 길어서 뽑아준 것 같아요.(웃음)"

박준희: "고등학교 1학년 땐가, 친구가 혼자 가기 그렇다고 오디션에 같이 가자고 했어요. 인천에서 서울까지 오디션을 보러 왔는데 저 역시 한방에 붙었죠. 그 뒤로 학교 끝나면 매일 연습실로 갔어요. 엄마가 등수를 조건으로 거셨거든요. 시험기간에는 벼락치기로 공부하고, 다시 연습실 가고 했죠." 

이정희: "저도 어렸을 때부터 춤추는 걸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오디션을 봤는데 그 팀에 들어가진 않았어요. 그 팀이 피플크루였죠. 오디션 이후에 친구들과 경연대회에 나갔고, 동갑내기들과 CB MASS라는 팀을 만들어서 대학교 1학년 때 방송을 먼저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추억이죠.(웃음)"

나는 댄서다 그룹 신화의 안무를 담당하는 댄스팀의 박준희씨가 11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연습실에서 <2013 신화 그랜드 투어 "더 클래식" 인 도쿄> 콘서트를 앞두고 시범을 보이고 있다.

댄서 박준희씨 ⓒ 이정민


- 지금까지 맡은 팀이 꽤 많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나요? 
이은지: "첫 방송은 베이비복스와 했어요. 이후 21살이던 2003년부터 휘성과 작업했고요. 딱 10년 됐네요. 그때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어요. 처음에는 어려워서 눈치도 많이 봤지만, 지금은 남매 같아요.(웃음) 2012년부터는 신화에도 합류했고요.

음...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김)태우 오빠 콘서트요. 솔로 콘서트를 본인이 다 연출했는데 정말 신선했어요. 공연 자체도 재밌었고요. 최근에 태우 오빠에게 '그런 공연 다시 안 할 거냐'고 물었는데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스트레스받는다고. 댄서의 의상과 메이크업까지 모두 직접 신경 썼거든요. 그때 태우 오빠를 다시 봤어요. 저와 1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자기의 영역이 확고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준희: "시작은 젝스키스 콘서트의 코러스였어요. 고등학교 때, 댄스팀 단장님의 여자친구가 코러스 라인이었거든요. 그 무대에 대타로 섰다가 플라이투더스카이 1집부터 댄서가 되었죠. 가수도 댄서도 모두 남자였는데 저만 여자였어요.

전 이효리의 '텐미닛' 무대가 기억나요. 처음으로 섹시한 옷을 입고 10cm짜리 굽을 신었죠. 파격적이었어요. 외국 댄서가 와서 안무를 짜주는 것도 신기했고요. 2004년 비의 'It's Raining'(잇츠 레이닝) 때 아시아 투어를 함께하면서 해외에 많이 갔어요. 그때 애프터파티 등을 하면서 해외 댄서들과 많이 만났는데 그들에게 물어보니 엄청난 대우를 받더라고요. 1개월에 천만 원 정도 벌기도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이정희: "전 힙합 가수들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인지 힘든 기억이 많아요.(웃음) 다른 가수들보다 방송도 많이 없거든요. 스케줄을 소화할 때도 회사가 작으니까 지원해주는 것도 적고요. 경비를 아끼려고 항상 가수들과 같은 차에 옹기종기 앉아서 이동했던 것 같아요. 손거울 들고 화장하고, 근처 의자에 앉아서 대기하고 그랬죠. 힘들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기억에 남는 추억이네요."

대우받지 못하는 댄서들…그럼에도 "가수보다 나은 것 같아요"

나는 댄서다 그룹 신화의 안무를 담당하는 댄스팀의 이은지씨가 11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연습실에서 <2013 신화 그랜드 투어 "더 클래식" 인 도쿄> 콘서트를 앞두고 시범을 보이고 있다.

댄서 이은지씨 ⓒ 이정민


- 처음 댄서 생활을 시작할 때와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몸소 느낀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이은지: "예전엔 그냥 그림이었죠. 남자 댄서가 모자랄 때는 남자 옷을 입고 모자 쓰고 대타로 무대에 서기도 했어요. 남자 춤을 추는 거죠. '이게 뭐지' 싶을 때도 많았어요. 음악 프로그램 때문에 방송국에 가면 복도에 앉아서 대기하고, 돈도 못 벌고요. 그저 시켜주는 것만도 좋아라 해야 했죠. 요즘은 진짜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박준희: "그때는 그게 당연해서 불평이나 불만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점차 해외 공연도 가고, 아이돌 그룹이 많아지면서 '이게 아니구나' 생각하게 됐고 시야도 넓어졌죠. 처음 일본으로 공연갔을 때는 깜짝 놀랐어요. PD가 댄서들에게 와서 프로그램과 무대 콘셉트 등을 설명해주더라고요. '시스템이 다르구나' 싶었어요. 거긴 에이전시도 있어서 댄서를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더라고요. 하지만 저희는 아직 무방비상태죠."

