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페스티벌 개최가 유행인가보다

올해는 페스티벌 개최가 유행인가보다 ⓒ 박종원


몇 개월 전이었던가. 카페 커뮤니티에 "한국의 자영업자들이 안 되는 이유"라는 '짤글' 하나를 본 기억이 난다. 장황한 글 대신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삽화로 모든 것이 표현돼 있었다. 내용은 간단하다. 2009년엔 커피전문점, 2011년엔 떡볶이 체인점, 2012년엔 닭강정 가게가 유행이었다는 설명이었다. 자영업자들이 독창적인 아이템들을 찾기보다 유행을 따라가는 데 익숙하니 시장은 금세 포화상태가 되고 결국 해당 상권 전체가 공멸한다는 주제였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이 과연 동네 앞 골목의 상점들에만 해당된 일일까. 당장 한국의 뮤직 페스티벌 시장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근 10년 동안 국내 뮤직 페스티벌의 숫자는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2006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하나로 시작한 국내 뮤직 페스티벌은 이제 지역 축제까지 합해 마흔 곳을 육박한다. 한국의 협소한 공연시장을 감안하면 지금의 상황은 포화상태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록의 불모지였던 한국이 불과 몇 년 사이에 페스티벌이 차고 넘치는 나라가 됐다. 페스티벌 개최가 회사 사이에서 유행인가보다.

왜 '아이돌 페스티벌' 같은 발상은 나오지 않을까.

이제 남은 건 진흙탕 싸움뿐이다. 치열한 섭외 경쟁 탓에 팝스타들의 개런티는 수십억 단위로 치솟았고, 개최 장소와 브랜드 네임 침해를 둘러싼 기업 간 소송전이 발생하고 있다. 뭐, 다 좋다. 레드오션이든 블루오션이든, 주인이 굳이 거기서 장사를 하겠다는 데 제3자가 막을 순 없으니까. 다만 현실 직시는 필요하다. 10대 재벌을 능가하는 자본력을 갖춘 게 아니라면 같은 아이템으로 도전해 여기서 살아남긴 힘들다. 그럼에도 굳이 페스티벌 시장에 뛰어들 거라면 완전히 색다른 아이템으로 승부를 보라는 소리다. 단순히 한 철 장사로 바짝 벌어보겠다는 심산이 아니라면 말이다.

 슬립닛

슬립닛 ⓒ 로드러너 레코드


그래서 말인데, 왜 '아이돌 페스티벌' 같은 발상은 나오지 않는지 의문이다. 로커도 하고 힙합퍼도 하고, 디제이들도 하는 페스티벌을 아이돌은 왜 못할까. 음악 좀 들어본 리스너들은 '저것들이 페스티벌을 한다고?'라며 코웃음을 칠 지 모르겠으나, 국내 공연시장에 최초로 페스티벌의 원형을 들여온 건 로커들이 아닌 아이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 이승환, 육각수, 넥스트께서 나와 주셨던 추억의 그 드림콘서트, 무시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지금도 이런 형식의 행사들이 방송사와 정부의 연계를 통해 많이 이뤄진다. 케이팝을 주력 사업으로 하고 있던 기획사들 입장에선 이미 아이돌들을 일종의 미니 페스티벌에 참가시키고 있었던 셈이다. 여기서 스케일을 조금만 더 넓히면 된다. 하루 공연을 주말 3일로, 10분 남짓인 가수들의 출연 시간을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두 시간으로 늘리면 된다. 그 자리에서 콘서트를 한다 생각하면 되겠다.

아쉽게도 구체적인 데이터가 없는지라 수익성에 대한 확답은 줄 수 없다. 다만 아이돌 팬들은 오빠들을 위해서라면 지구 끝까지 쫓아갈 각오로 활동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행사가 제대로만 이뤄진다면 팬들은 새로 접하는 페스티벌 문화에 빠져들 것이고, 더 나아가 같이 숙식을 해결하면서 팬들과의 연대를 도모할 수 있다. 어린아이들만 만화를 보는 것이 아니듯, 성인인 마니아들만 페스티벌 문화를 즐겨야 할 이유는 없다. 음악의 내용도 충분히 대중성을 담보하니 가족단위 관객들도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국제 아이돌 뮤직 페스티벌'로 펼쳐보는 상상의 나래

그렇다면 꼭 국내 아이돌들로 페스티벌을 차려야 할까. 어차피 할 거라면 미국의 원 디렉션이나 저스틴 비버, 일본 쟈니스 계열의 해외 아이돌들도 섭외하자. 전 세계를 통틀어 국제 아이돌 페스티벌을 표방하는 행사는 일찍이 없었다. 전 세계의 아이돌 스타와 아이돌 팬들이 모여 화합하는 모습, 그리고 그 중심이 한국이 될 것이라는 상상해 보자. 만약 페스티벌이 성공적으로 정착된다면, 위문단을 만들어 파월 장병들을 위로했던 1970년대식 해외투어는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이후에는 해외 팬들이 알아서 한국을 성지 순례하듯 찾을 것이다. 이른바 '아이돌판 글라스톤베리' 되시겠다.

