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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어느 날, 두 사람은 호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오연호가 말했다. "박 변호사님 같은 분이 정치를 하셔야죠", 박원순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오 기자, 또 그 소리입니까? 저는 시민사회와 더 맞아요."

그렇게 정치인이 되기를 거부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정치가 즐겁다고 했단다. 희한한 일이다. 아무리 그렇다 쳐도, <정치의 즐거움>(오마이북)이라니. 두 사람이 주말을 이용해 서른 시간 나눈 대담을 함축한 제목은 평범한 듯 보이지만 사실 도발적이다. 정치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박 시장은 이렇게 답한다.

"정치는 새로운 시대의 화두를 잡고 그것을 세밀한 정책으로 실천해내는 일입니다…(중략)…정치인, 행정가, 시민사회, 언론이 모두 시대의 화두를 놓고 경쟁하고 있어요. 누가 그 화두를 잘 잡아서 세밀한 정책으로 추진해낼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경쟁이죠."

하필 왜 '보도블록 르네상스'였나요

  "Leave no stone unturned(뒤집어보지 않은 돌이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고등학교 때 외웠다는 <정통종합영어>의 한 구절이다. 그는 책에서 "온갖 수단을 다 써서 백방으로 노력한다는 뜻"이라며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정책이 없는 만큼, 그동안 비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모든 문제를 정상화해야겠다는 욕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시장실에 빼곡하게 붙어있는 시민들의 메시지
 "Leave no stone unturned(뒤집어보지 않은 돌이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고등학교 때 외웠다는 <정통종합영어>의 한 구절이다. 그는 책에서 "온갖 수단을 다 써서 백방으로 노력한다는 뜻"이라며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정책이 없는 만큼, 그동안 비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모든 문제를 정상화해야겠다는 욕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시장실에 빼곡하게 붙어있는 시민들의 메시지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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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치열한 경쟁에서 박 시장이 내놓은 작품은 확실히 뜻밖이었다. 박원순 연관 검색어로까지 자리잡은 '보도블록'이다. 박 시장 스스로 큰 줄기가 잡혔다고 평가한 보도블록 혁신은 보도블록 10계명을 통해 구체화됐다. 쉽게 표현하면, 너의 공사를 숨기지 말라(실명제), 부실 공사를 섬기지 말라(원스트라이크 아웃제), 11월 30일을 지켜라(긴급 제외 공사는 11월 말까지 마무리) 등 내용이 담겨 있다.

박 시장은 책에서 "보도블록 문제가 우리 행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쇼윈도이자 모든 서울 시민, 아니 대한민국 국민의 스트레스 진원지란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힌다.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 여성이라면 백 퍼센트 공감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서울시장이 신경 쓰기에 너무 작은 일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한강 르네상스'도 아니고 '보도블록 르네상스'라니, 박 시장은 이렇게 말한다.

"보도블록, 사실 작은 일이죠.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서울시장이 뭘 그렇게 좀스럽고 쫀쫀하냐고 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달라요. 작은 것도 안 되는데 어떻게 큰 것이 되겠습니까? 시민들이 누구나 이용하는 보도블록조차 관리하지 못하는데, 다른 것은 제대로 감독하고 있을까요?"

사실 보도블록 문제는 구 시대의 화두로 일찌감치 역사책에나 기록됐어야 할 일이다. 박 시장의 말을 바꿔 표현하면 이런 화두를 60여년이나 풀지 못하니 정작 새 시대의 화두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 작은 일이 아니라 큰 일이다. 오세훈 시장 시절 대형 프로젝트를 총지휘하던 사람을 보도블록 혁신단장에 앉힌 것도 그래서였다고 한다. 박 시장의 실천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밀하다 못해 참 지독한 보도블록 '아삼륙'

 박원순 서울시장이 모두 직접 스크랩하고 있다는 집무실 파일들. 박원순의 정치는 '정교한 실천'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서울시가 내놓은 '보도블록 10계명' 또한 정치가나 행정가나 모두 구체적으로 역사를 바꿔놓기 위해서는 아주 정교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그의 소신을 함축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모두 직접 스크랩하고 있다는 집무실 파일들. 박원순의 정치는 '정교한 실천'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서울시가 내놓은 '보도블록 10계명' 또한 정치가나 행정가나 모두 구체적으로 역사를 바꿔놓기 위해서는 아주 정교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그의 소신을 함축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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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시장은 책에서 여러 차례 구체적인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어떤 이론이나 논리로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역사를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를 '정치적 인간 박원순'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꼽는다. "우리 사회가 각론은 약하고, 구체적인 실천도 부족하다"며 한창기 선생의 <뿌리깊은 나무>를 구체적인 실천의 본으로 제시한다.

