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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축 쐐기돌 박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석축 쐐기돌 박는 작업을 하고 있다.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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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치고 돌아와 곧바로 샤워를 한다. 기분이 날듯 유쾌해진다. 땀 먼지 씻겨 나간 몸이 명랑해진다. 정신이 한껏 고양된다. 행복하다. 노동으로부터 받은 무엇보다 큰 대가다. 

얼마전부터 나는 (전북 남원시) 산내면이나 마천에서 한옥 짓는 현장 일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 일손이 정 딸릴 때 나를 부른다.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나간다. 그 이상은 내 체력으로 무리이다. 돈은 덜 번만큼 덜 쓰면 된다.

내가 하는 일은 그때그때 닥치는 막일이다. 남자 인부들과 차별 없다. 나처럼 공사판에서 막일 하는 여자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여자들은 고사리밭이나 농작물 농장 같은 곳으로 간다. 나는 돈 벌이를 해도 참 유별 떤다. 내 체격이 다부진 편도 아니고 청춘이 지난 지도 한참인데…. 보기보다 내가 깡과 근력은 타고났나 보다.  


한옥 짓는 공사판 막일, 오늘로 두 번째다

다랑논과 산골마을 공사현장과 마주보고 있는 도마마을과 다랑논
▲ 다랑논과 산골마을 공사현장과 마주보고 있는 도마마을과 다랑논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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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마천에서 일했다. 금대산 서편 400고지 쯤에 350평 터를 잡은 곳이었다. 지방도로 60호와 람천을 사이에 두고 다락논과 도마마을을 마주보고 있다. 남쪽으로 굽이굽이 이어진 지리산 자락과 백무동 골짜기가 보인다. 산세의 푸르름이 노동의 기운을 돋군다.

오늘 일터는 공사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곳이었다. 집터가 다듬어졌고 그 뒤쪽과 앞쪽에 자연석으로 높게 석축이 섰다. 기초를 다지고 있는 중이었다. 이 목수가 불러 이곳으로 내가 일을 온 게 오늘로 두 번째다.

함께 일할 인부들은 모두 인상이 선해 보였다. 마천에 사는 아저씨 두 분과 거창에서 왔다는 청년 둘이었다. 나와는 다들 초면이었다. 대구 사람인 건축주 부부도 와 있었다. 건축주 남자는 얼마 전 직장에서 은퇴했다는 60대 남자였다. 
 
오늘 할 일은 석축에 쐐기돌 박는 작업이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다.

아저씨들이 일하는 모습을 잠깐 지켜보았다. 그리곤 곧장 목장갑을 끼고 돌망치를 들고 석축 앞으로 다가갔다. 노동판에서 나는 빠리빠리 눈치껏 움직인다. 할 일을 지시받고 설명해주기를 기다리기보다 서둘러 살피고 짐작하기 일쑤다. 그럴 땐 내 머리가 잘 돌아간다.

'세상에 천한 직업은 없으며 다만 천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라거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에 종사하는…'라거나 '육체노동은 신성하다. 육체노동은 수행이고 명상이다…'와 같은 개념들이 내 노동의 근거인가. 아마도…. 그러나 나는 그저 내 몸을 부려 일하는 게 좋다. 
 
기온은 오르고, 땀은 줄줄, 머리는 어질어질...

돌망치 돌을 깨는 망치가 무겁다
▲ 돌망치 돌을 깨는 망치가 무겁다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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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오늘 할 일에 집중하자.    

1. 석축의 돌과 돌 사이의 빈틈을 잘 살펴 석축 아래 흩어져 있는 돌덩어리들 중에서 알맞은 모양의 돌을 고른다.  
2. 돌 모양이 여의치 않을 때는 망치로 돌의 모서리를 깨 틈에 꼭 박히게 모양을 만든다.   
3. 최대한 표면이 고르게 나오도록 끼운다.
4. 돌들이 단단히 맞물려 박히도록 끼운 돌을 망치로 친다. 

오늘 기온이 31도까지 올라갔다. 햇볕이 쨍쨍 했다. 얼굴이 홍단풍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눈앞이 어찔어찔했다. 땡볕 속에서 무거운 돌을 들어 옮기고, 깨고, 치고… 숨이 찼다. 온몸의 근육이 놀란 듯 여기저기서 아퍼~ 비명을 질렀다. 내색하지 않고 일에 열중했다.   

"아주머니, 정말 일 잘 하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네요…."

아저씨들이 이구동성으로 칭찬했다. 나는 칭찬을 들으면 갑자기 내가 뭐나 된 것처럼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일을 하는 유치한 사람이다. 그러니 헉헉거리며 젖먹던 힘까지 동원해 더 내달렸다. 있는 근력 없는 근력 다 쏟으며. 

고된 노동이 내 속을 정화시키나. 수십 년 동안 도시에서 두뇌 노동으로 스스로를 볶아대며 같잖게 욕망하고 절망하던 상처들이 흐릿해지는 느낌이다. 노동이 벅찰수록 내 안에서는 어떤 희열이 분명 피어오른다.

몸! 원초적인 몸짓. 순수하고 아름답다. 몸을 움직일 때 나의 실존이 더더욱 실감난다. 나는 힘껏 돌을 내리치며, 땀을 흘리며, 얼음물을 마시며… 내 몸을 사랑한다. 건강한 몸이 축복이고 감사다.

건강한 몸이 축복이고 감사... 더없이 안녕하다


점심상 산삼 두어 뿌리 넣고 끓인 백숙요리.
▲ 점심상 산삼 두어 뿌리 넣고 끓인 백숙요리.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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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건축주 여자가 엄나무를 넣고 끓인 백숙요리를 내놓았다. 산삼도 두어 뿌리 넣었다고 농을 치면서. 찬이 정갈하고 깔끔했다. 밥맛이 달았다. 그리고 반주로 마신 시원한 맥주 한 잔.

금대암 656년(신라 태종무열왕 3) 행우(行宇)가 창건.
▲ 금대암 656년(신라 태종무열왕 3) 행우(行宇)가 창건.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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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다섯 시, 일이 끝나자 이 목수를 졸랐다. 차를 얻어 타고 금대암이 있는 800고지까지 올라갔다. 금대암은 작고 고즈넉한 암자였다. 신라시대 때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절벽에 터를 잡은 곳이었다. 절은 조용하고 눈앞의 절경은 장엄했다.

기운이 고요하고 푸르렀다. 금대암전나무와  천왕봉과 지리산 능선을 바라보며 한참을 너럭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하루의 피로와 화기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오늘 일 끝에 자연의 웅숭깊은 기운을 덤으로 얻었다.

품삯 8만 원을 받아들고, 이래저래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샤워를 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지금 더없이 안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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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귀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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