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경을 쓰고 신기해하고 신이 난 쉑스

아프리카 케냐에서 만난 마사이족 쉑스. 내 안경을 쓰고 신기해하고 신이 났다. ⓒ 윤소은


|오마이스타 ■ 글/윤소은| "안녕하세요, 저는 용인외고 3학년 1반에 재학 중인 윤소은이라고 합니다. 저는 유니세프에서 아프리카 교육분야 사업을 추진하고 나중엔 학교를 건설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 르완다 봉사에 이어 이번 여름 케냐 봉사에서 마사이 부족들과 소중한 경험을 했기에 글로 담아보았는데, 부족하더라도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그곳의 밤은 그야말로 칠흑 같습니다. 케냐 사람들의 피부색만큼이나 까만 밤하늘에 점점이 박힌 별빛들 사이로 저와 헬렌, 그리고 쉑스는 손에 손 잡고 기나긴 밤길을 걸어갔지요. 저희 봉사팀원들을 내려준 버스로부터 밤길을 따라 30분은 걸어야 헬렌의 집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노란 피부가 신기한 작은 한국 여자아이를 보고서 반가워 껴안아 주던 헬렌의 짜고 시큼한 냄새도 차츰 익숙해집니다. 영어로도 유창하게 소통이 되지 않는 터라 손짓, 발짓, 눈짓 다 해가면서 통성명을 하자마자 쉑스와 헬렌은 땀에 젖은, 아니, 먼지에 젖은 손을 들어 제 손을 꼭 잡아봅니다. 마치 몇 년 만에 만난 오랜 친구인 듯 말이죠.

짜고 시큼한 냄새의 아이가 안내한 '소똥집'

 내 키보다 훨씬 작았던 문지방, 그리고 똥과 흙으로 만든 집 벽

내 키보다 훨씬 작았던 문지방, 그리고 똥과 흙으로 만든 집 벽 ⓒ 윤소은


쉑스와 헬렌은 마사이 족의 10대 친구들입니다. 케냐에서 가장 사납고 폭력적이라고 소문난 마사이 종족인데도 저에게는 왜 이렇게 다정하고 따스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헤드램프 하나에서 흐릿흐릿 배어져 나오는 불빛에 의지해 세 명이 함께 걸으려니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땅에서 성난 듯 날카롭게 삐쳐 나온 가시덤불이 자꾸만 제 운동화를 침범해 들어오니까, 쉑스가 헤드램프를 비춰주며 박힌 가시 빼는 것을 기다려줍니다.

헬렌의 가족을 위한 생필품 선물이 가득가득 든 검은 비닐봉투를 낑낑 들어 올리고 있는 제 모습이 가여운지 있는 짐은 다 달라고 합니다. 이 지역에 특히 사자가 많이 서식한다고 해서 주변의 검은 덤불들을 가리키며 무섭다고 하니, 깔깔 웃으면서 자기는 24마리의 사자를 죽여 본 경력이 있으니 걱정 말라며 어깨를 으쓱이기도 하고요. 마사이 전사 친구가 생기니 든든함 그 자체더라고요.

1년 만에 다시 맛보는 아프리카의 밤공기는 별과 달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과 버무려져 달콤하게 제 숨 안에 감돌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 새 앞에 뿌연 헤드램프 빛 사이로 울타리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문짝도 없는 대문 앞을 들어서니 눈앞에 거대한 벽돌집이 나타납니다. '어, 오늘 분명히 소똥집에서 자기로 했는데…? 와 나는 진짜 운이 좋나 보네, 벽돌집에 당첨되고!' 지칠 대로 지친 몸이기에 한 시 빨리 아늑한 집에 들어가 마사이들과 잠을 청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마법에 홀린 듯 발걸음이 그 쪽으로 옮겨가는 순간, 쉑스가 마당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뭐가 문젠지 물어볼 틈새도 없이 쉑스가 갑자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바람에 영문도 모르고 당황한 찰나, '꽈당!' 하고 눈앞에 별이 보이더군요. 자세히 보니 제 머리를 제 눈높이의 문 천장에 부딪힌 것이었습니다. 아픈 이마를 비비며 눈을 떠보니 저는 5평 남짓 되어 보이는 소똥집으로 거의 '기어들어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어마어마한 답답함이 제 숨통을 조이더군요. 저희 집 화장실보다도 한참 작은 거실(?)로 보이는 공간. 벽지도, 카펫도 없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흙바닥에, 손으로 깎아 만든 듯한 투박한 벤치 두 개, 그리고 불 피우기 위해 만들어 놓은 원시적 화로가 다였습니다.

