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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양승태 대법원장, 주심 이상훈 대법관)가 18일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해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한 것이므로 위헌·무효라고 선언했다. 이에 관련 형사보상청구와 재심청구를 모두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앞서 2010년 12월 긴급조치 제1호에 대해 위헌·무효를 선언한 데 이어, 이번에 또 긴급조치 제9회에 대해서도 위헌·무효라고 판결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19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공포된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는 유신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유신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발의·제안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 유언비어를 날조·유포하는 행위 등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비상군법회의 등에서 재판해 처벌하도록 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H씨는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를 비방하는 내용 등이 담긴 유인물 150부를 복사해 배포했다가 긴급조치 9호를 위반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1심과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이에 H씨가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은 H씨에 대해 구속집행정지결정을 한 다음 1980년 5월 "긴급조치 9호가 1979년 12월 대통령공고로 해제됐고, 이는 범죄 후 법령 폐지로 형이 폐지된 사안에 해당한다"며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면소' 판결을 내렸다.

이후 H씨는 1988년 4월 사망했고, 부인 J씨는 2011년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형사보상법) 을 근거로 대법원에 형사보상을 청구했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망인 H씨의 부인 J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형사보상 청구 사건에서 "국가는 청구인에게 6066만 원을 보상하라"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먼저 "형벌에 관한 법령이 폐지됐다 하더라도, 그 '폐지'가 당초부터 헌법에 위반돼 효력이 없는 법령에 대한 것이었다면, 그 사건은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는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의 무죄 사유에 해당하는 것이지, 면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제9호는 그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한 것으로 긴급조치 제9호가 해제 내지 실효되기 이전부터 유신헌법에 위배돼 위헌·무효"라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무효를 선언함으로써 비로소 '면소 재판을 할 만한 사유가 없었더라면 무죄판결을 받을 만한 현저한 사유'가 망인에게 생겼다"며 "따라서 망인의 재산상속인인 청구인은 형사보상법 규정에 따라 국가를 상대로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인해 망인이 구금을 당한 데 대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9차례에 걸친 대통령 긴급조치 중 긴급조치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된 것은 1·4·7·9호 관련 사건으로 처벌된 피해자 수는 1140명에 달한다.

대법원은 이 중 긴급조치 1호에 대해 2010년 12월 16일 위헌 판결(2010도5986)을 내렸으며, 1호와 4호 병합사건과 9호 사건은 현재 심리 진행 중이다. 하급심 사건으로는 서울고법에 80여건, 서울중앙지법에 20여건의 긴급조치 재심사건이 계류 중인데, 주로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사건이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21일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공포됐던 긴급조치 제1호, 제2호, 제9호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와 함께 대법원 제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18일 배OO(57)씨가 제기한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재심기각 결정에 대한 재항고 사건에서 배씨의 재항고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배씨는 1979년 서울고법에서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으로 징역 1년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고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기각돼 확정됐다.

이에 배씨는 긴급조치의 위헌을 주장하며 재심개시 청구를 했으나 원심(서울고법)은 "형사소송법에 정한 재심사유에 관한 주장 및 증거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법률상 방식에 위배돼 청구가 부적법하다"며 재심청구를 기각하자,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이 사건은 수사기관의 고문이나 위증 등 형사소송법상 다른 재심사유가 없는 사안에서, 대법원이 형벌 법령인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한 위헌·무효 선언을 한 경우가 형사소송법의 재심사유인 '새로운 증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던 사건이다.

재판부는 "대법원이 긴급조치 9호에 대해 위헌·무효라고 선언한 것은, 형사소송법상 재심사유 중 하나인 '무죄 등을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경우'에 해당한다"며 "긴급조치 위반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다른 재심사유에 대한 증명이 없어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대법원 결정으로, 과거 긴급조치 위반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나 그 유족들은 형사소송법을 근거로 다른 재심사유에 대한 증명 없이 재심을 청구해 무죄 판결 및 형사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고, 또한 면소 판결을 받은 사람 역시 곧바로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이번 판결로 긴급조치 관련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사법절차가 확립됐고, 이들에 대한 실질적 권리구제의 길이 열리게 됐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긴급조치, #전원합의체, #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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