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e사람'은 우리 경제의 각 분야에서 독자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현장 노동자부터 학자, 관료, CEO, 사회단체 등 그 누구도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편집자말]
최근 해커들을 둘러싼 음모를 다룬 소설 <해커묵시록>을 출간한 최희원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수석연구위원.
 최근 해커들을 둘러싼 음모를 다룬 소설 <해커묵시록>을 출간한 최희원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수석연구위원.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해커 막는 KISA(한국인터넷진흥원) 직원이 쓴 해커 소설이 화제다. 타이밍도 잘 맞았다. 3·20 방송·금융사 전산망 마비에 이어 세계적 해커 조직 '어나니머스(Anonymous)'의 북한 '우리민족끼리' 회원 정보 유출까지 최근 해킹 관련 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해커묵시록>(청조사)이 나왔다는 소식에 대뜸 최희원(47) KISA 수석연구위원과 인터뷰 약속부터 잡았다. 책도 하루 만에 다 읽었다. 270여 쪽짜리 장편소설이었지만 도중에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이야기는 한 천재 해커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세계적 해커 조직 '카오스'의 핵심 멤버가 '요한묵시록전'이라는 온라인게임을 하던 도중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경찰은 심장마비로 결론내리지만 여자 친구와 기자 출신 1인 미디어 블로거는 타살을 의심하고 그 죽음 뒤에 숨은 음모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그 과정에서 '빅 브라더'를 꿈꾸는 여당 유력 정치인, 전직 국정원장, 세계적 뇌과학자, 또 다른 천재 해커가 얽힌 비밀 세력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다른 카오스 멤버들은 이들의 음모에 맞선다.

지난 9일 오후 최희원 수석을 만난 곳은 서울 송파구 가락동 KISA 15층에 있는 작은 기자실이었다. 신문잡지 기자 생활 15년을 거쳐 10년 넘게 홍보실에서 일하고 있는 최 수석의 인생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만난 사람은 이미 두 작품을 세상에 선보인 어엿한 소설가였다.

전작 <탄탈로스의 꿈>(2009년)이 자살을 시도하는 여기자를 중심으로 디지털시대의 암울한 군상을 그렸듯, 이번 작품에도 컴퓨터와 온라인게임 등에 몰입해 혼을 빼앗긴 디지털 인류가 등장한다. 그 중심에는 구글, 애플 같은 IT 기업이나 CIA, 국정원 같은 정보기관의 철통같은 보안망을 뚫는 것도 모자라 '해킹 살인'까지 일삼는 해커들이 있다.    

"어나니머스 코리아, 어나니머스와 같은 조직인지 의심"
 
- 때를 잘 맞췄다.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진 거지 일부러 맞춘 건 아니에요. 첫 소설을 낸 2009년부터 기획해서 2년 반 정도 걸렸는데 원래 원고지 2000~3000매 분량을 다시 줄이느라 예상보다 출간이 늦어진거죠."

- 해커, 뇌과학자가 등장하고 전문 용어도 많아 과학소설 같다. 미스터리도 섞여 있어 장르소설 느낌이 강한데. 
"원래 일반소설로 썼고 추리소설 느낌은 30% 정도예요. 인터넷 시대를 토대로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썼죠. 몸에 이식하는 생체 칩도 어느 정도 현실화됐고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몸에 걸치는 옷같은 웨어러블 컴퓨팅도 가능하잖아요. (영화 <매트릭스>처럼)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 음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시각도 담았고요."

- 소설에서 해커들을 정의의 사도처럼 그렸다. 옛날 홍길동이나 로빈후드 같은 의적 느낌이랄까.
"해커가 다 나쁜 건 아니에요. '블랙 해커'도 있고 이들을 막는 '화이트 해커'도 있듯이 2가지 다른 축으로 나눠져 있어요. 소설에도 착한 해커만 등장하는 건 아니에요. '카일'은 사이비 교주 밑에서 자라 트라우마를 가진 사이코패스적인 인물이죠. 악의 세력 편에서 해커를 공격하기도 하고 살인도 해요. 환경에 따라 선이 악이 될 수도 악이 선이 될 수도 있는 거죠."

- 해커 조직 '카오스'를 보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어나니머스'가 떠오른다.
"어나니머스도 참고했어요. 우리 사회에는 일부 부패한 정권이라든지 정치인, 저축은행 비자금 비리, 일부 대형교회 목사 부조리 같은 사회악이 있어요. 진부하지만 법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에 사이버 공간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해커들이 나서 대신 벌을 주고 전 대통령 계좌에서 돈을 빼내기도 하죠. 이들을 통해 독자들과 카타르시스를 누리고 싶었어요."