바가지 한 가득 내어준 소중한 식량에 감동

 우리나라에서 고기 구울 때 쓰는 것 같이 생긴 화로와 연한 황토색의 chai 차. 식히는 척 하면서 안 먹는 중

우리나라에서 고기 구울 때 쓰는 것 같이 생긴 화로와 연한 황토색의 chai 차. 식히는 척 하면서 안 먹는 중 ⓒ 윤소은


버얼건 불의 온기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족은 엄마와 여섯 아이들이었지요. 아프리카에서는 낮과 밤의 일교차가 대단하기 때문에 그렇게 꼭꼭 붙어서 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나 봅니다. '어, 그런데 아빠는 어디 있지? 돌아가셨나?' 가족에 아빠가 빠진 낯선 모습을 보고는 갑자기 궁금증이 솟았습니다. 하지만 쉑스의 대답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것보다 더 저를 깜짝 놀라게 하기 충분했지요. "아빠는 저기 벽돌집에서 혼자 주무셔."

아,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슬람 문화의 영향으로 인한 가부장적 인식 때문에 아빠만이 따스한 벽돌집에서 잘 수 있는 거구나. 그래서 아까 우리 봉사팀을 데리러 나온 사람들 중 아저씨들은 하나도 없었던 거구나.'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벽 쪽에 붙어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루스 아주머니를 보니 갑자기 마음이 울컥해졌습니다. 평생 동안 아이 열여섯 명을 낳으며 정작 아내로서 사랑 받지 못하는 여자.

하지만 아주머니는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툼한 손으로 정성껏 끓인 차를 건네줍니다. 사실 오기 전에 마사이들이 주는 음식은 먹지 말라고 당부를 듣고 왔는데. 마사이 친구들은 냉장고가 없어 썩은 우유나 썩은 곡물도 그냥 먹습니다. 물이 모자라 씻지도 못한 듯한 컵에 인심 좋게 가득 채운 차이(chai: 케냐 전통 밀크홍차)를 주시는데, 정말 거절할 수가 없더라고요.

한국에서도 밀크티는 느끼해서 못 마시는 제가, 처음엔 조금 식히고 마시겠다고 미루고 미뤘지만 결국 한 아프리카 여자의 제안에 넘어가고야 말았습니다. '썩은 염소젖 한 번 먹는다고 죽지는 않겠지'하는 마음으로 입술을 대기만 하고 맛있게 마시는 척을 했더니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하지만 설상가상이라더니, 제가 아프리카 음식을 조금 먹자 이제는 바가지 한 가득 족히 나흘은 된 듯한 밥과 콩을 섞은 음식을 저녁이라면서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 먹고 살기도 간당간당 한데 손님이라고 이렇게까지 챙겨주는 것을 보면서 풍족할수록 나만 챙겼던 한국에서의 제 모습이 떠오르더라고요.

한 숟갈 먹고서는 더 이상 못 먹을 것 같아 밥그릇을 넘겨주고 마사이들이 낡은 핸드폰 화면으로 보여주는 마사이 전통 노래를 같이 들었습니다. 박자도 흥이 넘치고 노랫소리도 경쾌해서 재미있게 같이 보고 있는데 헬렌의 가족이 직접 노래까지 해가면서 제작한 거라고 하네요. 저는 나중에 아프리카에 음악학교를 건립하고 싶은데, 그날 사귄 마사이 친구들을 초청교사로 초빙해야겠다는 생각마저 들 만큼 정말 그들은 모두 정말 훌륭한 음악인이었습니다.

