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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사)생명의숲국민운동>은 2012년 7월부터 2013년 5월까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한국의 아름다운 숲' 50곳 탐방에 나섭니다. 풍요로운 자연이 샘솟는 천년의 숲(오대산 국립공원), 한여인의 마음이 담긴 여인의 숲(경북 포항), 조선시대 풍류가 담긴 명옥헌원림(전남 담양) 등 이름 또한 아름다운 숲들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땅 곳곳에 살아 숨쉬는 생명의 숲이 지금, 당신 곁으로 갑니다. [편집자말]
붉은 빛으로 피어난 동백꽃.
 붉은 빛으로 피어난 동백꽃.
ⓒ 김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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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꽃잎, 샛노란 수술, 짙푸른 잎사귀의 동백꽃
 붉은 꽃잎, 샛노란 수술, 짙푸른 잎사귀의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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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이 붉은 꽃망울을 터트리는 봄. 지난 3일,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완연한 봄을 맞아 전남 광양 옥룡사지 동백숲을 찾았다. 옥룡사지의 동백은 4월 중순까지가 절정이다.

백운산의 한 지맥인 백계산(505m) 자락 옥룡사지 동백숲은 '천 년 숲'으로 불린다. 옥룡사는 신라말 풍수지리의 대가인 선각국사 도선이 35년간(864~898년) 머무르며 제자를 가르치고 입적한 곳이다. 땅의 기운을 돋우기 위해 도선국사가 직접 사시사철 푸른 동백나무를 절 둘레에 심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옥룡사는 그 흔적만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878년 불에 타 소실된 후, 복원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심은 꽃나무는 천 년을 이어오고 있다. 한 나무가 천백여 년 넘게 산 것이 아니다. 나무가 죽은 자리에, 씨앗이 움트고 새순이 돋아 '후손' 나무가 자라났다. 나무가 죽고 살기를 반복하며 대를 이어 왔으니 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셈이다. 보통 동백나무의 수명은 300년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이 숲엔 500년 된 나무도 있다.

동백나무는 그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더욱 깊이 뿌리 내렸다. 수령이 100년 이상 된 동백나무 7000여 그루가 옥룡사 터를 둘러싸고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이곳 동백숲은 2006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천년의 숲 부문 공존상(우수상)을 받았다. 2007년에는 천연기념물 제489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1998년 옥룡사지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07호로 지정했다.

동행한 김세진 호남생태정보센터 소장은 "옥룡사지 동백숲은 우리나라 남부지방 사찰 주변 동백나무 숲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백나무는 화재로부터 사찰을 보호하는 방화수 역할을 한다. 잎에 수분이 많아 불길이 번지는 걸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열매에서 짠 기름은 식용유나 등잔불을 밝히는 데 이용됐다. 고창 선운사, 구례 화엄사, 강진 백련사 등 남도의 사찰 주변에는 동백숲이 조성된 곳이 많은데 이런 이유에서다.

동백나무 7,000여 그루가 옛 절 터를 둘러싸고 군락지를 이룬 옥룡사지 동백숲. 그 규모가 7ha에 이른다.
 동백나무 7,000여 그루가 옛 절 터를 둘러싸고 군락지를 이룬 옥룡사지 동백숲. 그 규모가 7ha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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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울 때 지는 꽃송이

김세진 소장은 "이번 봄은 유난히 동백꽃이 많이 피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태풍 볼라벤의 비바람과 매서운 겨울바람을 견뎌낸 동백. 나무는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올봄엔 더 많은 꽃을 피워냈다.

동백꽃은 원래 겨울에 핀다 하여 동백(冬柏)이다. 동백나무는 찬바람이 불 때 꽃망울이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겨울엔 꽃이 많이 피지 않고, 꽃망울을 머금고 봄볕을 기다린다. 따스한 기운을 받아 3, 4월이면 흐드러지게 핀다.

동백은 꽃송이가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11월부터 4월 중순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동백이 만개한 지금도, 나뭇가지엔 터질 듯 말듯 붉은빛을 머금은 꽃봉오리가 봄볕과 봄바람을 맞으며 때를 기다린다.

