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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쓰러질듯 앙상한 뼈대만 남은 폐가, 월정사에서 주문진으로 가는 길 좌편으로 보인다. 일주일 어간에 허물것이라고 한다.
▲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근처의 폐가 곧 쓰러질듯 앙상한 뼈대만 남은 폐가, 월정사에서 주문진으로 가는 길 좌편으로 보인다. 일주일 어간에 허물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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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주소는 모르겠다. 강원도 평창군 월정사에서 주문진으로 가는 길, 구불구불 진고개를 넘어 강릉을 향해 가는 길에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폐가가 보였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담으리라 생각하고, 눈여겨 보았다.

집 분위기와는 다르게 앞 마당이 밭처럼 고슬고슬하게 정돈되어 있고, 근처에서는 삽차가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혹시, 주문진에 갔다가 오는 길에 이 집에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게 그냥 지나쳤다.

사람이 떠난지 아즈 오래되었음을 알려주는 폐가
▲ 폐가 사람이 떠난지 아즈 오래되었음을 알려주는 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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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혹시나 지나쳤나 싶었는데 그리 어렵지 않게 그 집을 찾았다. 여진히 공사중인 삽차, 행여라도 저곳에 들어가 사진을 담을 때 집을 덮치는 일은 없겠지 하면서 거리를 재 본다.

설마, 아무리 사진을 담는데 열중해도 삽차가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할까... 혹시라도 사진을 담겠다고 하면 못하게 할까봐 삽차 기사의 눈을 피해 폐가로 들어갔다.

오래된 폐가의 문과 기둥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졌다.
▲ 폐가 오래된 폐가의 문과 기둥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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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뼈대만 남았다. 살림의 흔적이라는 것도 거반 없다. 나뭇가지와 수숫대와 진흙으로 안과 밖의 경계가 이뤄진 위태위태한 벽이 그들의 삶이 얼마나 궁핍했던가를 알려준다.

지금 그 옆에 지어진 집주인이 이곳에 살았었을까?  그래도 지금 사는 집은 번듯하니 덜 슬프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곳에 살 적엔 어떠했을까 싶다.

뒷꼍에 버려진 TV, 어쩌면 그것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기구였을지도 모르겠다.
▲ 폐가 뒷꼍에 버려진 TV, 어쩌면 그것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기구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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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키웠던 것으로 추정되는 그릇, 외로운 산골생활 개는 좋은 친구가 되었을 터이다.
▲ 폐가 개를 키웠던 것으로 추정되는 그릇, 외로운 산골생활 개는 좋은 친구가 되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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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가제도구란 겨우 이 정도였다. 낡은 브라운관 TV와 벽지를 대신해서 붙인 신문지,
개밥그릇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릇 두 개, 그것이 전부였다. 다른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젠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있다. 인간은 문명의 이기를 등지고 살아갈 수 없는 없을까?
▲ 폐가 이젠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있다. 인간은 문명의 이기를 등지고 살아갈 수 없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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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빛이 허물어진 지붕 사이로 들어온다. 안과 밖은 나뭇가지와 짚, 진흙이 경계를 이루고 있으니 겨울이면 찬바람에 얼마나 떨었을까?
▲ 폐가 기울어진 빛이 허물어진 지붕 사이로 들어온다. 안과 밖은 나뭇가지와 짚, 진흙이 경계를 이루고 있으니 겨울이면 찬바람에 얼마나 떨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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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흔적이 남아있고, 뼈대만 남도록 허물어진 지붕 서까래 사이로 들어온 빛이 슬프게 느껴진다.

어쩌면, 여기에 살던 이들과 단 한 번의 교류도 없이 나는 나대로의 느낌만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 나의 삶의 단편들로 인한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느낌들을 터부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이지만,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꿋꿋하게 버텨주었다.
▲ 폐가 앙상한 나뭇가지들이지만,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꿋꿋하게 버텨주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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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지가 다 떨어진 문, 이젠 새 봄 혹은 가을이 와도 새창호지로 꽅단장할 날은 없을 터이다.
▲ 폐가 창호지가 다 떨어진 문, 이젠 새 봄 혹은 가을이 와도 새창호지로 꽅단장할 날은 없을 터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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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 있을 때 이 집의 내력에 대해 아는 분이 오셨다.

"아주머니가 살던 집인가요?"
"아니, 노부부가 살던 집인데, 다 돌아가셔서 이제 다음 주에는 헐거예요."

무너진 집, 그 너머로 펼쳐진 푸름과 갈라진 벽 사이로 파고든 햇살이 무심하게 느껴지는 오후다.
▲ 폐가 무너진 집, 그 너머로 펼쳐진 푸름과 갈라진 벽 사이로 파고든 햇살이 무심하게 느껴지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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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의 이야기는 그랬다. 본래 땅주인은 자신들인데 외지에 나갔다 돌아오니 노부부가 무단으로 자신들의 땅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 큰 집은 아니라서, 그냥 살 수 있는 동안 살라고 했단다.

그게 몇 년인지는 묻지 않았지만, 이제 노부부는 돌아가셨고, 공사를 하는 김에 그 집도 사나흘 뒤면 헐 것이라는 말을 했다. 문득, 그곳에 살던 노부부는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했다. 최근 몇 년 안에 돌아가신 것이라면, 그 언젠가 그곳을 지나며 만났던 그 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니면, 전혀 만난 적이 없었더라도 동시대를 살아오지 않았는가.

사라져 가는 집, 누군가 살았던 집, 그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태그:#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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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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