그때, 헬렌이 제 목에 은색 버클이 반짝반짝 화려하게 달린 마사이 전통 목걸이를 걸어줍니다. 마사이 음악에 맞춰 어깨를 흔들면 절로 버클들이 흔들리면서 짤랑짤랑 가벼운 소리를 내게 되는데요. 제가 들떠서 어깨춤을 들썩들썩하니 그들도 흥이 났는지 노래도 불러주고 자지러지게 깔깔댑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헬렌이랑 헬렌이 걸어준 마사이 목걸이. 여자들이 이걸 걸면 곧 결혼할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나보다 한 살 어린 헬렌이랑 헬렌이 걸어준 마사이 목걸이. 여자들이 이걸 걸면 곧 결혼할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 윤소은


벌레가 뚫고 들어가는 맨발, 짚신을 신어 봐요!

한창 음악을 나누고 나서 저는 제가 숙소로부터 주섬주섬 챙겨 온 지푸라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오는 길 내내 친구들이 쓸데없는 풀을 왜 들고 다니냐고 물었는데, 바로 한국에서 우리 조상들이 신던 짚신 삼는 법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죠.

작년 르완다에 봉사를 갔을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은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의 옷과 신발을 가지지 못합니다. 천을 두르거나, 한 치수 두 치수 큰, 구멍이 뻥뻥 뚫린 옷을 입고 있는 게 대다수이고, 신발로는 밑창이 다 닳아 너덜너덜한 고무신을 신거나 맨발로 평지를 뛰어다닙니다.

학교의 아동인권 동아리 친구들과 배우 한지혜가 케냐를 방문해 어린이들의 발에 서식하는 기생충들을(토양에 살다가 사람 발 피부를 뚫고 들어와 기생) 하나하나 뽑아주는 동영상을 시청한 후로 우리가 신발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은 안 되지만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줄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강화도 짚 공예관을 찾아가 짚신 삼는 기술을 익혀왔습니다.

마사이 마을 근처에는 짚이 없을 것 같아, 숙소 근처에서 벌레도 아랑곳 않고 땅에 떨어져있는 짚을 주워 질질 흘리면서 헬렌네 집까지 가져온 것이었죠. 처음 새끼 꼬는 과정부터 보여주려니까 손놀림이 신기한지 그 호기심 많은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이들. 하지만 아프리카의 짚은 한국의 것과 많이 달라서, 구부릴 때마다 딱딱 끊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조금이나마 만들어본 짚신 끝부분! 전기가 없어서 헤드램프 켜놓고 겨우겨우 짜맞추느라 고생했어요ㅜㅜ

조금이나마 만들어본 짚신 끝부분! 전기가 없어서 헤드램프 켜놓고 겨우겨우 짜맞추느라 고생했어요ㅜㅜ ⓒ 윤소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저를 보며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자, 나머지는 그냥 말로 설명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조목조목 설명해주었습니다. 가시밭길을 그냥 맨발로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다가, 제가 신발을 직접 만들 수 있다고 하니 굉장해 보였나 봅니다.

짚신 만들기 처음 부분 완성한 것을 인증샷으로 찍고 안경도 모자도 써보며 재미있게 사진을 몇 컷 찍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고요. 모두들 사진 찍고 찍히는 걸 좋아해서 다 같이 "나보, 아래, 운니!(하나, 둘, 셋!)" 소리치면서 추억의 앨범에 차곡차곡 보물들을 저장했습니다. 플래시 터지는 게 익숙지 않아 다들 눈을 반쯤 감은 채로 나오긴 했지만, 아시아 소녀와 아프리카 소년 소녀가 한 그림을 이루는 것 그 자체가 너무 아름다운 순간이었지요.

"한국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집에 사니?"

