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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의 19집 '헬로'
 조용필의 19집 '헬로'
ⓒ Y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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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보름 전, 조용필의 <Bounce>(이하 바운스)가 공개된 후의 일이다. 당시 호기심에 조용필의 신곡 <바운스>을 들었던 나는, 발랄한 멜로디와 조용필의 음색에 홀딱 반해버렸다.

인터넷에 올라온 음악 영상을 반복해 켜놓고, 한참동안 <바운스>를 감상했다. 그러다 어머니께 조용필에 대해 아는 척을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때만 해도, 어머니가 과거 조용필의 팬이었는지 까마득히 모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엄마~ 혹 예전에 조용필 노래 들어본 적 있어요? 새 노래 진짜 좋아요!"

아들의 호들갑에 어머니가 웃으셨다. 그리고 한마디 하신다. '엄마, 옛날에 조용필 팬이었어!'라고, 어머니는 <친구여>(5집.1983)와 <고추잠자리>(3집.1983)를 좋아했다고 덧붙이신다. 속으로 정말? 정말? 하고 놀랐다.

우리 어머니는 대학 때 성악을 전공하고, 아이들 피아노를 가르친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는 고고한 클래식, 오페라만 들은 줄로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조용필의 오랜 팬이었던 것이다. 조용필이 10년만에 새 음반을 냈다고 하자, 어머니도 궁금증을 가지신다. 한번 <바운스>를 들려 달라고 하신다.

누구 부탁인데 거절하랴~ 어머니와 나는 나란히 컴퓨터에 앞에 앉아 조용필의 노래를 감상했다. <바운스>를 끝까지 들은 어머니는 '조용필 대단하다'며 감탄하셨다. 나 역시 같은 반응,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조용필'이란 음악 공감대가 하나 생긴 순간이었다.

나는 자투리 시간에 어머니가 즐겨 들었다는 두 노래를 들어봤다. 인상적인 멜로디 속, 가사가 귀에 속속 들어왔다. 한편으로 신기했다. 조용필의 <친구여>는 내가 태어난 해에 나온 노래다. <고추잠자리>는 태어나기도 전에 나왔고 말이다. 그렇기에 내가 모르는 세계를 탐방하는 느낌이었다. 어머니의 추억을 공유하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 신기해요!"
"응, 뭐가?"
"엄마가 <친구여>, <고추잠자리> 같은 조용필 노래를 좋아했다는 게,"

헉, 할머니까지 조용필 팬이라고?

그 말에 엄마는 웃으며 한 가지 곡을 더 추천해 준다. <허공>(8집.1985)이란 곡이다. 나는 그게 엄마의 애청곡인줄로만 알았다.

"<허공>이란 노래도 정말 좋아!"
"그 노래도 엄마가 좋아하는 곡?"
"아니! 할머니!"
"엥? 할머니요?"
"응. 할머니도 조용필 좋아하셔, 특히 <허공>이란 곡을!
"우와."

엄마의 답변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할머니까지 조용필 팬이었을 줄은 정녕 몰랐다. 알고보니 우리집 뼈대 있는 조용필 응원 집안이었던 것이다.

우리 할머니는 댄스 음악을 들으면 뭔 음악이 저러냐고 어려워하시는 분이셨다. 그런 할머니와 내가, 같은 가수를 좋아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가만 생각해보니,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조용필이 음악적 다양성을 지닌 가수였기 때문인 것 같다.

조용필의 <허공>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친숙한 트로트고 <친구여>는 40, 50대의 감성을 파고든 발라드다. 20, 30대를 조용필의 19집 <헬로>는 로큰롤, 팝 발라드, 일렉트로닉, 프로그레시브 장르까지 다양한 음악이 섞여 있었다. 조용필의 음악을 좋아하는 연령대가 가 폭넓은 이유다.

덕분에 난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조용필 코드'에 속하게 됐다. 평소 난 어른들과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낡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어머니, 할머니와 같이 조용필의 음악을 좋아하고, 공유하는 것이 설렘으로 다가왔다. '가왕' 조용필의 컴백이 가져다준 선물이라면 선물일까.

조용필 19집 발매(4월 23일) 후, 약 10일 뒤인 5월 4일. 조용필은 열풍은 더욱 뜨거웠다. 조용필은 이날 TV 음악프로그램 1위 후보에 올랐다. 이날  MBC <쇼! 음악중심>을 지켜보는 내 손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근 몇 년 동안 가요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처럼 긴장한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둥두둥, 이날 <쇼! 음악중심> 1위 후보는 60대 가왕 조용필과 30대 국제가수 싸이(*로이킴과 케이윌도 1위 후보), 당사자들은 프로그램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경쟁의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용쟁호투, 진검승부 양상이었다.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었다.

