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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광주광역시 광산구 선암동에 사는 김희정(27·가명)씨 부부는 청각언어장애인이다. 김씨는 지난 1월 아이를 출산했다. 아이는 예정보다 일찍 태어나 3주간 인큐베이터에서 지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김씨 부부는 광산구 나눔문화공동체 '투게더광산'이 집중모금해준 돈으로 병원비를 낼 수 있었다.

퇴원 이후 김씨 부부는 양육 문제에 봉착했다. 부모가 말소리를 들려주지 못하면 아이도 언어발달에 장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말소리를 들려줄 돌보미가 필요했다. 다시 한 번 투게더광산이 나섰다.

투게더광산은 인건비를 모금해 아이 돌보미를 구해주었다. 이제 낮에는 돌보미가 아기를 보고 밤에는 부모가 돌본다. 남편은 소리를 아예 들을 수 없지만, 김씨에겐 왼쪽 청력이 희미하게 살아있다. 투게더광산은 김씨에게 보청기를 구입해주었다. 밤에 아기가 울 때 어머니 김씨가 그 소리를 듣고 대처할 수 있게 해준 것.

아기는 옹알이를 하며 잘 자라고 있다. 투게더광산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김씨 부부는 기초수급자와 장애인수당을 받고 있지만, 그 수당은 출산과는 상관이 없다. 출산과 양육은 온전히 두 사람이 감당해야 한다. 이럴 경우 아기는 보육시설로 가기 쉽다.

[사례2] 2011년 스리랑카 출신 외국인노동자 안제나씨가 큰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졌다. 기댄 난간이 부서져 추락한 것. 장시간의 수술 후 그는 첨단종합병원으로 이송됐고, 두 달 만에 기적처럼 깨어났다. 하지만 눈 뜬 현실은 가혹했다. 치료비는 4580만원에 달했고, 다니던 회사마저 폐업해 그는 불법체류자가 되어 있었다. 고향에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와 부모님이 있었다.

투게더광산이 분주히 움직였다. 광산구의 시민, 기업, 단체에 알리고 인터넷포털에 사연을 올려 3500여만 원을 모았다. 첨단종합병원 김윤수 원장도 통 큰 결단을 내렸다. 성금을 제한 나머지 치료비를 받지 않은 것. 병원 임직원들도 350만원을 모아 안제나씨에게 귀국여비로 건넸다. 스리랑카의 의료현실을 감안할 때 치료와 재활이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해 여름 안제나씨는 안전하게 스리랑카로 돌아갔다.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 안제나 씨는 큰 사고를 당했지만 광산구 나눔문화공동체 '투게더광산'의 신속한 도움으로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 안제나 씨는 큰 사고를 당했지만 광산구 나눔문화공동체 '투게더광산'의 신속한 도움으로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 광산구청 복지연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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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광산이 없었다면 안제나씨는 어땠을까. 의도치 않았지만 그는 '불법체류자'였다. 제도의 틀 안에서 그가 긴급 의료서비스를 받기는 어렵다. 지원을 받더라도 긴 절차를 다 거치는 사이 병원비는 더욱 불어났을 것이다. 투게더광산은 신속했고, 안제나씨의 '귀국 이후'까지를 책임졌다.

"도농복합도시 광산구에 맞는 복지모델 만들자"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복지모델 '투게더광산'이 주목 받고 있다. 민과 관이 손잡고 기존 제도만으로 풀기 어려운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있는 것. 김희정씨와 안제나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투게더광산은 '사람, 그 이후'까지를 주목한다.

투게더광산 운영 원리는 민간과 관의 '협력과 네트워킹'이다. 둘은 대등하게 협력하면서 도움을 받을 사람과 줄 사람, 재능을 가진 사람과 재능 기부가 필요한 사람들을 종횡으로 신속하게 이어준다.

실무는 투게더광산 사무국과 구청, 각 동 위원회 등 세 곳이 맡고 있다. 각 동으로 사례들이 접수되면 사무국(민)과 구청(관)이 함께 지원방법을 신속히 찾아낸다. 제도 안에서 방법을 찾고, 안되면 민간 영역을 넘나든다.

'지원 근거 없음' '불법체류자' 등의 장벽에 막힐 뻔한 김희정씨와 안제나씨의 사례는 민-관 협력 체계 속에서 원활히 해결됐다. 출산 이후와 귀국 이후도 보장됐다. 투게더광산은 '이 제도는 무엇을 해주는가'가 아니라, '이 사람에게 절실한 것은 무엇인가'를 중시한다. '사람'을 기준으로 놓고 관과 민을 총동원할 때 비로소 사람 중심의 지원책이 나온다고 보고 있다.

