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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커리큘럼〉
▲ 책겉그림 〈청춘의 커리큘럼〉
ⓒ 한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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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당장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고, 고위층은 고위층대로 부정부패가 심각하다. 게다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은 심각한 수준이고 자연스레 빈익빈부익부 현상도 팽배해지고 있다.

그 끝이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이때에 젊은이들은 과연 무얼 준비하고 있을까. 누군가는 청춘들에게 '짱돌을 들어 던지라'고 독촉하고, 또 누군가는 '청춘들이 아프다'며 다독이기 바쁘다. 그런데 누가 이 살벌한 시대에 바리게이트 앞에 나서서 짱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누가 또 아픈 마음을 달래준다며 그 그늘 속에 숨죽이며 살 수 있겠는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자동차는 결국 벼랑 끝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젊은 청춘들조차도 그걸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에서 4년간 배운 걸 써먹지도 못하는 세상인줄 알면서도, 침대에 누워 이 생각 저 생각에 잠을 설치고 있는 줄 알면서도, 한 발 잘못 내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인 줄 알면서도, 도무지 고민조차 하지 않는 청춘들이 너무 많다.

명문대에다, 토익고득점에다, 인턴과 봉사활동에다, 심지어 공모전 입상까지 갖춘 어느 대학 졸업생조차 수많은 기업의 면접 기회를 단 네 곳밖에 받지 못했다는 그 뼈아픈 현실 앞에서 누가 감히 살인적인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다닐 맛이 나겠는가. 대학졸업생들 가운데 95%가 비정규직에 내몰리고 있는 서글픈 현실 앞에서 요즘의 청춘들은 공부하는 커리큘럼을 새로 짜야 하는 게 아닐까.

이계삼의 <청춘의 커리큘럼>은 바로 그걸 고민하고 있는 책이다. 경남 밀양의 밀성고등학교에서 11년간 국어교사로 일했다던 그는 2011년 퇴직 후, 밀양의 송전탑반대대책위 일꾼으로도 일하며 지역 어르신들의 투쟁을 도왔다고 한다. 그와 같은 '가치 투쟁'에 뛰어든 것은 그것만이 지역이 행복할 수 있는 길임을 내다본 까닭일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그런 것들을 고민한다. 주류 언론과 지식인 사회가 외면하는 이 시대의 문제들, 이른바 석유 정점과 농업 그리고 핵발전의 문제가 그것이다. 그를 위해 웬벨 베리, 도로시 데이, 하워드 진, 더글러스 러미스, E.F.슈마허, 그리고 다카기 진자부로와 같은 지식인들을 정성스레 소개하고 있다. 그들이 내다본 미래 속에서, 우리시대의 청춘들이 무얼생각하며 살아야 하는지 차근차근 되짚어 보고 있다.

"세탁기가 발명되어 주부들이 빨래할 시간에 책을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학교에 컴퓨터가 들어오면 교사는 서류를 작성하고 결재판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절약하여 수업 준비를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정반대가 되었다. 노동시간을 줄여줄 경이로운 기술적 장치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인간이 누리는 여가는 기계의 증가량과 복잡성에 오히려 반비례한다."(본문 31쪽)

그야말로 21세기 최첨단을 달리는 시대임에도 현실은 더욱 힘들고 고달프다는 이야기다. 기계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삶에 여유가 깃들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은 그 반대라는 것이다. 그만큼 처리해야 할 일들이 쌓이고, 풀어야 할 문제는 더욱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누리집 하나만 봐도 그렇고, 전산프로그램만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그걸 관리하는데 시간도 많이 들어가고, 악성 댓글이나 비방글로 인해 조직 자체의 분위기가 험상궂게 변할 때도 많다. 어디 그뿐이랴. 전산프로그램에 '0'이라는 값을 하나나 두 개만 더 쳐도 엄청난 값을 가져오는 혼란을 초래한다. 그만큼 그에 따른 인력과 처리해야 할 문제가 더욱 산적히 쌓이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그런 일들이 많아도 즐거울 수 있는 것은 정규직으로 인한 일일 것이다. 만약 그것조차 비정규직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면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볼 수 있듯이 얼마나 비참한 일일까. 정규직보다 한참이나 뒤쳐지는 월급은 물론이고 그에 뒤따르는 심적인 스트레스는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겠는가.

