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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
ⓒ 박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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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역시, 최고야! 탄성이 절로 나오는 박물관

아테네 고고학박물관은 그리스에서 출토된 유물, 그중에서 조각품이 압권이다. 물론 그중에는 로마 시대의 조각품도 있다. 그리스가 오랜 기간 로마제국의 일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이 박물관 앞에 서면 조금 애석한 생각이 든다. 멀리 우뚝 서 있는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과 비교해 보면 너무 초라하기 때문이다. 조상만 한 후손이 없는 법인가. 너무 뛰어난 조상을 두다 보니 후손이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는 것인가. 여하간 박물관의 도리아식 기둥은 파르테논의 그것과는 수준 차가 너무 난다.

당대의 기술은 그때가 최고라는 말이 있다. 파르테논을 만든 기술은 그것이 만들어진 기원전 5세기의 그것이 최고다. 현대가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했다 해도 고대 그리스인들이 발휘했던 그 기술을 따라갈 수 없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의 손이 좌우하는 기술은 그것과 비례하여 발전하는 게 아니다.

초라한 박물관의 외관에도 이 박물관의 문을 열고 제1 전시실을 들어가는 순간 그 외관과는 상관없이 역시, 최고야! 하는 탄성이 나온다.

아테네 고고학박물관은 19세기 그리스가 오스만 터키(튀르크)로부터 독립했을 때부터 잉태했다. 4백 년 가까이 오스만 터키에 의해 지배되어 온 그리스는 1821년 드디어 독립하게 된다. 독립과 동시에 그리스인들은 민족적 긍지를 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그리스 전역의 고고학적 유물을 소장할 수 있는 박물관이 만들고 싶었지만 재정적 어려움 등으로 제대로 된 박물관을 갖지 못했다. 상당 기간 임시 박물관 시대를 경험하고 19세 후반에서야 비로소 지금의 박물관 시설을 갖추고 본격적인 국립고고학박물관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초기에는 아테네와 인근에서 발굴된 것만을 소장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스 전역에서 발굴되는 유물을 소장하는 그리스 최고, 아니 그것을 넘어, 세계 유수의 박물관으로 발돋움했다.

현재 이곳에 소장된 것 중 19세기 이전에 발굴된 것은 별로 없다. 거의 모두 그리스가 독립한 이후 발견된 것들이다. 그런데도 그 수량은 엄청나다. 독립 이전 그 많은 보물을 영국이 가져가 영국박물관을 채웠지만 고대 그리스의 유물은 땅을 파면 팔수록 나오는 것이었기에 해가 가면 갈수록 소장품은 늘어나 드디어 영국박물관을 능가하게 되었다. 지금은 적어도 그리스 땅에서 출토된 고대 그리스 유물에는 이 박물관이 세계 최고로 인정받지 않나 생각한다.

이 박물관과 관련하여 꼭 하고 싶은 이야기 하나는 2차 세계대전 중의 일화다. 당시 박물관을 지키던 사람들은 전쟁 중에 박물관 소장품이 약탈당하고 손상되는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이들은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 중 일부는 밖으로 내보내 안전가옥에 보관하고, 그러지 못한 소장품은 나무 상자에 넣어 박물관의 지하에 파묻고 특수 밀봉을 했다.

그 결과 전쟁 중에 박물관은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 소장품은 손상 없이 세상에 나타날 수 있었다. 그리스 국보를 지키고자 했던 박물관 사람들의 철두철미한 직업정신에 숭고함마저 느낀다.

아테네 박물관의 최고의 컬렉션은?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미케네관에 있는 일명 '아가멤논의 황금마스크'.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미케네관에 있는 일명 '아가멤논의 황금마스크'.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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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엔 이곳의 컬렉션 중 최고는 미노아 문명과 미케네 문명으로 알려진 선사시대 유물이다. 제1관의 문을 열자마자 나타나는 미케네 문명관의 이른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가멤논의 마스크(그러나 이것은 진짜 아가멤논의 것은 아니다)는 우리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한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게 있었다.

크레타 문명이라고 할 수 있는 에게해 섬 지방에서 발견된 조각품들인데 지금으로부터 4천여 년 전 작품이 마치 20세기의 추상작품과 거의 다름이 없이 전시되어 있었다. 세부적인 묘사를 생략한 채 사람들의 모습을 조각한 것들은 이미 그 당시 사람들의 미적 감각이 추상적 감각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해 준다.