그 구체적인 실천, 세밀하다 못해 지독해 보인다. 20년 넘게 시장님 얼굴 한 번 보기 힘들었다는 보도블록 담당 공무원은 짧은 기간 여덟 차례나 시장님을 대면해야 했다. 덕분에 야근 역시 20년 만에 가장 많이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도블록 10계명을 만든 후에는 실행 여부를 직접 주간 단위로 보고 받았다고 한다. 본청 공무원 15명과 각 구청 담당자 218명이 평일, 휴일, 야간 순찰을 각각 실시했다고 한다.

박 시장 표현을 빌리면 시장 잘못 만나 고생 참 많이 한 사람들은 물론 이들만이 아니다. 초유의 노숙자 전수 조사를 통해 노숙자 전체 리스트를 만든 공무원들, 서울시민복지기준선을 만들기 위해 162차례, 뉴타운 출구전략을 위해 약 3개월 동안 50차례나 회의 또는 모임을 준비했던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오연호 기자는 "박원순 시장은 참 독하다"고 했다.

박 시장 말로 '순화'하면 '정밀행정'이다. 정치가나 행정가나 모두 구체적으로 역사를 바꿔놓기 위해서는 아주 정교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함축한 표현이다. 생각해보니 보도블록 공사 자체도 그러하다. 맨 밑에 흙을 깔고 다지고, 그 위에 돌조각 등을 섞은 골재를 깔고 다지고, 다시 모래를 또 깔고 다져도 어긋남이 생기기 십상이다. '아삼륙(서로 꼭 맞는 짝)'이 되야 길이 생긴다.

박원순의 정치... 적을 일부러 만들 필요가 있나요?

 박원순 서울시장은 "어떤 이론이나 논리로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역사를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를 '정치적 인간 박원순'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꼽는다. 구체적인 실천을 위해 "반대하는 세력을 끌어와 지지자로 만드는데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정치 철학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어떤 이론이나 논리로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역사를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를 '정치적 인간 박원순'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꼽는다. 구체적인 실천을 위해 "반대하는 세력을 끌어와 지지자로 만드는데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정치 철학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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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로 새로운 시대의 실마리가 풀린다면, 다른 색깔 보도블록이라고 무조건 한쪽에 치워놓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또한 박 시장의 정치다. 순복음교회에 가서 수천 명에게 서울 시정에 대해 설명했다고 한다. 재향군인회 행사에서 보훈의 중요성을 강조한 연설로 여러 차례 박수 받은 이야기도 나온다. 그는 "지지하는 세력 뿐 아니라 반대하는 세력을 끌어와 지지자로 만드는데 공을 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반대하는 사람들까지 보듬고 어우르면서 나아갈 수 있다면 진짜 하고 싶은 가치 있는 정책을 추진할 동력이 생기지 않겠어요? 저는 이런 것이야말로 정치라고 생각해요. 적을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어요."

박 시장은 오히려 스스로를 굉장히 편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어떤 사안이나 정책에 대해 문제 제기가 있으면 그것을 가장 반대하는 사람을 먼저 만나 보라"고 권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결과적으로는 반대에 부딪히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전체 일정이 단축되고 정책의 실효성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알고 보면 '무서운' 정밀행정이다.

"지금까지 많은 개혁론자들이 실패한 이유는 공무원들을 적대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거나 최악의 건물로 비판받은 서울시 신청사의 경우 "이미 만들어진 만큼 어떻게 활용할 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말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그는 반대 세력 또는 기존의 관계를 잘 파악하고 고려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효과에 예민한 것이 시민이다.

