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개봉한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이하 <지.아이.조>)는 이병헌에게 할리우드에서의 입지를 굳히게 한 인상 깊은 블록버스터였다. 아시아에서는 최정상의 스타였지만 할리우드에서는 낯선 동양인 배우였던 이병헌은 <지. 아이. 조>로 미국 영화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얼굴 반열에 올라섰다.

그로부터 4년. 지난 28일 개봉한 <지. 아이. 조2>에서 전편보다 훨씬 늘어난 스톰 쉐도우의 분량은 할리우드에서 점점 주목받는 이병헌의 존재감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지. 아이. 조>에서 이병헌이 맡은 스톰 쉐도우는 악의 편에서 영웅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그는 악당 캐릭터마저 매력적으로 소화해냈고, 그 결과 <지. 아이. 조2>에서 스톰 쉐도우는 단순한 악당을 넘어 스네이크 아이즈와 협력 관계를 이루는 극적인 캐릭터로 승격했다. 

브루스 윌리스라는 할리우드의 영원한 마초가 <지. 아이. 조> 군단에 새로 합류하였음에도 전작의 성공을 이끌었던 채닝 테이텀의 이른 퇴장은 개봉 전 <지. 아이. 조2>에 대한 우려를 자아냈다. 하지만 채닝 테이텀의 부재보다 심각한 것은 알맹이를 찾을 수 없는 스토리 전개다.

유치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비교적 몰입도가 있었던 1탄에 비해, <지. 아이. 조2>는 개연성은 물론 재미마저 부족하다. 이 때문에 막대한 물량 공세에도 지루하게 느껴진다. 간간히 등장하는 스톰 쉐도우와 절벽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고공 액션, 모든 것을 다 쏟아 붓겠다는 각오로 임한 듯한 마지막 폭파 장면만이 잠시나마 쾌감을 안긴다.


설득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임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게 하는 원동력은 배우 이병헌에게 있었다. 밋밋한 캐릭터가 즐비한 <지. 아이. 조2>에서 매력적인 역할을 뽑자면 단연 스톰 쉐도우다.

스톰 쉐도우가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다소 불친절하게 설명하는 중에도 이병헌은 회한이 가득 찬 눈빛으로 스톰 쉐도우의 아픔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블록버스터에서도 A급의 감정선을 보여주는 이병헌의 연기는 제대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영화 자체보다도 이병헌에 집중해서 본다면 그럭저럭 볼 만한 오락물로 기억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