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안선> 포스터

영화 <해안선> 포스터 ⓒ LJ필름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성공하고 미국과 남한이 주도한 국제연합의 북한 제재 결정이 이루어지자 한반도에 무력 대결의 긴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가고 있다. 한미연합군은 매년 해 오던 키리졸브훈련과 독수리연습에서 북한의 핵공격을 가상한 방어훈련을 대규모로 실시하면서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전략폭격기 B-52와 B-2, 레이더에 잡히지 않고 북한 핵 기지를 언제든 타격할 수 있는 스텔스 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출격시켰다.

북한은 한미군사훈련을 맹비난하고,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서울·워싱턴 불바다 발언, 서해 5도 포사격 훈련, 단거리미사일 발사, 북한군 1호 전투준비 태세 돌입, 국가급 군사훈련 실시, 남북 군 통신선 차단,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연일 군부대 방문, 최고사령부 회의 새벽 소집과 미사일 사격 대기 지시 등으로 위협의 강도를 계속 높이고 있다.

한반도에는 지금 북한의 위협, 미국의 첨단 무력 과시, 남북의 불신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심각한 이분법적 대결 형국이 전개되고 있다. 핵전쟁이나 전면전은 아니더라도 천안함 침몰이나 연평도 포격 사건 또는 그 이상의 참사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휴전선을 경계로 북한과 한미연합이 벌이는 위협과 위협의 대결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북한은 위성발사와 3차 핵실험의 성공으로 자신감에 차 있는 것 같지만, 수 천 개의 핵무기와 첨단 폭격기를 가진 미군과의 전쟁에서 북한의 핵무기는 '자해무기'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북한은 무력시위의 강도를 높이는가? 김정은과 북한 권력 엘리트에겐 그의 강하고 담대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대내외에 형성하여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고 고립의 심화로 인한 민중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무마시키는 데 전쟁 분위기의 조성은 아주 좋은 카드이다. 

실전에 쓰지도 못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미국에게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북한의 핵위협에 핵우산을 제공하다는 명분으로 미국은 한국, 일본에 대한 군사적,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시킬 수 있고, 불안해하는 한국에 막대한 첨단 무기를 팔 수 있으며, 북핵 위기를 계기로 한반도에서 중국 견제용 핵군사훈련도 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가 진 후 해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간첩으로 간주되어 사살된다"

 영화 <해안선>의 한 장면

영화 <해안선>의 한 장면 ⓒ LJ필름


그러면 지금의 한반도 긴장은 북한과 미국의 파워엘리트들이 일촉즉발의 긴장을 조성하면서 이익을 추구하다 좀 지나면 아무런 희생 없이 끝낼 수 있는 일시적인 국제 쇼인가? 차라리 그러면 다행스럽겠지만, 파워엘리트들이 불장난하는 동안 누군가는 그 쇼의 비극성을 몸으로 겪어내야 한다. <피에타> 등으로 한국문명의 질곡을 정곡으로 다루어 온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은 한반도 핵 대결이 민중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시킬 수 있는지 2002년에 이미 예시하고 있다.

<해안선>은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인 한반도의 남과 북의 참혹한 6·25전쟁 이후 남한의 해안은 북한의 침투에 대비해 높은 철책이 둘러쳐 있고 휴전 후 20여 회 침투간첩을 사살 또는 체포하였으며 현재도 해가 진 후 해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간첩으로 간주되어 사살된다"고 말하면서 시작된다. 영화가 남북 대결의 경계선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룰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해안경비대의 강한철 상병(장동건 분)은 해안으로 침투하는 간첩을 잡겠다는 의지에 불타는 병사로 동료 군인들이 족구하며 쉴 때도 혼자서 간첩잡기 매복 연습을 한다. 그는 초소장으로부터 '고문관'이라고 불리는데, 그가 고문관인 이유는 그가 한국군인의 이상형, 즉, 반공의식에 투철하고, 침투하는 적을 용감무쌍하게 섬멸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진, 바람직한 군인의 자질을 '너무나' 잘 갖추었기 때문이다.

고문관 강 상병은 반공, 남북 대결 이데올로기가 시키는 것을 '너무나 충실히,' '과잉'으로 체현함으로써 대결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문제적인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강 상병은 야간보초 중 철책 안으로 들어와 사랑을 나누던 민간인 미영과 영길의 모습을 침투간첩의 움직임으로 간주하여 이들을 총탄과 수류탄으로 사살한다. 끔찍하게 죽어가는 영길의 모습을 보고 미영은 정신이상자가 된다. 간첩을 잡은 줄 알고 의기양양하던 강 상병은 산산이 찢어진 영길의 시신과 정신이상자가 된 미영을 보고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야간보초수칙을 '이상적'으로 실천한 공로로 표창과 휴가를 받은 강 상병은 모범군인으로서 자부심을 갖는 게 아니라 민간인 살해의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애인도 그를 버리고 떠난다. 귀대한 강 상병은 총을 가지고 탈영하여 서울로 가다가 동료군인들에게 체포된다. 정신이상으로 판정받은 그는 의가사제대를 당한다.

한국의 평범한 젊은이 강한철은 나라가 시키는 대로 군대에 갔고, 군대가 명령하는 보초근무수칙에 따라 야간 해안 발견물을 사살한 것인데, 이제 그는 살인자가 되었고, 애인에게 버림을 받게 되고, 정신이상자가 된 것이다.

