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교육업체의 광고가 '우정파괴 광고'로 논란이 되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으니/ 넌 우정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질 거야"로 시작하는 광고 문구는 "벌써부터 흔들리지 마/ 친구는 너의 공부를 대신해주지 않아"라는 경고성 훈계로 끝을 맺는다.

오로지 시험성적만이 중요한 사회임을 나타내는 씁쓸한 모습이지만, 그래서 행복은커녕 고통스럽다 못해 자살까지 하는 아픈 교육 현실을 말해주는 광고이기도 하다. 오로지 시험만 생각한다면 친구는 분명 방해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생전체를 놓고 본다면, 시험의 궁극적 목표인 행복한 삶을 바란다면 친구와의 우정은 필수과목이다. 영화 <언터처블:1%의 우정>(2012년)을 보면 알 수 있다. 백만장자 백인과 무일푼 흑인 청년의 우정을 그린 이 영화를 보면, 우정이 시험공부보다 더 중요한 인생공부를 시켜준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우정파괴'를 권하는 사회가 보아야 할 영화

필립은 백만장자인데다가 고전 클래식과 현대 추상미술을 감상하고 비평할 정도로 수준 높은 교양과 이성적 능력을 지닌 상류층 인사다. 그러나 그는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사고를 당해 머리 아래로는 감각이 없는 전신마비 환자이다. 이것은 매우 상징적이기도 하다. 컴퓨터와 같은 이성적인 능력이 우선시되는 현대인에 대한 상징으로 보인다. 한국사회처럼 공부만 요구당하고 그 공부의 목표가 결국 돈인 한국학생들에겐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만 갖춘 모습일 것이다.

필립은 뛰어난 이성과 많은 돈이 있으니 비록 신체마비가 있다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살아나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실존 인물인 필립 포조 디 보고도 샴페인 회사의 사장으로 프랑스 사회의 최상류층으로 큰 영향력을 지녔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심장이, 하트가 마비된 신체 속에 있다. 그의 가슴엔 아내를 잃은 슬픔이 묻혀 있다. 또한 그는 뛰어난 이성능력과는 달리 감정을 표현하고 나누기를 매우 힘들어 한다. 그래서 사귀려는 여성과도 6개월간 편지로만 그것도 매우 지적인 문장으로만 소통한다. 그 사람을 만나러 간 자리에서 스스로 갖는 부담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자리를 도망쳐 나오기도 한다. 이성은 뛰어나지만 감정의 영역엔 서툰 공부천재 같다.

필립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가정부격인 이본 아줌마도 정원사를 마음에 두고 있지만 표현하지 못한다. 이런 집에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세네갈출신의 흑인 드리스가 온다. 그는 교양과는 거리가 먼, 거칠고 투박하지만 감정과 행동은 자유분방하다.

드리스는 실업자에게 주는 복지금 3개월치를 받기 위해 구직활동을 시도했다는 증명을 받고자 필립을 돌보는 간병인에 응모하러 왔을 뿐이다. 간병인으로서의 변변한 자격도, 굳이 일할 의사도 없는 드리스에게 필립은 묘한 호기심과 매력을 느꼈는지 일자리를 제안하고, 드리스도 호화로운 집안 모습에 호기심이 발동해 일하게 된다.

드리스는 발 크림으로 머리를 감기고, 여자에 눈이 팔려 식사도 제대로 못 먹이는 등 직업적인 간병인으로서는 낙제점에 가까웠다. 그는 제대로 된 간병서비스는 제공하지 못했지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우정을 나누었다. 드리스는 필립을 고용주이기보다는 경계 없이 친구처럼 충고도 하며 막(?) 대했다. 필립의 답답한 가슴엔 담배도 권하고 억눌렀던 성욕엔 마사지걸도 소개해주는 못된 친구가 되었다. 오로지 친구만이 그것도 소위 '불알친구'나 해줄 수 있는 관심과 우정이었다. 그러한 우정을 통해 필립은 마음을 열고 속에 묻어 두었던 아픔을 나누며 치유받을 수 있었다.

 [영화장면]매력적인 여비서를 보느라 필립에게 음식도 제대로 못 먹이는 드리스

[영화장면]매력적인 여비서를 보느라 필립에게 음식도 제대로 못 먹이는 드리스 ⓒ 윤여동


상처를 치유하고 인생을 즐겁게 만드는 우정의 힘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필립의 생일날을 떠올릴 것이다. 필립의 생일 축하 행사는 클래식 음악회로 치러졌다. 클래식 음악처럼 우아하고 세련되었지만 그만큼 형식적이고 건조했다. 드리스는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음악을 틀며 "춤을 못추면 음악이 아니에요"라는 말과 함께 모두들 어우러져 신나게 흔들어대는 흥겨운 한마당을 펼쳐낸다.

그렇게 드리스는 건조한 필립의 집안에 감정이 충만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감정에 솔직하도록 부치기고 도와주어 사람들의 마음도 열어주었다. 그래서 필립은 오랫동안 편지만 써온 여인을, 이본은 정원사와 사랑을 나누게 해주었다.   

 [영화 장면]드리스의 강력한 권유로 편지로만 교제했던 여성과 통화하는 필립

[영화 장면]드리스의 강력한 권유로 편지로만 교제했던 여성과 통화하는 필립 ⓒ 윤여동


물론 드리스도 변했다. 새로 직업을 구하러 간 면접장에서 달리와 고아를 논할 정도로 교양 있는 존재로 인정받게 되고, 미술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이것이 서로 도와주고 배우며 한층 성숙된 삶으로 이끄는 우정의 힘이었다.

<언터처블>을 보고나면 우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런 우정을 만나기위해선 나와 다른 세계에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함도 배우게 된다. 필립이 속한 상류사회에서 드리스는 무식하고 경박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존재다. 필립의 동료는 그의 전과 경력을 들먹이며 멀리하라고 충고했다. 마치 우리네 '어른'들이 공부 못하고, 못 사는 애는 만나지 말라는 것과 비슷하기도 하다.

하지만 필립은 자기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한 드리스에게 선입견과 거부감을 없애고 문을 열었다. 그래서 1%의 값진 우정이 시작될 수 있었다. 우리는 나와 다른 존재에게는 거부감을 갖고 외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에게 낯선, 외면했던 것에 문을 여는 것이야 말로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길임을 영화는 말해준다.

내가 외면했던 대상이 사람이나 사회처럼 외부에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필립처럼 이성 중심으로 살았다면 억눌러왔던 감성의 세계에도 문을 열고 우정을 나눌 필요가 있다.

감동을 주는 영화는 대체로 우정의 기록인 경우가 많다. 서로 다른 두 존재가 만나 티격태격하며 싸우다가도 서로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우정을 쌓는 모습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여기엔 단지 따뜻한 우정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치유와 성장이 있다. 나와 다른 상대와의 우정을 통해 자신이 외면했던 두려움을 보게 되고 묻어두었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도 포함된다. 그래서 우정의 끝에 만나게 되는 것은 한층 성장한 '나' 자신이다.

우정이 시험공부를 대신해주지는 않지만, 인생공부엔 필수다. 그러나 인생보다는 시험이 더 중요한, 그래서 아픈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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