- 요즘의 추세를 보면 댄서의 영역이 단순히 노래 한 곡에만 국한되는 것 같진 않아요. 아이돌 그룹의 무대 안무 콘셉트를 잡는 것도 댄서가 하는 일 아닌가요?
박준희: "안무가나 댄서가 없으면 아이돌 그룹을 무대에 못 세워요. 콘서트 때도 무대 동선에 연출, 제스추어까지 다 짜야 하죠. 우리나라에서는 댄서가 공연 연출 쪽에서 많이 활동해요. 의상 같은 것부터 시작해서 감은 확실히 있으니까요. 댄서가 지닌 역량이 은근히 많아요."

이은지: "그동안은 외국 댄서들이 안무를 짜거나 하면 되게 대단하게 여겼잖아요. 하지만 한류가 확산되고 K-POP이 주목을 받으면서 우리나라 댄서도 외국 댄서들 못지않게 대단하다는 인식이 생긴 것 같아요.

제 생각엔 아이돌보다 댄서가 나은 것 같아요. 요즘은 아이돌이 되기 위해 댄서를 하고, 춤을 배우려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아이돌의 수명은 평균 5년 정도에 불과하죠. 그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그 뒤엔 어쩌겠어요. 방송 한 번 하기도 힘든 게 현실인걸요."

박준희: "맞아요. 스태프들은 남아 있지만 가수들은 바뀌죠."  

- 지금도 댄서, 특히 방송댄서가 되려는 이들이 많을 텐데요. 세 분이 꼽는 '댄서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박준희: "열정?"
이정희: "일단 춤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겠죠. 물론 소수지만 정말 춤이 좋아서라기보다 겉모습이 화려해 보여서, 가수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 춤을 추려는 친구들도 있어요."

"<댄싱9> K-POP 가르치기 전, 기도 죽었지만…"

 댄서 이정희씨

댄서 이정희씨 ⓒ 이정희


- 세 분은 10년 이상 한 우물을 팠잖아요.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활동할 계획인가요?
이정희: "동생들을 보면서 '욕은 먹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즘은 하도 춤을 잘 추는 친구들이 많으니까요. 조금씩 제가 작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만큼 더 노력해야죠."

이은지: "테크닉적인 부분은 옛날 우리보다 훨씬 잘해요. 동작도 굉장히 화려하고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포스나 무대 매너, 표정 등이 있죠. 지금의 친구들에게 없는 것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박준희: "얼마 전에 Mnet <댄싱9>에 춤을 가르치러 갔었어요. 소녀시대와 신화의 안무를 알려주는 거였는데 솔직히 처음엔 기가 많이 죽었어요. 춤 잘추는 사람들만 모아놓은 곳이잖아요. 'K-POP 댄스가 뭐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춤을 못 따라 하는 거예요. 조금씩 기가 살았죠."

이정희: "저희는 무대에서 춤을 추지만, 카메라 앞에서 춤을 추잖아요. 카메라가 주된 관객이죠.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어느 각도에 서야, 어떤 표정을 지어야 멋있게 보이는지 알아요. K-POP 안무는 큰 공연장에서 보는 것과 다르죠."

이은지: "맞아요. 방송에 적합한 건 따로 있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방송에 맞는 안무가 나오는 거예요."

- 앞으로의 꿈도 모두 다를 것 같아요.
이은지: "혼자 팀을 차린 지 3년 쯤 됐어요. 동생들을 굶겨 죽이진 말아야 하니까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저 안무는 이은지가 짰는데, 센스 있고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고요. 동생들에게도 멋진 본보기가 되고 싶어요."

박준희: "전 연예기획사의 신인개발팀에서 일하며 아이돌 그룹의 데뷔를 준비하고 있어요. 실무적인 부분을 배우고 있죠. 댄서들이 확실히 감은 있는데 이걸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게 부족하거든요. 댄서는 스태프이고,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거든요. 앞으로 문화예술경영 등을 공부해서 댄서들을 제도화시키고 싶어요."

이정희: "전 소소한 것에 감사해요. 지금도 춤추고 있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죠. 관절이 나가기 전까지, 춤출 수 있을 때까지 감사하면서 춤추고 싶어요. 이제 사단법인 방송댄스협회도 생겼으니 앞으로 동생들이 편하게 춤출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이죠."

나는 댄서다 이은지 박준희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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