야간보초수칙을 지켰을 뿐인데... '정신이상자'가 된 군인 

 영화 <해안선>의 한 장면

영화 <해안선>의 한 장면 ⓒ LJ필름


제대한 강한철은 사회로 돌아오지 못하고 자신이 근무하던 박쥐부대로 다시 돌아간다. 민간인 사살이란 트라우마로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는 강한철이 소속감을 느끼는 곳은 군대이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군대로 돌아가 영원히 강상병으로 남고 싶은 것이다. 박쥐부대로 다시 오지만 이제 민간인인 그는 군대 동료와 소초장에 의해 쫓겨난다. 그러나 그는 부대 주위를 떠나지 못한다. 그는 자유롭고 이성적인 자기 의지의 주체가 아니라, 남북 대결의 긴장이 그에게 가한 트라우마가 일어난 장소, 즉, 군대에 고착된 존재이다.

군대에 고착된 강한철은 이제 동료들에게 유령으로 돌아온다. 박쥐부대 군인들은 총과 철모를 도난당하고, 강한철과 그의 동기 김 상병에게 적대적이었던 조 일병이 야간에 사살되자, 부대원들은 강 상병의 짓이라 단정한다. 이들은 밤이든 낮이든 강 상병이 출몰할 것을 두려워하며 그의 유령적 존재를 느낀다.

강 상병에 대한 두려움은 서로 적대적이던 부대원들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심화된 갈등은 서로에 대한 의심으로 비화된다. 부대원 사이에 유령이 된 강 상병의 존재는 부대원 간의 싸움과 총격으로 전화된다.

부대 동료들에게 유령이 된 강상병은 대낮 서울 시내에 총검술의 자동인간으로 나타난다. 그는 시민들이 오가는 거리 한복판에서 자기 몸에 체화된 총검술을 실시한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이 기이한 고문관의 모습을 보며 키득키득 웃는다. 한 시민이 웃으며 찌르고 싶으면 한번 찌르라 하자 강 상병은 날카로운 총검으로 그를 찌른다.

남북대결 이데올로기의 우산 아래서 대결의 실재성을 모르고 그를 재밌게만 바라보던 시민에게 그의 총검은 분단 폭력의 실재성을 귀환시킨 것이다. 그의 행동을 현실로 느끼지 못하고 그를 비웃던 시민들에게 남북대결의 실재가 되어 그는 총을 겨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긴다. 남북분단의 광기는 이 땅의 젊은 아들의 광기를 낳고 이 광기의 자동기계에 서울 시민은 무참히 사살된다.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이 만드는 대결의 가장 참혹한 결과는 민간인 미영에게 일어난다. 영길의 죽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상이 된 그녀는 박쥐부대원들을 영길로 착각하며 그들에게 다가간다. 소초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부대원들은 이런 그녀를 성욕 분출구로 삼는다. 그녀가 임신한 것이 알려지자 소초장이 주동이 되어 이들은 그녀를 납치한 후 마취주사도 없이 강제로 낙태수술을 한다.

피를 흘리던 그녀는 수족관에 들어가 물고기를 입으로 씹어 먹는다. 시골에서 순수하게 사랑하며 살던 한국의 평범한 여자 미영이 사랑하는 애인을 군인에 의해 잃고, 그 충격으로 정신이상자가 된 그녀가 그 군인들의 성노리개가 되고, 그들에 의해 강제로 낙태수술을 당한 것이다. 그녀는 살아 있으되 영혼이 갈기갈기 찢긴 이 땅의 또 다른 유령이 되어버린다.

살아 있으되 영혼이 갈기갈기 찢긴, 이 땅의 '유령'

 영화 <해안선>의 한 장면

영화 <해안선>의 한 장면 ⓒ LJ필름


영화<해안선>은 한반도에 날카롭게 번쩍이는 무기의 시위와 위협이 남과 북의 민중들에게 얼마나 참혹한 비극을 일으킬 수 있는가를 예고했다. 2002년에 만들어졌지만 영화는 남북긴장이 다시 조성되던 2008년에 금강산 관광에 갔던 박왕자씨가 북한 해안초병에 의해 사살된 사건을 상기시킨다. 영화는 또한 우리의 젊은 생명들을 앗아간 천안함 사건을 상기시킨다.

2010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천안함 침몰의 원인에 대한 정부의 합동조사단 발표를 국민의 70%가 신뢰하지 못한다고 했다. 침몰의 원인이 북한의 어뢰공격이든, 한미연합군의 훈련 중 폭파 사고이든 뭐든, 남북의 대결 분위기에서 희생된 것은 아름다운 젊은이들의 귀한 생명들이었다. 이어 일어난 연평도 포격의 희생자들도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던 민중들이었다.

지금의 한반도 핵 대결이 몰고 올 미래는 뻔하다. 그것은 비극일 것이며, 이 비극은 모두 남북의 민중들의 몫이 될 것이다. 영화<해안선>은 분명히 말한다. 군대에 끌려가 매일 고된 훈련에 시달리는 남북의 우리 젊은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지 말라고,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는 민중들을 희생양으로 삼지 말라고, 북한, 남한, 미국의 파워엘리트들은 한반도의 핵무기 불장난을 멈추라고, 남북은 핵 대결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으로 평화의 길을 가라고!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아주대학교 교수입니다.
*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은 1000여 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이다. 1987년 창립된 이후 현재까지 사회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왔다. <영화를 읽다>는 민교협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연재하며, 매주 1회 화요일에 게재한다. 이 칼럼은 민교협의 홈페이지(www.professornet.org)에도 함께 올라간다.
영화를 읽다 민교협 해안선 정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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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는 1000여 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다. 1987년 창립된 이후 현재까지 사회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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