 소녀시대, 대만과 싱가포르 음원 차트에서 1위

소녀시대 ⓒ SM엔터테인먼트


여기엔 원칙이 있다. 아이돌 페스티벌도 페스티벌인 만큼 굽힐 수 없는 문화적 자존심이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의 노골적인 상업주의와 정부시책 홍보가 배제돼야 하고, 무대 기획을 넘어 모두가 참여 가능한 독특한 문화 기획이 전제돼야 한다. 공연장 내부만큼은 퍼포먼스와 표현의 제한이 없는 합법적인 해방의 공간이 돼야 한다. 페스티벌을 단순히 자매품으로 티셔츠나 끼워 파는 영업장 수준으로 생각한다면, 차라리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런 천박한 사고는 기획사에 대해 호의적인 팬들도 안티로 돌아서게 만들 테니.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적극적인 관객들의 태도겠다. 단순히 풍선을 흔들고, 응원구호를 외치고 대포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걸 넘어서 아이돌 문화 그 자체를 즐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샤이니 팬들이 '반짝반짝 부스'를 만들어 서로 레어 아이템을 교환하고, 각 팬클럽 회장들이 모여 올바른 '팬질'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이제는 20대 중반을 넘어선 신화 팬들이 신생 팬들의 인생 상담을 해주고, 그러다가 소녀시대 남자 팬과 푸드존에서 눈이 맞고, 현아 팬들과 함께 방송사의 과도한 심의규정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이 정도는 해줘야 셀카 몇 장과 함께 '나 문화생활 좀 해요'라는 허세도 부려볼 수 있겠다. 아이돌 사회의 지속 가능한 '덕질'을 위해서도 이런 교류의 몸짓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과 함께.

상상이나 해보련다. 사흘 동안 열리는 '덕질'의 향연.

 샤이니

샤이니 ⓒ SM엔터테인먼트


물론 상상은 현실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국내 팬덤 문화가 페스티벌 문화를 흡수할 만큼의 성숙함을 담보할 수 있겠느냐'라는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면, 솔직히 할 말은 없다.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으레 그렇듯, 자신이 좋아하는 오빠들만 보고 물밀듯이 공연장을 빠져나가거나 팬들끼리 서로 신경전을 벌인다면 어차피 있으나 마나한 행사일 테니까. 아이돌 팬들의 유일신 사상이 페스티벌의 다원주의적 방식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이렇든 저렇든 페스티벌을 여는 입장에서 해답은 크게 두 가지겠다. 속 편하게 팬들의 수준을 믿어보거나, 오빠들이 공연장을 떠나도 자리를 뜰 수 없을 만큼 재밌는 콘텐츠들을 만들어보거나.

스크롤을 내릴수록 황당하다는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정한다. 다만 록 페스티벌이라는 공연 양식 자체가 황당한 발상에서 출발했음을 잊지 마시라. 1970년대 당시만 해도 소똥 가득한 허허벌판에 뮤지션들을 한꺼번에 몰아넣고 열린 공연이 세상을 뒤엎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변화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최대 규모의 코첼라 페스티벌은 매년 12월 호화 크루즈 선에서 뮤직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호주의 사운드 웨이브 페스티벌은 장장 보름에 걸쳐 전국투어 형식으로 페스티벌을 진행한다. 뮤직 페스티벌 시장의 혁신과 변화는 우리가 짐작하는 이상으로 훨씬 빠르다. 우리가 볼 때 황당하다고 생각했던 콘텐츠들이 외국에서는 현실로 이뤄지고 있다.

 데뷔 15주년을 맞은 그룹 신화가 16일 17일 양일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2013 신화 15주년 콘서트>를 열었다. 17일 오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화(전진, 에릭, 이민우, 앤디, 신혜성, 김동완)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신화 ⓒ 이정민


발상을 바꿔 보자. 서로의 음악적 취향이 맞는 이들이 모여 만드는 자유분방한 축제가 뮤직 페스티벌이라면, 그 주인공이 굳이 아이돌이 아닐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수십 년간 불모지였던 록 뮤직과 달리 아이돌 시장은 상대적으로 풍족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실현 가능성을 떠나 분명 검토해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희망사항이라기엔 너무 거대하고, 꿈으로 남겨놓기엔 지극히 구체적이다. 사흘 동안 펼쳐지는 아이돌 천국, 안드로메다에나 있을 법한 그 '덕질'의 향연 위에 슬그머니 뮤직 페스티벌의 미래를 그려보는 이유다. 누가 뭐래도 좋다. 어차피 상상은 자유니까. 2006년 3월, 한국의 글라스톤베리를 꿈꿨던 그때처럼 말이다.

P.S: '반드시' 아이돌 페스티벌일 이유는 없습니다. 국제 걸 그룹 페스티벌이 열린다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가겠습니다.

아이돌 소녀시대 샤이니 신화 아이돌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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