한창 떠들썩하게 놀고 있으니 밖에서부터 찬바람 냄새를 풍기며 어떤 웅장한 남자가 성큼성큼 들어옵니다. 알고 보니 방금 일터에서 돌아온 형이었습니다. 바쁘게 바깥 생활을 하다 돌아온 아이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이라도 먹이도 싶은 엄마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한국이나 케냐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루스 아주머니가 끓인 차를 홀짝홀짝 마시며 저와 깊은 대화를 시작한 패트릭. 16명의 남매 중 위의 10명은 다 커서 가족을 떠나 도심으로 옮겨가고 남은 6명의 아이들 중 첫째입니다. 저와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는 데도 키도 훤칠하고 대학에서 무려 생명공학을 공부하는 수재였던 패트릭은 한국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더군요. 누나가 2주 후면 한국에 방문하는 게 너무 부럽다면서, 한국의 도시 생활과 아파트 모양, 발전 정도에 대해서 거의 심문하듯이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도 공부를 마치고 돈을 벌자마자 한국에 놀러 가서 공업과 산업 발전을 눈으로 확인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분명히 그럴 수 있다고, 겨울 방학에 한국에 오면 꼭 크리스마스를 우리 집에서 같이 보내자고 당부하는데 갑자기 패트릭이 저에게 질문을 하나 던집니다.

"그러면 너는 한국인으로서 우리 집이 어떻다고 생각하니? 한국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이런 집에 사는 거니?"

그리고서는 정적이 흐르더군요. 제가 쉽게 대답을 할 수 없었거든요. 솔직히 똥과 흙으로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린, 지붕으로는 철판 하나 올려놓은 그런 집에 대해서 제가 뭐라고 할 수 있었을까요.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도 여기보다는 나은, 튼튼한 집에 살지만, 차마 그 것을 호기심이 넘치는 순진한 패트릭의 얼굴에 대고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해주었지요.

"음… 커다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난 너희 마사이족이 이렇게 대가족을 이루고 친척들과 가까이 사는 게 좋은 집에 사는 것보다 훨씬 부러워. 한국 사람들은 돈이랑 성공을 너무 좇는 바람에 가족 간의 애착 같은 게 점점 약해지고 있거든. 어쨌든 부럽다, 패트릭."

정말 빈말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어요. 밤늦게까지 가족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 그런 단란함은 찾아보기 힘들어진 지 오래인 한국의 집들이 헬렌의 소똥집보다 더 비좁게 느껴졌습니다.

패트릭과 대화하던 중에 헬렌이 제 머리를 자꾸만 쓰다듬더라고요. 자신의 짧은 머리카락과 비교해보더니 긴 생머리가 무척이나 부럽다고 수줍게 말합니다. 그곳의 여자들은 대부분 가르마도 없애고 머리를 한 방향으로 쓸어 미는데, 그 이유가 경악 그 자체였습니다. 가르마를 타고서 두피의 맨 살이 보이면 자는 사이에 바퀴가 나와서 그 부분을 물기 때문에 머리카락으로 모든 두피를 덮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외모에 관심도 많고 꾸미고 싶어 할 나이인데 열악한 환경 때문에 머리스타일도 마음대로 못하는 헬렌에게 제가 꼽고 있던 머리핀이라도 빼어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아무 무늬 없는, 편의점에서 몇 백 원이면 살 수 있는 검은색 핀이었지만 너무 예쁘다며 좋아하는 헬렌을 보며 눈물이 찔끔하지 뭐예요.

한 시가 넘어가니까 다들 하품을 하기에 들어가 잠을 청해보기로 했습니다. 에밀리, 헬렌과 저 셋이서 자게 될 옆의 방으로 들어갔는데, 방바닥에 하얗게 세워져 있던 것들이 인형이 아니라 진짜 양이라는 걸 알고서 또 한 번 놀랐습니다. 가로세로가 2미터도 채 되지 않는 곳에서 여자 셋이서 새우잠을 쭈그리고 자는 것도 충분히 힘든데, 양들 세 마리가 새벽 내내 제 발을 핥고, 자기들 몸을 박박 긁고, 울음소리를 내자 잘 수가 없더라고요.