나는 프로그램 말미 조용필의 무대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쉽게 조용필의 무대는 열리지 않았다. 알고보니 이는 과거, 조용필이 자기 자신과 한 약속 때문이다. 20년 전, 그는 음악 순위 방송에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고 한다.

조용필의 무대를 못 본 것은 아쉽지만, 한결같은 '용필 형님(?)'의 원칙은 멋스러웠다. 요즘 세상같이 원칙이 흐지부지되는 세상에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조용필은 여전히 그 신념을 지켜나가고 있다.

이날, <쇼! 음악중심>은 이런 마음을 달래주는 작은 선물을 안겼다. 직접 연습장을 찾아 조용필을 인터뷰한 것이다. 조용필은 인터뷰 영상에서 1위 경쟁을 하는 후배 싸이에 대한 칭찬을 잊지 않았다. 자신이 빌보드에 '한국의 마이클 잭슨' 이라고 평가를 받는 것이 싸이 덕분이라고 말한 것이다.

바운스 바운스~ 그의 1위에 깜짝 놀랐다!

가요계 대선배의 권위 대신, 후배들을 먼저 위하는 모습에서 진짜 가왕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조용필은 솔직했다. 인터뷰에서 최근의 인기에 대한 설레는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본인 스스로 64세의 나이에, 멋진 음악으로 성공을 이룬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 보였다. 인간적인 매력이 담긴 조용필을 말을 들으니, 그의 1위가 더욱 간절해졌다.

"마음이 긴장돼요. 걱정되고, 이게 아닌데..... 겁이나서 요즘 인터넷도 안 봐요. 나이가 있잖아요. 나이가 좀 젊어요?" (조용필. MBC 음악캠프 인터뷰중)

잠시 후 프로그램 MC들은 5월 첫 주의 1위를 호명했다. 음악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순간, 고대하던 이름이 호명됐다. 조용필이었다.

"이번 주 1위는 조용필씨입니다~!"

조용필.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내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뛰었다. 속으로 "대박인데!"를 외쳤다. 64세의 가수가 빌보드차드에 올라있는 국제가수 싸이를 제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1등은 조용필이었지만, 또다른 1위 후보였던 싸이도, 로이킴, 케이윌도 모두 만족했을 결과로 보였다. 특히 미국에서 활동중인 싸이는 비록 이날 2위를 했지만, 대한민국 가왕에게서 폭풍칭찬을 들었으니 마음만은 더없이 행복할 것 같다.

<쇼! 음악중심>에 출연한 19살 로이킴도 "조용필 선배님이 봤다면 흐뭇할 것 같다"고 밝게 웃었다. 이래저래 보기 좋은 조용필의 1위 순간이었다. 전날 조용필은 KBS <뮤직뱅크>에서 1위를 차지했기에, 이틀 연속 음악프로그램 조용필의 1위 수상은 빅뉴스라 할 만 했다.

나는 얼른 현관으로 달려가, 마당에 계신 어머니께 "엄마~조용필 <쇼! 음악중심> 1등 났어요!" 라고 소리쳤다. 그 말에, 어머니께서 <쇼! 음악중심>이 어떤 대회니?"냐고 궁금해 하신다. 앗차, 어머니 세대는 TV 음악프로그램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그래서 '싸이나, 소녀시대 같은 젊은 같은 가수들이 주로 1등 나는 음악 프로그램'이라고 설명을 곁들였다. 그제야 어머니도 깜짝 놀라며 '대단하다'고 감탄하신다. 아마 대한민국의 음악팬들 모두 같은 반응이지 않았을까.

10년 만에 음반을 낸 64세 조용필이 10, 20대 아이돌, 나아가 국제가수 싸이마저 제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 어머니 같은 오랜 조용필 팬은, 정작 음원도, 가요방송 순위 시스템도 모르는데 말이다. 정말 깜짝 소식이라고 뿐이 설명할 길이 없었다. 가만가만, 어서 이 기쁜 소식을 외갓집에 계신 '80대 조용필 팬!' 우리 할머니께도 얼른 전해드려야겠다.

덧붙이는 글 | '헬로 조용필' 응모글입니다.



태그:#조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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