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황금의 제국>의 최서윤(이요원 분)

SBS <황금의 제국>의 최서윤(이요원 분)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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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성(박근형 분) 회장의 임종은 가여웠다. 싸인 하나로 수조 원을 움직이고, 식탁에서의 말 한 마디로 백화점의 주인을 바꾸는 자였지만, 죽음을 눈앞에 둔 그의 눈빛에는 그 누구보다도 깊은 두려움이, 억울함이, 후회가 서려있었다.

운명하기 일보 직전, 황급히 뛰어 들어온 최서윤(이요원 분)에게 남긴 마지막 한 마디 "네 어미…" 최서윤은 엄마 걱정은 하지 말라고, 끝까지 엄마를 지켜주겠노라고 그의 신음소리 앞에서 다짐하며 애통해하기만 한다. 결국 네 어미가 너의 등 뒤에서 칼을 꽂게 될 거라는 것을, 그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마지막 유언이었음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서는 말이다.

29일 방송된 SBS <황금의 제국> 9회에서는 최동성 회장의 죽음과 그 죽음이 몰고 온 거대한 후폭풍이 그려졌다. 예상대로 최동성 회장의 죽음은 성진그룹 사람들 모두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며 노골적으로 이빨을 드러내게 했다. 부모가 자식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형제가 형제의 옆구리를 찌르는 처참한 사투에 신호탄을 쏜 것이다. 덩그러니 비어져 있는 성진그룹의 후계자 자리에 누가 먼저 올라가 앉게 되는지, 그 최종 미션 하나만을 위해서 말이다.

최동성 회장은 죽고 난 후에도 비참했다. 자식들이 그의 장례식까지도 자기네들의 권력 쟁취의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사회장으로 치르자는 최서윤, 가족장으로 치르자는 최원재(엄효섭 분). 이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기 보다는, 성진그룹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얼마나 더 견고하게 다지느냐를 염두에 두고 각각 사회장과 가족장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한정희(김미숙 분)는 가족장을 지지하는 것에 뜻을 함께 했다. 일단 최원재를 밀어주어 최서윤을 떨어뜨려 놓고, 그 후에 최원재를 제거해버린 다음, 자신의 아들 최성재(이현진 분)를 회장 자리에 등극시키려는 일념 때문이었다.

결국 최동성 회장의 장례식은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최원재가 최민재(손현주 분)에 장태주(고수 분)까지 끌어들여 가족장을 치르겠다는 급작스런 기자회견을 벌인 끝에 성사된 것이다. 이로써 세간의 시선은 최서윤이 아닌 가족장의 상주인 최원재에게 쏠리게 됐다.

아버지 영정 앞에 헌화하는 것을 최원재에게 양보하면서 최서윤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가족장은 최원재를 좌청룡 우백호를 얻은 막강한 세력으로 거듭나게 했고, 최서윤을 예상치 못한 지략에 무릎을 꿇는 패배자로 만들어 버렸다.

'회장' 최서윤, '강자'의 기준에 대한 다른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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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제국>이 그려나가는 이야기는 단순하다. 성진그룹 사람들의 권력 다툼이다. 반전에 반전이 도사리고 있고, 긴장감 넘치는 순간이 전편에 걸쳐 진을 치고 있지만, 이 모든 장치들은 '사람 나고 돈 난 것이지, 돈 나고 사람 난 것이 아니다'라는 하나의 메시지를 향해 있다.

이날 방송에서 장태주는 이 드라마의 주제를 언급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하다 떠나고, 큰 기업을 일구다가 떠나고… 뭐가 다릅니까?" 염세주의가 아니었다. 이는 돈의 유무로 인권의 경중을 따질 수 없다는 뜻이었으며, 죽음 앞에서는 그런 높고 낮음을 가리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42개의 계열사를 일구신 분이에요"라는 최서윤의 반박이 실소가 나올 만큼 쓸쓸하게 들렸던 것은 최동성의 업적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이미 세상을 떠난 자를 대신한 항변 치고는 너무 허접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최서윤이라는 캐릭터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황금의 제국>은 손현주가 그리는 최민재와 고수가 연기하는 장태주가 얼마나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내는가가 관건인 작품이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예고편이 제작되었고,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들이었으며, 대중들과 언론들은 그들에게 가장 많은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이제 드라마의 실세는 그들에게서 이요원에게로 쏠리게 된다. 지난 주부터 <황금의 제국>의 중심에는 그가 연기하는 최서윤이 서 있다. 최동성의 죽음 후에 그의 존재감은 조금씩 더 뚜렷해지고 있다.

스토리상 그녀는 주인공일 수밖에 없다. 최동성이 가장 신임을 하고 후계자로 지목을 한 인물이었기에 성진그룹 내에서의 암투가 그녀를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을 지지해준 유일한 사람 최동성이 세상을 떠났다. 졸지에 그녀는 자신을 에워싼 모든 이들의 최고의 먹잇감이 되고 사냥감이 되고 말았다. 갈등과 대립, 음모와 반전은 언제나 그녀와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의미가 부여되고 긴장하며 집중하게 된다.

작가는 최서윤을 캐릭터 자체만으로도 반전의 주인공이 되게 했다. 그녀의 상황을 보자. 알고 보면 그녀는 성진그룹 내에서 가장 나이가 적고 유약한 인물이다. 물론 최서윤 밑으로 최성재라는 남동생이 있지만 아버지가 다르기 때문에 순수한 가족관계로 봤을 때는 최서윤이 최동성의 막내 자식이다. 그녀의 위로 오빠가 있고, 언니가 있다. 또 뛰어난 경영감각을 지닌 사촌오빠도 있다. 그런데 최동성은 그의 자리를 가장 어린 자식에게 물려줬다.

더군다나 그녀는 여자다. 여성단체에서 들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일지 모르나 보통 기업 드라마에서는 남자들끼리 판을 벌이고 음모를 꾸미며 대결을 펼쳐왔다. 여성은 그저 그들을 돕거나 속이는 감초의 역할 정도, <황금의 제국>에서 윤설희(장신영 분) 캐릭터가 비중의 상한선이었다. 그런데 최서윤은 그 선을 훌쩍 뛰어 넘어 극의 중심에 서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남자배우들의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한 손으로 쥐고 흔드는 강인한 철의 여인의 면모를 옹골차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돈이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무엇인가' '인권이란 무엇인가'와 더불어 '우리가 생각하는 강자의 기준은 무엇인가'까지 곱씹게 만드는 <황금의 제국>. 작가는 최서윤을 통해 힘의 주인공은 반드시 남자여야만 한다는 생각을, 서열에 따라 지배력의 크기가 좌우된다는 선입견을 타파하고 싶었던 듯하다. 어쩌면 더 큰 반전을 위해 최서윤의 상황을 더욱 유약하고 절망스럽게 만들어 놓을지도 모른다.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는 깜짝쇼를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DUAI의 연예토픽,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황금의제국 이요원 손현주 박근형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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