김세진 소장은 "한겨울에 꽃을 피우려면 나무는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내야 한다. 환경에 맞게 적응하고 조절하며 살아가기 위해 겨울에는 적절하게 피고, 최적의 환경이 되면 일시에 만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붉은 꽃잎, 샛노란 수술, 짙푸른 잎사귀의 동백꽃
 붉은 꽃잎, 샛노란 수술, 짙푸른 잎사귀의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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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꿀 먹는 꿀벌
 동백꿀 먹는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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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눈꽃과 함께 피어나는 동백꽃도 아름답지만, 오랜 겨울을 지나 맞는 봄볕에 피어난 동백은 그 빛깔과 자태가 참 곱다. 윤기가 흐르는 동백의 짙푸른 잎사귀는 꽃만큼 예쁘다. 그 잎사귀가 겹치고 겹쳐서 만들어 낸 무성한 숲에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푸른 잎은 반짝인다.

동백꽃은 두 번 핀다. 나무에서 한 번, 떨어져 땅 위에서 또 한 번, 두 번 꽃을 피운다. 가장 아름답게 피었을 때 후드득 진다. 동백은 꽃잎이 모두 붙어있는 통꽃이다. 그 고운 빛깔에 맞게, 꽃잎 하나 상하지 않고 그대로 뚝뚝 떨어진다. 꽃이 지되, 벚꽃처럼 꽃잎이 흩날리지 않는다. 동백꽃이 피고 질 때면, 동백숲 길은 낙화한 꽃송이들로 붉게 물든다.

때가 되면 송이째 툭 떨어지는 동백꽃. 그 꽃송이에서 누군가는 변치 않는 절개를, 누군가는 '슬픔과 서러움의 덩어리'를 본다. 유치환 시인은 '목놓아 울던 청춘이 꽃 되어 천 년 푸른 하늘에 소리 없이 피어있는 청춘의 피꽃'이라 했다. 가수 송창식은 동백 꽃을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지는 꽃'이라고 노래했다.

동백꽃은 향기가 없는 대신 달콤한 꿀을 잔뜩 품고 있다. 동백은 통꽃이라 꿀을 더 많이 품을 수 있다. 동백꿀을 좋아하는 동박새와 직박구리가 날아들어 꽃 속에서 한참을 놀다 간다. 꿀벌은 꽃 속으로 자꾸만 파고든다. 벌이 윙윙 나는 소리와 동박새와 직박구리 지저귐이 온산을 뒤덮는다.

천 년의 세월을 간직한 숲

숲은 살아있다. 오롯이 살아 숨 쉬며 역사의 숨결을 함께 전한다. 천 년의 세월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인간은 동백의 꽃말인 '겸손한 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옥룡사지 동백숲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불에 타버린 절은 재가 되었고, 쓸쓸한 빈터만 남았다. 그 쓸쓸함을 품고서 동백숲은 사시사철 푸르다. 해마다 봄이면 붉은 빛으로 물들여진다.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텅 빈 그곳이 풍경 속에선 한없이 풍요롭다. 자연의 시간은 바람을 타고 끝없이 이어지며 더욱 풍요로워진다. 이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축복이 아닐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옥룡사지 동백숲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옥룡사지 동백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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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옥룡사지 동백나무 숲길
 광양 옥룡사지 동백나무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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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옥룡사지 동백숲 정보
옥룡사지 동백숲길은 운암사로 이어진다. 운암사는 도선국사가 창건한 고찰로 전쟁 중 소실된 것을 신축했다. 운암사 중심에 자리 잡은 황동약사여래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불상으로 그 높이가 40m에 이른다.

- 교통편
광양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할 경우, 택시 승강장 옆 버스정류장에서 시내버스 21번을 타고 30분쯤가다가 '옥룡사지'에서 내린다. 시내버스는 하루 6차례만 운행한다.(광양교통 (061)762-7295)

-위치
전남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302

- 여행정보
관광안내소 061)797-3333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는 전국의 아름다운 숲을 찾아내고 그 숲의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하여 숲과 자연,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한 대회로 (사)생명의숲국민운동, 유한킴벌리(주), 산림청이 함께 주최한다. 생명의숲 홈페이지 : beautiful.forest.or.kr | 블로그 : forestforlife.tistory.com



태그:#옥룡사지, #동백나무숲, #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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