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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에) 있을 때와 나갔을 때 논리가 너무 달라지면, 다른 사람들의 눈을 떠나 스스로 우습고 초라해지는 거지."

박윤준 전 국세청 차장(53)의 말이다. 그는 지난 10일 28년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박 전 차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굴엔 여전히 아쉬운 구석도 엿보였다. 그러면서 "후회는 있지만 미련은 없다"고 털어놨다. 그의 '후회'와 '미련'은 무엇일까.

국세청은 국가정보원·검찰 등과 함께 권력기관의 한 축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세청은 내우외환에 시달려왔다. 내부 인사를 둘러싼 잡음은 끊이질 않았고, 정치적 외압을 둘러싼 논란도 여전했다. 정권의 입맞에 맞는 세무조사를 비롯해 국세청 출신 고위인사들의 전관예우도 마찬가지였다. 박 전 차장 역시 그런 국세청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봐 왔다.

30여 년 공직생활에 대한 소회를 묻자 그는 "퇴임하는 날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의례적인 퇴임사 대신 직원들에게 '당부'의 말을 직접 적었다고. 국세청을 떠난 후에도 직원들로부터 격려의 전화를 받는다고 소개했다.

"나의 과세논리가 객관적인가? 항상 자문하라"

지난 10일 퇴임한 박윤준 전 국세청 차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진은 지난 1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국세청의 업무보고 당시 모습.
 지난 10일 퇴임한 박윤준 전 국세청 차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진은 지난 1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국세청의 업무보고 당시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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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들여다본 그의 퇴임사는 '당부'의 형식을 빌었지만, 자기 고백적 성격이 더 뭍어났다. 특히 국세청 인사를 둘러싼 소회, 세무조사와 전관예우에 대한 자기반성이 눈에 띄었다.

세무조사를 두고 박 전 차장은 "'과세여부를 검토하고 판단함'에 있어 합리성을 유지해 달라"고 썼다. 그는 "이는 당연한 이야기"라면서도 "공직 과정에서 그러지 못했던 많은 분들을 봐왔고 저 또한 그리 못했던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또 "쉽지만은 않은 일 같다"면서도 "이 문제는 '사람의 일관성이나 신뢰성'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박 전 차장은 이어 대형로펌 등으로 자리를 옮긴 전직 국세청 간부들의 전관예우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밝혔다. 그는 "저도 내일이면 바로 신분은 바꾸게 되지만, 결국은 세금에 관한 일로써 제2의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며 "여러분의 미래도 대부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적어놨다.

이어 "비록 처지가 달라짐에 따라 어느 정도 논리의 변화는 불가피할 것"이라며 "하지만 재직 시와 퇴임 후의 논리가 너무 바뀌게 되면, 그 논리 자체의 당부나 다른 사람들의 눈을 떠나 스스로 우습고 초라해진다"고 지적했다.

박 전 차장은 "그러지 않으려면 재직 시에 항상 '나의 과세논리가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것인가'를 자문해야 한다"며 "그런 태도가 각급 과세처분 전반에 더욱 견고해 지면 소위 '전관예우'가 작용할 소지가 작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국세청에서 재직할때 합리적이고 조세형평에 맞는 세금 부과가 이뤄지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됐는가보다 무엇을 했는가를 봐야"

서울 종로구 종로5길에 있는 국세청 본청.
 서울 종로구 종로5길에 있는 국세청 본청.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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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끊이지 않는 국세청의 인사 잡음에 대해서도 "여러분의 선배와 동료·후배들을 바라볼 때 '무엇이 되었는가'보다 '무엇을 했는가'로 평가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 전 차장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가만히 보니까, 누구는 세무서장, 국장, 청장 등 자리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이 되는가는 자신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며 "대신 무엇을 하는가는 상당부분 자기 마음먹기에 따라서 가능하고 사람마다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박 전 차장은 "무엇이 됐든 그 자리에서 하게 될 어떤 것을 두고 사람을 평가해야 공정하다"고 덧붙였다.

행정고시 27회인 그 역시 국세청 차장까지 올랐지만 세무관서장이나 지방청장 등을 역임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국세청 주변에선 그의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는 국세청에서도 흔치 않는 해외역외탈세 전문가다. 그의 국세청 경력 가운데 상당기간을 해외서 보냈다. 게다가 해외역외탈세 분야는 국세청 내부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몇년새 상황은 달라졌다. 복지 수요에 따른 재정 압박과 경기침체에 따른 세수 감소 우려가 커졌다. 국세청 등 세정당국도 비상이 걸리긴 마찬가지. 해외금융계좌신고제도 도입은 박 전 차장의 작품이었다. 지난 3월 한만수 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사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역시 해외금융계좌신고 때문이었다.

박 전 차장은 요즘 예전보다 더 바쁘다고 했다. 시간을 쪼개 그동안 못보던 책과 친구들을 만난다고 했다. 이어 가족들과의 여행도 계획하고 있다. 이어 올해 안에 역외탈세에 대한 연구와 컨설팅을 위한 연구소를 만들 생각이다. 그는 "지내고 보니 모든 경쟁력의 원천은 사람에 나오더라"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고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50대 중반 전직 국세청 간부의 새로운 도전이 자뭇 궁금하다.


태그:#국세청, #세무조사, #전관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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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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