거의 밤을 새다시피 선잠을 자며, 혹시 와글와글 거리는 벌레를 보면 잠을 청할 수 없을 것 같아 헤드랜턴은 아예 켜 보지도 못하고, 벼룩이 통통 튀어 다니면서 맨 살이 보이는 곳이면 닥치는 대로 문다는 소문에, 그리고 그 자리는 포크로 긁어도 성에 안 찰 만큼이나 가렵다는 소문에 겁이나 팔 토시를 발목에 장착하고 온 몸을 모기 기피제 (아쉽게도 벼룩 기피제는 없어서ㅜㅜ)로 목욕하고 누웠습니다. 그리고는 헬렌의 체온에 몸을 기댄 채 잠을 청해보았지요.

"깨끗한 물은 가축에게 먼저, 우리는 나머지를 마셔"

 헬렌은 우유를 짜고 쉑스는 염소를 돌보는 동안 한 컷! 검둥이도 흰둥이도 점박이도 종류가 다양하다

헬렌은 우유를 짜고 쉑스는 염소를 돌보는 동안 한 컷! 검둥이도 흰둥이도 점박이도 종류가 다양하다 ⓒ 윤소은


어느 사이 잠들었다 깼다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진짜 시골처럼 '꼬끼오' 거리는 수탉의 울음소리에 이튿날 아침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맑디맑은 아프리카의 아침공기 대신에 저를 맞은 것은 매캐한 연기뿐이었습니다. 눈곱 낀 눈에 가득히 들어찬 눈물을 짜내면서 거실로 나가보니 추위를 이기려고 장작을 가져다가 열심히 불을 때고 계시는 아줌마를 보았습니다.

눈도 돌아갈 것 같고 숨은 막혀만 가는데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질 않아, 그냥 저 혼자 아침 산책 하겠다는 핑계로 밖에 나와 있었습니다. 살을 에는 추운 바람에도 집 안에 들어갈 엄두를 못 내겠더라고요. 이산화탄소는 폐에 좋지 않기 때문에 통풍을 도와줄 배기통을 뚫어야 한다는 것도 모르고 연기를 그냥 들이쉬고만 있는 헬렌의 가족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차라리 걸으면 좀 더 체온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헬렌이 깨자마자 아침 산책을 나섰습니다.

헬렌 가족이 물을 길어다 쓰는 우물가를 지나가면서 '그래도 우물이 있으니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겠구나' 하고 기뻐했는데, 헬렌이 덧붙입니다.

"언니, 우리는 우리보다 동물이 더 중요해요. 우리에게 우유도 주고 고기도 주니까요. 그래서 깨끗한 물은 가축들에게 먼저 주고 우리는 나머지를 마셔요."

하긴, 이전에도 마사이 사람들의 죽음 풍습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죠. 마사이 노인들은 자신이 살아있는 한 가족에게 민폐가 되기 때문에 죽을 때가 다 되면 사자 소굴에 자진해서 들어가 사자 밥이 된다고 합니다. 물론, 자연을 사람처럼 생각하는 마음 역시 좋지만, 마사이족 친구들이 나쁜 물을 마시고 사는 사실은 그래도 마음이 아리도록 안타까울 수밖에 없더라고요. 물통을 일 때 데리고 가는 당나귀, 젖을 짜내는 소와 염소, 귀여워서 애완동물로 키우는 고양이와 강아지, 그리고 아침을 알리는 닭, 침실을 지키다가 고기가 되어주는 양들까지.

신이 나서 동물들을 보여주는 헬렌에게 물었습니다. "헬렌, 너는 여기서 사는 게 행복하니?" 그러자 헬렌은 망설일 것 없이 대답합니다. "응, 난 울타리도 좋고 산도 좋고 구름도 좋아요." 그렇게 마사이 친구들은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주어진 자연에서 그대로, 욕심 없이 행복하게.

그런 소박한 삶의 추억을 한 구슬 구슬마다 담아 만든 목걸이를 손수 걸어주는 루스 아주머니의 손길에서 저는 느꼈습니다. 나무에게나, 꽃에게나, 한국인에게나, 동물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마사이의 사랑을 말입니다.  

아프리카 케냐 마사이 봉사활동 짚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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