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송포유> 포스터 원제: Song for Marion

▲ 영화<송포유> 포스터 원제: Song for Marion ⓒ 넥스트 엔터네인먼트 월드(NEW)


정지용의 시 <향수>에는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나온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그저 함께 있음이 익숙한 사람, 아내는 시간이 흐르면 실로 그런 존재가 된다. 그런데 그 때 즈음 진짜 사랑을 배울지 모를 일이다.

많은 시간이 통과한 노인의 작은 몸이 주는 메시지는 언제나 우리를 감동시킨다. 영화 <송포유>는 솔직히 뻔한 이야기이다. 특별한 반전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내용의 끝을 알고 보아도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감동받을 준비를 하고 스크린 앞에 앉는다. 역시 웬만한 사람들은 마음이 말랑말랑해져서 나온다. 송포유는 그런 영화이다. 늙은 사람들과 노래, 그리고 부부의 이야기이다.

영화<송포유>의 한 장면 아내 메리언의 합창연습을 돕는 남편 아서.

▲ 영화<송포유>의 한 장면 아내 메리언의 합창연습을 돕는 남편 아서. ⓒ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월드(NEW)




많이 다른 두 사람, 그래도 우리는 하나

나이 든 남자 아서(테렌스 스탬프)와 역시 나이 든 여자 메리온(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노부부이다. 병으로 몸은 많이 안 좋아진 상태지만, 늘 밝고 잘 웃는 아내 메리언과 무뚝뚝하고 늘 불만에 가득한 남편 아서는 이제 들어 있는 나이만큼 서로를 잘 알고 있다. 아서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괴팍한 노인으로 보이지만 메리언에게는 그야말로 자신의 반쪽이다.

아내 메리언은 젊은 음악교사 엘리자베스(젬마 아터튼)가 이끄는 마을의 합창단원이다. 남편 아서는 합창대회를 앞두고 열심을 내는 메리언이 못마땅하지만 아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막을 수 없는 터였다. 아내는 합창단 친구들을 사랑하고 그들도 그녀를 좋아한다.

병세가 악화됨에도 합창단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메리언. 어쩌면 마지막 공연이 될 수도 있는 그녀에게 지휘자 엘리자베스는 솔로를 맡긴다. 솔로 곡은 신디로퍼의 'True Colors'. '...나는 당신의 진실한 색깔을 알아요. 무지개처럼 아름답죠. 그래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람들은 모르는 남편 아서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아내는 온 힘을 실어 남편에 대한 사랑을 전한다. 하지만 여전히 무뚝뚝한 아서. 합창단보다도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것일까.

영화<송포유>의 한 장면 노래하는 아서

▲ 영화<송포유>의 한 장면 노래하는 아서 ⓒ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월드(NEW)



아내를 위해 노래하다

그러나 아내와 단 둘이 있을 때는 언제나 아내 위주. 아내의 병색이 깊어지자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아서. 아서가 늘 메리언을 돌보고, 메리언은 아서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못했는데, 실은 아서도 마찬가지였다. 메리언이 없는 세상, 생각만으로도 고통스럽다. 아서에게 힘을 주려는 메리언에게 '당신 떠나지마...' 라며 기대는 아서... 병든 아내의 어깨에 살포시 머리를 기대는 늙은 남편, 그들의 뒷모습은 내가 뽑은 가장 뭉클한 장면이다.

메리언이 죽은 후 세상과 더 높은 울타리를 쌓으려하는 아서,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아내가 그렇게도 좋아했던 합창단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그리고 다시 자신 앞에, 세상 앞에 선다. 그리고는 아내가 그랬던 것처럼 노래한다. '잘자요, 나의 천사(Good night, my angel:빌리 조엘의 Lullaby)'. '잘 자요, 나의 천사. 이제는 눈을 감을 시간이에요. 언제나 그대 곁에 있을 거예요...

많은 시간을 함께한 노년들의 사랑에는 화려하고 열정적이고 때로 호들갑스런 젊은이들의 사랑과는 다른 깊고 잔잔한 그야말로 '강 같은 사랑'이 있다. 함께 할 시간이 점점 줄어 들어감을 아는 자들의 사랑은 더욱 그러하다.

번역이 좋다, 원제 <메리언을 위한 노래:Song for Marion>를 <Song for you>로 과감하게 바꾼 것부터가 그렇고, 연금술사 합창단 역시 우리말로 센스 있게 번역하여 소화했다. 아서가 홀로 서있는 장면을 종종 멀리서 잡는 앵글이 그의 외로움을 전해주는 듯하다.

노인들의 여가문화, 이를 돕는 아름다운 선생님,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 가정에서 맞는 죽음, 구석 구석보이는 선진문화가 부럽기도 하다.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스티비원더의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 솔트 앤 페퍼의 Let's talk about sex, 셀린디온의 Unfinished song 등) 역시 일품이다.

부부는 신비로운 관계이다. 지지고 볶고 살면서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멋질 것도 없는, 그러나 나를 사랑하듯 사랑하게 되는 사람들, 부부.

이 아름다운 계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노래를 부르자. 노래가사에 의지해 사랑을 고백하자. 조금 못 부르면 어떠하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사랑하는 이와 함께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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