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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이후 시작한 한반도 위기가 몇 달째 지속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코리아연구원(knsi.org)과 공동으로 현재의 한반도 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특집을 8회에 걸쳐서 진행하고자 합니다. 코리아연구원은 정책대안과 국가전략 제시를 목적으로 하는 네트워크형 싱크탱크입니다. 이번 특집을 통해서 중국의 대북정책,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환경과 위기해법, 개성공단의 위기와 대안, 군사적 충돌 가능성과 신뢰구축, 남북관계 진단과 방향, 미국의 대북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서 현위기의 해법을 찾아가고자 합니다. 독자여러분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이번 특집에 참여하는 필진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장환(한신대 교수), 최종건(연세대 교수), 김진향(한반도평화경제연구소 소장), 김종대(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서보혁(통일평화연구원 HK 연구교수), 송영훈(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 김창수(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 김연철(인제대 교수), 김창환(미국 켄사스대학교 교수). [편집자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통일에 대해 '진지했다'고 믿는다. 그는 통일을 자주 얘기했다. 임기 중 3단계 통일방안을 제시하며 중요하고 급한 문제로 통일세를 제안했고, 퇴임 연설에서는 한국의 미래가 통일에 달려 있고 서둘러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일에 진지(?)했던 이명박 대통령

지난 4월 23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이명박 전 대통령. 이날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후 첫 해외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지난 4월 23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이명박 전 대통령. 이날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후 첫 해외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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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헌법이 규정하는 대통령의 의무와도 잘 맞는다. 헌법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헌법 66조에서는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진지한 태도에도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남북관계는 대결로 점철됐다. 그의 임기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으로 시작됐고,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마무리됐다. 같은 당에 뿌리를 두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시작은 개성공단의 잠정폐쇄다. 왜 이렇게 됐을까.

통일을 실현 가능한 목표로 삼는다면, 다음 질문은 그 방법이다. 문제는 그 방법을 모른다는 데 있다. 어떤 식의 통일이든 통일은 체제의 변화를 동반하게 돼 있고, 체제의 변화는 곧 새로운 제도의 확립을 의미한다. 여기서 제도란 법률적 규정에 한정되지 않고, 장시간 유지되는 사회조직의 체계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통일은 새로운 제도의 설립을 요구하지만, 한 사회의 제도가 어떻게 설립되고 유지되는지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과학자들은 제도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여러 제도가 상호보완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도 알고, 한 번 제도가 성립되면 오래 지속된다는 것도 아는데, 도대체 그 제도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2011년 미국 국립과학재단이 꼽은 사회과학의 10대 난제 중 하나가 바로 효율적이고 유지가능한 제도의 생성 문제였다.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은 사회과학의 10대 난제

한 국가에 새로운 제도의 성립, 레짐체인지를 목표로 거대한 군사작전을 펼친 사례가 바로 부시 대통령 시절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다. 있지도 않은 대량 살상 무기의 존재가 이라크 침공의 직접적 빌미였지만, 당시 신보수주의 이론가들은 후세인 정권 붕괴 후 들어설 새로운 민주주의 정부가 중동 전체에 끼칠 긍정적 영향에 대해 논리적 근거를 제공했다. 결과는 처참한 실패. 새로운 민주주의 정부가 아니라 새로운 혼돈상태가 오래 지속됐다. 인류 사회는 기존 제도를 붕괴시키는 방법은 알지만 새로운 제도를 설립시키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재확인했다.

통일을 목표로 삼고 방법을 제시하는 건, 누구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에 대해 '나는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북한이 주장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나, 이명박 정부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한 사실상의 내부 붕괴를 기대하는 흡수통일이나, 주석궁에 탱크를 몰고 들어가는 것이나 모두 마찬가지다.

이전에 존재한 적이 없던 두 체제 연방제 국가를 설립해 통일을 이루겠다는 낮은 단계 연방제는, 애초부터 새로운 제도의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어 내게는 매우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홍콩·마카오가 전례가 되는 일국양제는 한 체제의 일방적 군사적 우위에 근거한다. 모두가 알 듯, 이 제도의 성공은 중국 체제의 자본주의화가 크게 작용했다.

군사·정치적으로는 홍콩 마카오가 중국에 복속된 것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이 홍콩에 복속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사적으로 비등한 두 체제가 한 국가 내에 존재하는 제도는 통일로 가는 과도기가 아니라 내전으로 가는 첩경이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국가에서 두 체제, 두 제도의 양립은 주로 내전으로 해소됐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과거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군사적 강경책은 포퓰리즘에 불과

거수경례받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은 지난 4월 23일 군(장성) 보직 및 진급 신고 당시 모습.
 거수경례받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은 지난 4월 23일 군(장성) 보직 및 진급 신고 당시 모습.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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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나 내부붕괴론은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의 이라크 침공론과 유사하다. 통일을 성취 가능한 목표로 삼는 대북 정책은, 그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남북 군사대결이나 대북공작에 치중하기 쉽다. 목표가 분명하고, 방법도 눈에 잘 보여서, 단기적으로 국민을 설득해 인기를 누리기에도 좋다.