투게더광산은 주민들을 춤추게 한다

현재 민선5기 광산구에는 여느 때보다 나눔과 복지활동이 활발하다. 기부금과 물품을 전달하는 형태에 그치지 않는다. 투게더광산은 텃밭 가꾸기, 다문화가족 어울림 행사, 도농교류 등 다양한 주민참여 활동을 펼친다.

투게더광산은 모금과 나눔 활동을 하는 기구가 아니던가? 투게더광산의 활동 분야는 그보다 훨씬 넓다. 투게더광산의 핵심 사업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배려계층나눔활동'이고 또 하나는 '지역공동체사업'이다. 지역공동체사업에도 중점을 두게 된 것은 바로 광산구라는 지역의 독특한 특징 때문이었다.

민선5기 출범 당시 민형배 광산구청장은 "광산구에 어울리는 맞춤형 복지모델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민 청장이 말한 광산구의 특징은 바로 '도농복합도시'였다. 광산구는 농촌지역과 신도심이 공존하고, 지역별로 소득 격차도 큰 자치구였다. 다음은 광산구 관계자의 말이다.

"기존처럼 모금하고 전달하는 식의 정책만 쓴다면, 어떤 지역은 일방적으로 기부만 하고 어떤 지역은 일방적으로 받기만 할 수 있어요. 이러면 주민 간에 위화감이 생깁니다. 그래서 광산구는 구민들이 공동체 의식을 갖고 나눔활동을 문화로 즐길 수 있게 사업을 짰어요."

기존 복지는 수혜대상을 '어려운 이웃' 또는 '소외계층'이라는 규정 안에 가두기 쉽다. 이른바 '선별적 복지'다. 투게더광산은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데, 이럴 경우는 전 구민이 다양한 도움을 주고받는다. 나눔과 기부는 주민들이 '한 마을에 산다'는 유대감이 클 때 더욱 원활해진다. 투게더광산이 주민 유대감을 북돋는 지역공동체사업에도 주력하는 이유다.

"나눔은 문화다" 투게더광산은 모금과 배분 등 '전통적인' 복지활동도 하지만, 주민들의 교류사업에도 힘써 '나눔' 행위를 문화로 즐기게 한다. 도농복합도시인 광산구의 특성을 감안한 사업방식이다.
 "나눔은 문화다" 투게더광산은 모금과 배분 등 '전통적인' 복지활동도 하지만, 주민들의 교류사업에도 힘써 '나눔' 행위를 문화로 즐기게 한다. 도농복합도시인 광산구의 특성을 감안한 사업방식이다.
ⓒ 광산구청 복지연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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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에서 '방법을 찾아볼게요'로

투게더광산의 성과는 많지만 무엇보다, 참여자들이 저마다 만족감을 느낀다는 장점이 크다.

"투게더광산에 CMS기부를 하면 영수증 처리가 된다. 좋은 일을 하면서 내 자신한테도 득이 된다. 내가 사는 동을 지정해서 후원을 하면, 내 돈이 어떻게 처리되고 누굴 도왔는지 가까이서 잘 알 수 있다."

기부자들은 투명성과 체계성을 좋아한다. 그리고 동네 안에서 주민을 돕고 그 상황을 시시각각 알 수 있는 점도 선호한다.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한 건강한 먹거리를 뜻하는 게 '신토불이'라면, 투게더광산은 '신토불이 복지'를 만들어낸다.

복지업무 담당자들의 성취감도 크다. 다음은 복지업무만 22년 째 맡아온 엄미현 광산구청 복지연계팀장의 말이다.

"예전에는 민원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지금은 '방법을 찾아볼게요'를 먼저 말합니다. 이 네트워크 안에서는 어떻게든 유연한 해결책이 나오니까 저도 적극적인 자세로 바뀐 거죠. 사무국과 구청 직원들이 매주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고, 복지학당을 열어서 같이 공부도 합니다. 제 사고도 훨씬 유연해졌어요."

투게더광산 실무를 보는 복지담당자들은 '복지학당'을 열어 공부도 한다. 민-관 협력 속에서 서로 시야를 넓힌다.
 투게더광산 실무를 보는 복지담당자들은 '복지학당'을 열어 공부도 한다. 민-관 협력 속에서 서로 시야를 넓힌다.
ⓒ 광산구청 복지연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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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사회복지사들의 과다한 업무량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총액인건비 제도와 사회복지통합관리망 제도가 원인으로 꼽히는데, 이 제도들은 사회복지사 자신을 '관리 대상'으로 격하하는 측면이 있다. 반면 투게더광산에서 복지담당자는 능동적인 주체다.