- 북한에 사이버전쟁을 선포한 어나니머스 활동을 놓고 의구심도 적지 않다. 원래 어나니머스는 표현의 자유와 위키리크스 활동을 지지해 '사이버 로빈후드'로 불리는데, '우리민족끼리' 회원 정보를 공개한 것은 잘 이해가 안 된다.
"어나니머스는 원래 정치적 성향이 강하고 해킹 수준도 높아요. 자기 과시를 좋아하지만 해킹 과정을 동영상이나 해킹한 사이트 사진을 뿌리지 언론 인터뷰에 잘 나서진 않아요. 요즘 국내 언론을 통해 나타나는 '어나니머스 코리아'는 동일한 집단이 아닌 것 같아요. 어나니머스는 주로 글로벌 문제에 관심을 갖는데 ('우리민족끼리' '일베' 해킹 같은) 한국적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 것도 어색하고요."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더 석연치않은 구석이 있다고 했지만 말을 아꼈다. 특히 북한 문제는 '노코멘트'였다. 지난 10일 KISA에서 북한 소행이라고 발표한 3·20 해킹 문제도 마찬가지다. 자유로운 소설가이기 이전에 KISA 직원이라는 직업적 한계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도 직접 해커 문제를 다루는 연구원이었으면 이런 소설을 쓰기 어려웠을 거예요. 기술자인 탓도 있지만 워낙 민감해서… 그에 비하면 전 상대적으로 자유롭죠."

실제 그가 쓴 소설 속에서는 남측 해커가 북한 핵시설을 해킹하는 장면이 나오고, 북한 해커부대 지휘자가 소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소설 속 북한 해커부대는 미국 후버댐 제어시스템을 해킹하고 미국 주요 공항 관제시스템을 마비시킬 정도로 수준 높게 그려졌다.

"국내에서도 해커 10만 양병설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중국이나 러시아는 엄청난 사이버 부대를 양성하고 있어요. 또 불법 도박 사이트를 공격해 돈 번 국내 해커 사례도 실제 있고요. 디도스(분산서비스거부) 공격으로 도박 사이트 한 군데를 마비시켜놓고 다른 곳에 돈을 요구해 30만 달러씩 받아내기도 했죠. 이 때문에 해커가 조폭에게 보복을 당하기도 해요. 우리도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그런 친구들을 모아 해커 부대를 만들어 대응할 필요가 있어요."

- 실제 만나본 해커들 모습은 어떤가?
"미국 해커는 뚱뚱하거나 소파에 누워 TV만 보는 이미지인데 내가 만난 해커들은 20대 초중반 젊은 친구들이에요. 우리 주위에서 대기업이나 연구소에 다니는 프로그래머거나 보안책임자일 수도 있죠. 구글도 공격할 정도면 수학이나 과학 실력이 뛰어난 천재들이지만 대신 사회성은 떨어지고 냉소적이기도 해요."

컴퓨터·스마트폰에 빠진 디지털 인류의 '어두운 미래'

연세대 국문학과 85학번인 최 수석은 대기업을 잠시 거쳐 언론계에만 15년 몸담았다. 유명 여성지를 시작으로 주요 일간지, 경제지 등을 거쳐 10년 전부터는 KISA에서 홍보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늘 남을 위한 글만 쓰다 보니 자신만의 글을 쓰고 싶은 욕구도 강할 수밖에 없다. 소설 주인공인 1인 미디어 블로거 '지혁'은 곧 최 수석의 분신이기도 하다.

"원래 기자가 꿈이었어요. 기자를 거쳐 홍보 일을 하고 있지만 소설 쓸 때가 가장 행복하더라고요. 그래서 책을 10권 정도 쓰겠다고 약속했죠. KISA에서 일한 덕분에 프라이버시 문제나 사이버테러 같은 공부도 많이 했어요."

탈고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습관적으로 한쪽 이빨을 앙다물어 통증이 생길 정도로 스트레스도 많다. 또 이전 소설 내용이 어둡다보니 아내가 밝은 것을 써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이번 소설은 그렇게 어둡지는 않죠?"

물론 이번 소설은 권선징악 측면에서 봤을 때 어둡기만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몰입하는 디지털 인류의 어두운 미래, 디스토피아를 경고했다는 점에서 꼭 밝은 소설이라고 볼 수도 없다. 성경에 인류 멸망을 예언한 '요한묵시록'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도 절반은 사이보그예요. 인간은 이미 스마트폰에 종속돼 있죠. 스마트폰 스크린을 통해 쇼핑하고 정보도 검색도구가 알아서 찾아주고 궁금한 것도 전자계산기나 '지식인'을 이용해요. 사람들도 습득 과정 없이 받아들이는 데만 익숙하다보니 뇌가 생각하는 방법을 몰라요. 인공지능만도 못한 뇌로 추락하고 있는 거죠. 그만큼 사람 뇌에 위조된 정보를 넣기 쉬워지고 빅브라더에 쉽게 지배를 받게 되는 거죠. 디지털 도구가 사람을 안락하게 해줬지만 그 도구를 감시하고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 거꾸로 지배당할 수도 있다는, 미래 사회에 대한 경고죠."

최 수석은 한편으론 해커나 프로그래머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해커들이 빅 브라더에 맞서는 의적으로 그려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마크 주커버그(페이스북 CEO),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도 모두 해커였죠. 세상의 뒤안길에서 또다른 혁명을 꿈꾸며 다른 길을 가는 해커들이 네트워크 시대의 주인공이에요. 앞으로 인류의 미래도 이들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태그:#해커묵시록, #최희원, #KISA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