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고, 뜯고...고기 먹을 때만 쓰는 단어가 아닙니다. 음악도 고기처럼 먹을 수 있습니다. 음원, 라이브, 악기, 보컬 등을 각각 뜯다 보면, 어느새 맛있는 노래 한 곡을 다 먹게 됩니다. 하지만 포털 등에서 유용한 '개념 기사'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새롭고 의미 있는, 그럼으로써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평범한 대학생 박종원 드림 [편집자말]
<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시민기자들의 리뷰나 주장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물론 그 어떤 반론도 환영합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서태지 팬덤은 그간 '팬질'의 모범적 모델로 통하곤 했다. 해외 평론가들에게 그의 음악을 홍보하고, 그간의 음악적 업적들을 학술적 수준으로 평론했다. 예술작품에 대한 사전 검열 반대 운동을 벌여 공륜 심의제도를 철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팬들의 자발적 기부로 아마존에 서태지 숲을 조성 중이다. 이렇게 높은 지적 능력에 사회적인 개념까지 갖춘 그들이었다.

이 팬덤에 위기가 찾아 온 건 지난 달 서태지의 결혼 발표 직후였다. 팬 사이트에는 축하와 분노가 공존했다. 팬을 그만 두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일부는 안티사이트를 만들며 전의를 불태웠다. 일방적인 발표, 결혼 상대의 나이차. 마음이 돌아선 명분은 여러 가지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자신이 사랑한 남자의 결혼, 그것을 견디지 못한 팬들의 질투였다. 만질 수도, 만날 수도 없는 남자를 향한 집착이었다.

 서태지의 딜레마는 아티스트형 아이돌의 미래다. 팬덤과 마니아, 그 누구도 뮤지션을 온전히 구원하지 못한다.

서태지의 딜레마는 아티스트형 아이돌의 미래다. 팬덤과 마니아, 그 누구도 뮤지션을 온전히 구원하지 못한다. ⓒ 서태지컴퍼니


헤비 사운드 로커와 아이돌 팬덤의 묘한 동거.

결론적으로 이 모든 것은 데뷔와 함께 주어진 서태지의 한계였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앨범에서 그는 짧은 머리에 펑키 스타일의 복장을 하고 세상에 나타났다. 춤과 멜로디, 의상, 모든 것이 화려했다. 파격적이면서도 대중들이 쉽게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융통성 있는 사운드였다. 지금과는 다르게 예능에도 얼굴을 자주 비췄다. 나이 갓 스물에 곱상한 얼굴이었다. 환호한 건 여고생들이었다. 그는 영락없는 하이틴 스타였다.

팬덤의 속성 역시 아이돌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은퇴 후에도 팬들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솔로로 복귀한 그의 음악은 욕이 들어간 미국식 뉴메탈이었지만 그를 지켜준 팬들의 감성은 여전히 하이틴 스타를 바라보던 시절 그대로였다. 팬들은 "메탈 공연에서 꽃가루 뿌리지 말라는 건 음악적 선입견일 뿐"이라는 논리로 자신들을 방어했지만, 아이돌 팬덤이 가진 본질까지 커버할 순 없었다. 그 모순이 결국 그의 결혼으로 인해 터졌다.

무의미한 가정이지만, 서태지가 시나위 시절부터 꾸준히 로커로서의 모습만을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지금의 영향력과 팬덤의 존재 유무가 서로 뒤바뀐 모습 아니었을까. 선택엔 대가가 따른다. 가요계는 특히 그렇다. 열매가 달콤할수록 극단적인 시련의 강도도 그만큼 커진다. 헤비한 록 사운드를 지향하는 그의 음악 인생에서 아이돌 시절의 팬들은 언젠가는 한 번 정리돼야 할 부분이었다. 그 때가 너무 늦게 찾아왔을 뿐이다.

서태지의 딜레마는 아티스트형 아이돌의 미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서태지는 아티스트를 지향하는 아이돌의 미래다. 남자로서 자신을 사랑해주는 팬덤은 자신의 사적인 사랑을 용납하지 않는다. 자칫 음악적 성과를 내는 데 필요한 기반들이 통째로 사라질 수 있다. 마니아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스스로를 개념차다 자부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막귀'라고 조롱하는 팬덤보다도 판을 적게 산다. 자유는 지킬 수 있으되 슈퍼스타로 성장할 순 없다. 딜레마다.

 솔로 활동 이후 서태지의 음악은 대중과 거리가 있었지만, 그의 팬들은 여전히 아이돌 팬덤의 관성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솔로 활동 이후 서태지의 음악은 대중과 거리가 있었지만, 그의 팬들은 여전히 아이돌 팬덤의 관성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 서태지컴퍼니


동시에 서태지 팬덤은 아티스트를 지향하는 아이돌, 그 팬들의 미래기도 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른 여자에게 오빠를 빼앗겨버린 팬덤의 방향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마니아와 팬들이 한 울타리 안에서 사이좋게 공존하는 게 가능할까. 그의 음악 인생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서태지 팬덤은 이제 그 물음에 답을 내기 위한 지난한 과정에 돌입했다. 고민의 끝이 무엇일지는 물론 장담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의 고민이 자신들의 사랑, 그 형태를 자각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랑과 이기심이 종이 한 장 차이임을, 그것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현실의 사랑을 통해 이미 뼈저리게 깨닫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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