"기존 업무에 투게더광산 업무가 더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투게더광산은 기존의 모금 시스템을 효율적이고 간편하게 만든 측면이 있습니다. 또 예전보다 민원 해결을 훨씬 잘 해내니까 복지 담당자들의 성취감도 큽니다. 민원을 해결해주지 못할 때 복지직 담당자는 스트레스가 더 크거든요."

각 동의 투게더광산 위원회도 도움이 필요한 주민 발굴에 적극적이다. 투게더광산은 동네나 지인들 사이에서 알음알음으로 돕던 상부상조의 관행을 체계화한 셈인데, 이 과정에서 동 주민센터의 성과도 체계적으로 쌓이기 때문이다. 사회참여 욕구가 큰 사람들에게도 투게더광산은 좋은 '멍석'이 되고 있다. 재능 기부나 각종 마을 공동체 사업들이 그런 참여기회가 되고 있다.

외풍 막고 집행 신속한 민간재단으로 전환 준비해

투게더광산이 순풍만 타며 오늘에 이른 것은 아니다. 2010년 7월 민선5기 출범과 함께 광산형 복지공동체를 만들자고 했을 때, 공무원들은 업무 과중을 우려했다. 동 관계자들은 '혹시 구청장의 정치 사조직을 만들려는 것 아니냐'며 부정적으로 보기도 했다.

가능한 우려였다. 새로운 형태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존 지자체 산하의 복지재단 등을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실제로 타 지역 복지재단들을 보면, 자치단체가 출연을 하여 재단을 만들고 자치단체장이 이사장을 맡는 경우가 많다. 선거 국면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이유다.

2011년 6월 창립된 투게더광산은 처음부터 민간재단 전환을 염두에 두고 운영됐다. 단체장이 바뀌면 재단 분위기와 방향도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나눔문화재단' 창립을 준비하며 지난 4월에는 발기인 대회를 마쳤다. '정치적 독립'을 위해 설립기금 전액을 민간이 모금하고 있고, 4월말 현재 3억 원을 돌파한 상태.

더욱 신속한 복지제공을 위해서도 민간재단이 필요했다. 지금 투게더광산은 구조 상 지역사회복지협의체 속의 임의기구이다. 지역사회복지협의체는 2003년 '사회복지사업법'이 개정되면서 전국 시・군・구에 설치된 기구다. 투게더광산이 직접 모금을 할 수 없는 체제라서, 공동모금회를 통한 승인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구조에서는 모금액이나 물품이 전달되는 데 평균 20일 정도 걸린다. 독립된 재단을 만들면 집행이 훨씬 빨라진다. 안제나씨의 경우처럼 긴급한 사례들은 '신속성'이 절실하다.

지난 2012년 6월 투게더광산 출범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는 양파수확 품앗이 행사였다.
 지난 2012년 6월 투게더광산 출범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는 양파수확 품앗이 행사였다.
ⓒ 광산구청 복지연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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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구는 투게더광산이 민간주도 '나눔문화재단'이 되면 주민들의 자치 역량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단 현재의 민-관 협력체제를 유지할 계획이다. 이쪽과 저쪽이 서로 칸막이를 열고 연대해서 광산구만의 복지모델을 계속 진화시키자는 것이다.

창립 3년 째, 광산구에서 투게더광산은 위급한 사람들이 열 수 있는 '마지막 문'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비빌 언덕'이다. 공동체의 온기에 목마른 이들에게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복지는 중앙정부가 해결해야지 민간에 떠넘기면 안된다"라는 식의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투게더광산의 핵심은, 주민 스스로가 서로를 돌보는 것이다. 복지서비스인 동시에 활발한 주민자치 사업이다.

복지제공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가에 대해 광산구의 입장은 더욱 적극적이다. 민형배 광산구청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앙정부가 복지를 책임지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중앙의 제도란 실제에 적용되면서 사각지대를 갖기 마련이다. 또다른 안전망이 필요한 이유다. 무엇보다 주민 복지를 현장에서 생생히 다루는 지자체가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 중앙정부 차원의 복지시스템이 개선되기를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지자체에서 먼저 모범사례를 만들고 붐을 일으키려고 한다. 그 기운을 중앙에 올려 보내 우리사회 변화의 물꼬를 트는 것도 한 방법이다."

덧붙이는 글 | 이혜영 기자는 광산구청 정책홍보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투게더광산, #광산구, #광산구청, #나눔문화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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