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진선미 의원실과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시민사회단체 주최로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경범죄처벌법의 문제와 대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경범죄처벌법 처벌규정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진선미 의원실과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시민사회단체 주최로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경범죄처벌법의 문제와 대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경범죄처벌법 처벌규정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법을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교 1학년 학생들도 웃어요. 공권력이 집행되는 근거 법령이 웃음을 유발한다는 게 법학자로서 안타까운 일이죠."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경범죄처벌법(경범죄법)을 이렇게 표현했다. 대학교 1학년 학생들도 비웃는, 말도 안 되는 법이라는 것이다. 지난 3월 22일, 개정된 경범죄법. 왜 대학생들도 웃게 하는 법이 됐을까. 세 번이상 고백을 거절당하면 처벌받는 스토킹 처벌 규정과 구걸 행위에 관한 처벌법 때문이다.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과 인권단체연석회의·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참여연대 등이 15일 오후에 국회에서 연 '경범죄처벌법의 문제와 대안' 토론회에서는 역시 이 두 가지가 논란거리였다. 발제는 이호중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종보 경찰청 생활질서과장이 맡았고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조병선 청주대 법학과 교수가 토론자로 나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3회 이상 구애 반복이 스토킹? 코미디다"

이성이 거절했는데도 3회 이상 만나자고 하는 행위는 '스토킹'이라는 이름으로 처벌돼, 범칙금 8만 원이 부과된다. 스토킹은 상대방의 분명한 의사에도 지속적으로 접근해 교제를 요구하거나 따라다니기, 잠복해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스토킹 처벌을 반대했다. 형법 내에서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스토킹이 유명 연예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극히 일부"라며 "스토킹은 가정폭력·데이트 폭력과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이 교수는 "일차적으로 스토킹에 대한 규제는 피해자보호명령제도와 같은 민사적인 피해자보호장치로 해결해야 한다"며 "3회 이상 구애행위를 반복하면 스토킹으로 판단해 범칙금 부과한다는 건 한마디로 코미디"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이종보 경찰청 생활질서과장은 "스토킹은 피해자에게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야기하고 심지어 폭행·협박 등 중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며 "최소한의 스토킹 행위를 벌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조항이 오히려 스토킹을 낮게 처벌하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이 과장은 "국회에서 경범죄 처벌법 외에 형법 내에서 처벌 규정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구걸을 처벌해? "빈곤, 개인의 문제로 치부"-"여성에 공포심 유발"

구걸 행위 처벌에 관한 토론에서는 '법 조항의 애매함으로 과도한 처벌이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과거에는 타인에게 구걸을 시켜 부당한 이득을 얻는 자만 처벌됐지만 법 개정으로 구걸행위 도중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도 처벌대상이 됐다.

노숙인 단체인 홈리스행동의 이동현 활동가는 "법 조항의 '통행방해' '귀찮게'라는 전제는 다분히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 경찰의 재량권이 남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또 대부분의 구걸행위가 지하철 등 공공역사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이 조항은 역사에서의 홈리스를 몰아내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럴 경우 구걸뿐만 아니라 '인근 소란' '쓰레기 투기' 등의 조항을 적용해 처벌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호중 교수는 인권적 측면에서 구걸 행위 처벌를 비판했다. 이 교수는 "구걸 처벌은 빈곤이 사회적·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를 처벌하게 됨으로서 국가가 책임져야 할 문제라는 사실을 희석시킨다"며 "빈곤을 개인적인 게으름·능력의 문제로 치부하는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교수는 "구걸 이외에 다른 현실적인 생계유지의 대안이 없는 사람들에게 국가가 충분한 주거시설과 생계유지수단을 제공하지 않은 채로 구걸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정당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김종보 과장은 "처벌 대상은 단순히 길에 엎드려 적선하는 수준을 넘어 돈을 주지 않을 경우 욕설하고 길을 막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라며 "특히 걸인이 여성에게 다가와 말을 걸게 되면, 여성은 공포심을 느끼게 돼 통행을 방해할 수 있기에 당연히 규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아버지가 자식 다루듯 하는 경범죄 처벌법, 폐지해야 할까

경범죄 처벌법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홍성수 교수는 '국가 후견주의'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경범죄처벌법이라고 밝혔다. 홍 교수가 말하는 국가 후견주의란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지만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는 일탈행위까지 국가가 간섭해 국민의 삶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아이를 돌보듯 국가가 시민의 삶을 보살피는 것이다.

홍 교수는 "경범죄 처벌법에는 국가가 나설 필요가 없는 영역에 국가가 개입해 구체적인 법적 침해가 없는 단순한 위험에도 사전예방적 조치를 취하하게 된다"며 "가볍게 처벌 가능한 것을 강성 규제로 도입하는 것, 이 세 가지가 경범죄 처벌법에는 담겨 있다"며 경범죄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호중 교수도 경범죄 처벌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단속은 공공질서 확립 내지 삶의 질 증진이라는 명분으로 공공장소에 대한 경찰의 감시와 통제를 일상화를 가져온다"며 "경찰 단속의 목표는 빈곤층과 사회적 저항 세력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종보 과장은 "처벌법을 통해 실질적인 질서유지 기능이 있다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며 "괴소음이나 음주소동과 같이 국민의 평온한 생활과 관련한 국민들의 민원이 많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애매한 규정이 있어 경찰의 자의적 해석이 우려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법은 현실적으로 모든 사항을 명시하기 어렵기 때문에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며 "경찰에서도 추후에 불명확한 조항을 삭제·수정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이를 이유로 법의 존폐를 논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덧붙였다.


태그:#경범죄처벌법, #스토킹 처벌, #구걸행위 처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