'좌우 놀이' 아우르는 보도블록 정치

 최근 오마이북이 내놓은 <정치의 즐거움>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주말을 이용해 서른 시간 나눈 대담이 담겨 있다
 최근 오마이북이 내놓은 <정치의 즐거움>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주말을 이용해 서른 시간 나눈 대담이 담겨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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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나라 여성단체에서는 하이힐 신고 다니다가 인도 보도블록에 걸린다고 시위를 하지 않나 모르겠다. 시민의 평범한 권리인데…(중략)…그 사람의 배경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는데, 보도블록 한 가지는 내 맘에 쏙 든다." - 보도블록 십계명 소식을 듣고 한 블로거가 쓴 글

박 시장은 "어떤 정책을 선택할 때 기본적인 판단 기준을 정책 자체의 효과에 두고, 특히 시민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지를 순수한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정밀하게, 지독하게 실천하는 그의 정치 방식은 이른바 '좌우 놀이'를 아우르는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몇 가지 일에만 집중해서 큰 성과를 내면, 이를 바탕으로 시장을 한 번 더 하거나 대통령 자리까지 갈 수도 있겠지만, 자신은 그런 방식에는 정말 관심이 없다"는 그의 말은 거짓말 탐지기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방식의 정치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일이 또 얼마나 재미없는지는 굳이 부연이 필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은 '박원순'을 핑계로 이렇게 묻고 있다. 일상의 구체적인 개혁, 그것이 바로 새로운 정치의 즐거움 아니겠냐고. 당신은 세상에 어떤 '보도블록'을 놓고 싶냐고 말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쫓다보면 어느새 '나'의 야심이 무엇인지 묻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오 기자 또 그 소리입니까? 2017 대선을 물었더니...

 오연호 대표기자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정치의 즐거움> 원고 마무리 '인증샷'.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대담이 생생하게 읽히는 데는 그의 '발품'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오 대표기자는 박 시장과의 대담에 앞서 20여명의 공무원을 만났다고 한다. 뉴타운 문제로 심각한 부작용을 겪고 있는 양천구 신월6동 등 여러 '현장'을 돌아보기도 했다고 전한다
 오연호 대표기자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정치의 즐거움> 원고 마무리 '인증샷'.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대담이 생생하게 읽히는 데는 그의 '발품'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오 대표기자는 박 시장과의 대담에 앞서 20여명의 공무원을 만났다고 한다. 뉴타운 문제로 심각한 부작용을 겪고 있는 양천구 신월6동 등 여러 '현장'을 돌아보기도 했다고 전한다
ⓒ 오연호,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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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다음 대통령 선거와 관련 속시원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오연호 대표기자가 '대통령 선거의 해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 '서울시장 일처럼 대한민국 일도 즐길 수 있지 않겠는가' 등 질문으로 슬쩍 운을 떼긴 하지만, 그때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런 유도질문에는 절대 안 넘어간다"며 칼같이 자른다.

그래도 '상대역' 이야기까지 마다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정치의 즐거움>에는 노무현, 문재인, 박근혜, 안철수, 오세훈, 이명박 등 정치인이 '출연'한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안철수 교수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던 이야기 등이 눈에 띈다. 행간의 '朴심'을 넘겨짚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오 기자, 또 그 소리입니까?"라고 했다는 2007년 호텔 방 이야기도 자꾸 곱씹힌다.

그의 마음이 곧장 읽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 대표기자가 뉴타운 사업 모든 문제의 출발에 이명박 전 시장이 있는 만큼, "한 번 만나서 이 골칫덩어리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냐고 한 번 여쭤보시라"고 할 때 나온 박 시장의 반응이 그 중 한 예다.

"이제 와서요? 대통령일 때는 서울시 문제로 여러 가지 요청할 일이 있어서 만나자고 했어요. 하지만 퇴임할 때까지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박 시장의 어조나 표정이 종이에 그대로 나타나는 듯하다. 은평구 뉴타운 현장시장실에 있다가 입술이 다 부르텄다는 한 공무원 이야기나 뉴타운 문제로 심각한 부작용을 겪고 있는 양천구 신월6동 주민들을 만나고 온 소감을 전할 때도 그러하다.

이처럼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서울 정치 이야기가 생생하게 읽히는 데는 기자의 '발품'도 한몫 하고 있다. 오 전 시장과의 스타일 차이를 '증언'한 디자인 담당자, 휴식공간이 충분치 않다고 아쉬움을 내비치는 청소노동자, 마을공동체 종합지원 센터 직원, 정보공개정책과 담당과장 등 오연호 대표기자가 미리 만난 공무원만 20여명이라고 한다. 꼼꼼함에 역시 꼼꼼함으로 맞선 셈이다.

그래서 이 책제목은 <정치의 즐거움>이지만, 동시에 <회사의 즐거움>도 될 수 있다. 리더십, 인사, 소통, 조직 문화 등 사장님들이 특히 참고할 만한 이야기가 많다. 기자의 눈보다는 시민의 눈에 '뉴스'가 더 많이 보일 책이다. 이 책은 사실 '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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