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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케 이젠 표 잘 뽑는다."
"그렇지요? 이젠 익숙해요. 형님 그때 생각 나세요? 큰 형님 천안사실 때 우리 운전면허 딴 지 얼마 안 되어서 생겼던 일."
"생각나고말고.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절로 나와."

31일, 한식날을 맞이해서 동생네와 용인에 있는 부모님 산소에 가면서 고속도로에 들어설 때 우린 옛 생각 속으로 잠시 빠져 들었다.

고속도로 표 뽑는 것이 왜 이리 힘들어?

21년 전이었다. 운전면허를 따고 얼마 안 되어서 올케와 함께 천안에 사는 언니네 집에 갔었다. 다행인 것이 지금처럼 고속도로에도 그렇게 자동차가 많지 않았다는 점이 요행 중에 요행이라고나 할까?

초보운전이지만 둘이 떠나는 먼 길은 그다지 불안하지만은 않았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처음으로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하지만 고속도로에서 우리가 갈 행선지의 표를 뽑기란 그다지 녹록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표를 뽑아주는 서비스가 없을 때였다. 자동차를 바싹 대야하는데 서툰 운전솜씨는 그것도 요원하기만 했었다.

행여 사고라도 날세라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표를 뽑는 라인으로 들어섰다. 자동차를 바싹 대지 못한 터라 자동차앞문을 끝까지 내리고 손을 뻗쳐보았지만 표는 잘 뽑히지 않았다. 뽑힐 듯 말 듯, 몇 번이나 짧은 팔로 애를 쓰다 결국에는 자동차에서 내린 후에야 표를 뽑을 수가 있었다.

그사이 뒤에는 얼마나 긴 줄의 자동차의 행렬이 이어졌는지. 난 표를 뽑고 난 후 죄송하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차에 올라 간신히 출발할 수 있었다. "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적어도 몇분 이상은 헤매였던 것 같다. 뒤에서 기다리는 자동차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못한 것은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이었을 것이다. 뒤에서 빵빵거렸는지 안 그랬는지도 그것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으니.

그렇게 해서 겨우 언니네 집에 도착은 했지만 마음대로 즐길 수가 없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였고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니었다. 집에 갈 것이 걱정이 되어 밥만 먹고 바로 일어섰다. 생각할 수 록 집에 갈 때에는 어떻게 가야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다시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경기도 시흥에서 충청남도 천안 언니네 집까지는 100Km의 거리이고 2시간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점심시간이 지나 얼마 안 되어서인지 고속도로는 오전보다 한적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피할 수 없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표를 또 뽑아야 하는 큰 숙제가. 표 뽑는 곳으로 가자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차를 표 뽑는 곳에 바싹 댄다고는 했지만 초보가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가 말이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실패.

아예 차에서 내려 또다시 표를 뽑았다. 이번에는 뒤차에게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여유가 생기기까지 했다. 그 운전자는 웃음으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그런 모습을 본 올케는 "형님 다음에는 고속도로에 올 땐 긴 집게를 가지고 오세요. 그럼 차를 잘못대도 집게로 뽑으면 되잖아요.""아마도 그래야 할 것같다. 내 짧은 팔이 길어 질리는 만무이고" 하며 웃음을 주어 나의 긴장감을 풀어주기도 했다. 겨우 그렇게 표를 뽑고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인천방향으로 가야하나? 원주 방향으로 가야하나? 이정표가 글자로만 보여

눈은 고속도로가 뚫어져라 앞쪽을 응시하고 손에는 땀이 날정도로 긴장하면서 아주 부지런히 달려왔다. 등짝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갈림길이 보였다.

이정표의 알림은 왼쪽으로는 인천과 안산, 오른쪽에는 원주로 표기 되어있었다. 당연히 인천과 안산방향으로 가야했지만 그 이정표는 글자로만 보였지 우리가 가야할 길이란 것이 인식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난 비상등을 켜고 자동차를 갓길에 세웠다.

올케한테 "우리 어느 쪽으로 가야돼지?" 하니 올케도 "글쎄요. 이쪽은 인천과 안산, 저쪽은 원주인데요. 그럼 우린 인천 쪽으로 가야 되는 거지요?"한다. 우린 그땐 아주 제대로 바보가 되어있었다.

당연히 인천 쪽으로 가야지 원주 쪽으로 가면 강원도인 것을. "맞아 맞아 인천 쪽으로 가야한다." 그것을 알아낸 것이 얼마나 반가운지. 마치 큰 횡재라도 한 기분이었다.

산소에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로 그 갈림길이 나왔다. 그 소리를 하니 모두가 웃는다. "바로 여기에 자동차를 세우고 그런 소리를 했단다."하며.

그러던 내가 지금은 이정표를 제대로 볼 뿐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다운 받은 '김기사'가 가라는 곳으로 곧잘 가고 있다. 가끔 길을 잘못 들어서도 당황하지 않고 다시 뉴턴을 해서 고쳐가는 여유가 생길정도가 되었다.

올케가 "형님도 이젠 집게 필요 없지요?" "이젠 필요 없고 말구" 그날의 일들이 그림처럼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재미있는 추억으로.

전국에 운전자 여러 분!만약 고속도로 표 뽑는 곳에서 누군가가 아주 힘들게 표를 뽑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 사람도 머지않아 그것이 제법 익숙해질 테니까요.

덧붙이는 글 | 나의 애마때문에 생긴 일



태그:#애마때문에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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