문제는 그 일이 오늘날의 청춘들이 맞이해야 할 현실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정치쟁점으로 반값등록금을 실현한다고 해도, 중고생들에게 무상교육을 실시한다고 해도, 대학평준화를 실현한다고 해도, 그 뒤에 넘지 못할 장벽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졸업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책에서 지적한 대로 그 졸업장은 사실상 '깡통계좌'나 다름없지 않을까?

"수소에 희망을 거는 이들이 있지만, 그것은 몽상이다. 수소로 만들어내는 에너지보다 수소를 분리해내는 데 드는 에너지가 더 많다. 저장도, 보관도, 이동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소를 분리해내는 데 들어가는 거대한 에너지는 핵 발전이 없으면 감당할 수 없다. 결국 수소 경제는 핵산업의 위장술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풍력, 태양광, 수력 에너지는 훌륭한 대체 에너지이지만, 이 또한 화석 에너지와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본문 144쪽)

40년 뒤에 완전히 바닥이 나고 만다는 화석 에너지를 두고 하는 이야기다. 그걸 다 쓸 때까지 인류는 대체 에너지를 분명코 개발할 것이라고 낙관한다지만 그 역시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한다. 마치 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대하듯 사람들이 대체 에너지를 내다본다지만, 그런 것들은 꿈꿀 수 없는 것들이라고 단정한다. 설령 그걸 개발한다고 해도 화학제품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들임을 역설한다.

그것은 오늘날의 청춘들이 준비해야 할 미래가 무엇언지 조금 더 명확하게 조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른바 '거꾸로 가는 삶'. 구체적으로 말하면, 옛날 소농과 같은 삶으로 되돌아가는 것 들 수 있다. 그만큼 불편과 불행해질 권리를 누리고, 그만큼 안락한 삶을 거부하는 정신적인 공동체를 세워가야 한다는 이야기. 한 줄로 줄 세우기 하는 식의 벼랑 끝 삶에서 완전 돌아서서 다양한 자립적 순환사회로 전환할 것을 주문한 게 그것이다.

한때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맡은 그였기에 그랬을까. 그는 그 시절에 자기 반 학생들에게, 아픈 청춘들을 달래주듯 그저 '견뎌보자, 대학 가면 달라지겠지' 하는 위로를 남발했다고 한다. 물론 그렇게 위로하면서도 자기 속으로는 다 알고 있었다고 한다. 녀석들이 대학에 간다 해도 장밋빛 미래가 펼쳐져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더 괴로운 것은 입시철이었다고 한다. 그때가 되면 고3 교무실은 지방 사립대학 교수들과 전문대 교수들로 장사진을 이룬다고 한다. 그 교수들은 고3 담임선생들에게 밥과 술을 사주고, 주유권과 온갖 생필품까지 안겨준다고 한다. 그 이유야 뻔하지 않을까. 고3 학생들로 인해 자기 살 길을 찾고자 하는 것 말이다.

그 얼마나 비참한 일이며, 그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그걸 과연 모르는 요즘의 대학생들이, 또 고3 학생들이 있을까. 그들도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어렴풋하게나마 이 살벌한 구조적인 세상을 모를리는 없을 것이다. 

이계삼 선생은 지금의 88만원 세대가 그나마 경제생활을 해 나가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들이 고시공부나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또 각자 스펙을 쌓을 수 있는 토대는 그들의 부모가 아직까지 정규직 직장을 갖고 있는 까닭이라고 한다.

문제는 10년 뒤에 허물어질 이 구조적인 시스템에 있다고 한다. 지금의 청춘들을 먹이고, 입히고, 오락과 여유를 부리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하는 부모 세대가 은퇴한 뒤에는 더 비참한 사회를 맞는다는 설명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러니 그가 내다본 '가치 투쟁'의 사회, '다양한 자립적 순환의 사회'는 지금부터라도 공부해야 할 것이다.


청춘의 커리큘럼 - 고민하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공부의 길

이계삼 지음, 한티재(2013)


태그:#〈청춘의 커리큘럼〉, #이계삼 선생, #자립적 순환 사회, #가치 투쟁, #직장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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