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 포스터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 포스터 ⓒ 시네마달


비극의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지슬>의 제목은 감자의 제주도 사투리에서 따왔다. 영화는 60여 년 전 제주에서 죄 없이 목숨을 잃어야 했던 희생자들을 대표하는 상징을 감자에서 찾는다.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에서도 감자는 당할 수밖에 없는 약한 사람들의 모습을 대신한다. 다른 것은 60여 년 전의 상처가 총칼에 의한 것이라면, 지금의 상처는 불도저와 포클레인 때문이란 것이다.

다른 것은 또 있다. 장소가 달라졌다. <지슬>이 제주도였다면, <모래가 흐르는 강>의 배경은 경상북도 영주의 내성천 주변이다. 정부와 한국수자원공사, 대기업들은 내성천에 영주댐을 만들겠다며 공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물을 가두어 놓고 편히 쓰겠다는 일직선 같은 마음은 그 생각처럼 할머니의 밭을 트럭으로 관통했다. 마을에서 60년을 살아온 할머니가 일군 감자밭은 공사 차량이 지나다니기 불편한 장애물에 불과했다.

 <모래가 흐르는 강>의 한 장면

<모래가 흐르는 강>의 한 장면 ⓒ 초록의공명


한 해만 더 농사를 짓겠다는 할머니의 통사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할머니의 밭을 밀고 간 트럭 바퀴에 아기 주먹보다 작은 감자는 뽑혀나갔다. 할머니와 마을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뽑힌 감자를 다시 심어보는 것이다. 그럼 그런 행동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을의 한구석에서는 나무들이 수없이 뽑혀 나갔다. 모두 환경과 미래를 위한다는 댐공사 때문이다.

비극은 감자밭과 나무들에게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수 억 년을 그 자리에서 흘렀는데 어느 순간부터 싹둑 물길이 끊기게 된 내성천의 신음은 조용해서 더 잔인하다. "졸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가 끊기자 부글부글 괴어오르는 녹조와 이끼떼가 맑았던 내성천을 대신했다.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은 그 변화를 지율 스님이 맨 카메라로 말없이 담았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강이 변해간다고 이야기한다, 강은 우리가 변해간다고 이야기한다."

 지율스님이 다큐멘터리를 찍는 동안 들고다녔던 캠코더는 만신창이가 됐다. 스님은 "새 걸 빌렸는데 이제는 돌려주기도 미안하게 됐다"고 떨어진 캠코더의 조각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지율스님이 다큐멘터리를 찍는 동안 들고다녔던 캠코더는 만신창이가 됐다. 스님은 "새 걸 빌렸는데 이제는 돌려주기도 미안하게 됐다"고 떨어진 캠코더의 조각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 정민규


우리가 변하게 만든 강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마음은 무겁다. 26일 저녁 부산에서 열린 첫 시사회에서도 관객들의 입에서는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리고 75분의 상영이 끝나자 관객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수소리에 첫 영화를 찍은 지율 스님은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영화가 끝나고 스님을 만났다. 이날 지율스님은 내성천의 모습을 담았던 조그만 캠코더를 들고 왔다. 곳곳이 부서진 캠코더는 청테이프의 접착력을 빌어 작동하고 있었다. 스님은 "언제라도 찍을 수 있게 카메라집에 넣지 않고 들고다니다 보니 카메라가 만신창이가 됐다"고 말했다. 화려한 카메라 기교 대신 열정으로 빚어낸 화면이 많은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러면서 지율 스님은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와서 놀랐다"며 "보러 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말했다. 스님은 영화를 만든 이유를 "내성천을 지키는 것이 낙동강을 지키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그 말을 듣자 스님의 다음 발걸음이 궁금했다. 스님의 마지막 말은 마치 처음을 이야기 하는 듯 했다.

"내 성격에 몸 담갔는데 나오겠나, 이제 곧 댐에 물도 담는다는데"

덧붙이는 글 부산 상영관 및 일정

아트씨어터 씨앤씨, CGV(동래/서면)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이상 3월 28일 개봉)
국도예술관(4월4일 개봉), 영화의 전당(개봉예정)
모래가 흐르는 강 지율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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