하지만 이 정책은 그 과정에서 남북 대결을 초래하고 설사 성공하더라도 결과는 비극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북의 기존 제도를 파괴하고 통일을 선언할 수는 있겠지만, 그 후 어떻게 새로운 제도를 안정적으로 설립한다는 것인가? 북의 체제를 파괴시킨 후 이뤄질 통일은 꿈에도 소원이었던 바를 이루는 축복이 되기보다는 오랫동안 씌워질 저주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는 국민총소득 기준으로 39배, 1인당 국민소득으로는 19배다. 많은 북한 주민들이 기아로 고통받고 있다고 한다. 통일 전 1984년에 동독의 1인당 GDP는 서독의 90%에 달했다. 외환 위기를 겪고 동독이 붕괴될 당시에도 당시 서독과 동독의 1인당 소득 격차는 2배가 넘지 않았다.

그럼에도 독일 통일 비용은 매우 값비쌌다. 북한은 동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프라가 낙후돼 있고, 오랜 빈곤으로 북한 노동자의 기술수준·신장·두뇌발달이 저하돼 있다. 그나마 있는 생산시설도 국제 기준에 맞지 않았다. 다른 저개발국과 달리 노령화도 상당히 진행돼 생산가능 인구도 상대적으로 적다.

탈북 새터민들의 대한민국 적응이 상대적으로 순조로운 것을 보고 북한 주민도 이들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자발적인 초기 이민자들은 건강하고 모험심이 강하고 개척정신이 높은 집단이어서 경제적 성공확률이 높지만, 난민은 자발적 이주민들과 달리 경제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오랜 기간 빈곤 속에 산다.

이는 인구학 연구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바다. 북한의 붕괴에 의한 통일은 5000만 인구의 국가가 2500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과 유사하다.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던 일이다. 통일세 조금 걷어서 해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제 막 얘기를 시작한 복지국가건설과 같은 희망은 통일과 함께 거품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통일 후 남북한 주민 모두 오랜 시간 고통을 겪을 것이다. 남북한 관계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대 비극이 전쟁이라면, 그다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은 갑작스러운 통일이다.

평화공존을 현실의 목표로

지난 몇 년간 봐왔듯이 통일은 극심한 이데올로기 대립을 초래하는 주제다.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체제를 세우자는 것인지 합의하기 어렵다. 한쪽은 종북세력으로 다른 쪽은 전쟁세력으로 몰며 싸웠다. 통일 논의는 내부의 분열을 초래한다. 그렇다면 진보적 통일 논의는 남북 화합에 도움이 될까?

북한이 진보 진영의 통일 논의를 반길지 의심스럽다. 그 과정이 어찌 됐든 현실적으로 통일 후 체제는 북한의 현 체제보다는 남한의 현 체제에 훨씬 가까울 것이다.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북의 입장에서는 남한의 모든 통일 논의는 북의 체제에 위협이 된다.

그래서 어쩌자는 말인가? 통일은 잊자. 대신 통일은 미래에 우연히 찾아올 상징적 목표로 삼고, 현재는 평화 공존에 치중하자.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진보와 보수 모두 평화를 바란다. 여야 모두 목표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논의는 방법론의 효율성으로 한정된다. 박근혜 정부 설립 후 통일이라는 단어가 논의에서 사라지고 대신 평화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나는 이 변화를 환영한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조만간 북한이 붕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이명박식 노선'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깨닫고서 통일보다는 평화에 방점을 둔 노선인 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미수금 명목의 142억 원을 지불하고 개성공단 잔류 인원 7명이 모두 귀환했다. 우리 국민이 북의 인질이 되는 우려스러운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두고 약간의 신뢰가 쌓였다고 평가했다. 긴장 국면이 조성되자마자 포퓰리즘을 발휘해 국방·외교 라인을 모두 전쟁 전문가로 채웠던 박근혜 정부가 자신의 노선에서 이탈하지 않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창환님은 미국 켄사스대학교 교수입니다.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통일개념, #낮은단계 연방제, #일국양제, #제도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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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연구원은 통일외교안보, 경제통상, 사회통합 분야의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네트워크형 싱크탱크입니다. 아름다운 동행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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