왼쪽은 에게해의 어느 섬에서 발견된 크레타 문명의 조각품, 오른쪽은 헨리 무어의 작품, 왼쪽작품이 4천 년 전의 어느 섬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왼쪽은 에게해의 어느 섬에서 발견된 크레타 문명의 조각품, 오른쪽은 헨리 무어의 작품, 왼쪽작품이 4천 년 전의 어느 섬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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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몇몇 작품은 20세기 작가 헨리 무어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신기할 따름이다. 하늘 아래에 새것은 없다. 무어는 분명 그리스의 이 조각품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박물관에서 내놓은 책자에도 그렇게 설명되어 있다).

선사시대의 유물과 함께 고고학박물관의 컬렉션을 빛내 주는 것은 기원전 6~7세기부터 시작된 조각품이다. 이 석조 조각품들은 기원전 5세기의 고전시대 이미 절정의 예술성을 보여주었고 그 이후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제국 시대로 이어진다. 고전시대와 헬레니즘 시대의 많은 작품들이 보는 이의 눈을 감지 못하게 한다.

로마시대의 조각품은 위의 조각품에 비하면 수적으로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오늘 내가 설명할 로마황제의 초상화를 설명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상당수의 황제 조각품이 그리스에서 출토되었으며 그것들이 지금 이 고고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코펜하겐 칼스버그 박물관
 코펜하겐 칼스버그 박물관
ⓒ 박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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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스버그 박물관] 맥주회사와 박물관과 무슨 관계일까

세 번째로 소개할 박물관은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칼스버그 박물관이다.

칼스버그?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가. 그렇다. 맥주 이름이다. 덴마크를 대표하는 세계 최고의 맥주회사 이름이기도 하다. 칼스버그 박물관은 이 맥주회사와 관계가 있다. 이 박물관은 칼스버그 창업자 집안에서 컬렉션한 그리스 로마 조각품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코펜하겐의 중심지인 티볼리 공원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겉보기에는 뭐 그저 그러한 유럽의 박물관 중의 하나로만 보인다. 하지만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진다. 그 현란한 컬렉션에 입이 닫히지 않는다.

이 박물관은 종합 박물관이 아니고 칼스버그 창업자의 아들 칼스버그 야콥센이 자기 취향에 따라 모은 세 가지 컬렉션으로 이루어진 전문 박물관이다. 그는 그리스 로마시대의 조각품을 집중적으로 모았고, 여기에 두 가지 컬렉션을 더 했다. 19세기 프랑스 인상파 회화 작품 및 덴마크 현대 회화 작품과 조각품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박물관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그리스 로마 조각품이다. 그래서인지 박물관의 이름조차 NY KARLSBERG GLYPOTEK이다. 여기에서 GLYPOTEK은 희랍어로 조각품이라는 뜻이다.

칼 야콥슨은 1882년 자신의 모든 컬렉션을 공중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사설 박물관을 자신의 집에 세운다. 그러다가 죽기 전에 이 컬렉션 모두를 덴마크 정부에 넘기고 그 관리를 위해 칼스버그 재단을 만들었다. 그 후 박물관은 현재의 위치로 옮겨 1906년 확장 개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구 사람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진짜 기부란?

서구 사람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진짜 기부다. 돈을 벌면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없을까. 뭐 쩨쩨하게 자식들에게 변칙적으로 재산을 상속하는 방법으로 공익재단을 만들지 말고 말이다.

내가 방문교수로 1년을 지내고 있는 곳이 스웨덴 룬드(룬드대학 라울 발렌베리 인권연구소)라는 곳인데, 이곳에서 코펜하겐은 기차로 불과 40분 거리이다. 이곳에서 대처는 코펜하겐이니 그곳을 자주 나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나는 이 박물관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세계 일류의 박물관이 있는데 그것을 그대로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사실은 칼스버그 박물관에서 비롯되었다. 이곳을 관람하면서 로마의 인물 조각상이 기본적으로 초상화라는 생각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여러 조각상을 보던 가운데 박물관에서 특별한 조각상 하나를 보았다. 그것은 로마시대의 실제 조각품이 아니라 당시 인물 조각상이 얼마나 사실적으로 만들어졌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복원작품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아래 사진을 보라.

칼스버그 박물관에서 본 조각상 두 개, 왼쪽 조각상은 오른쪽 조각상이 채색된 것으로 제작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칼스버그 박물관에서 본 조각상 두 개, 왼쪽 조각상은 오른쪽 조각상이 채색된 것으로 제작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 박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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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개의 조각상은 같은 것인데,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은 오른쪽의 조각상만을 보는 것이다. 로마시대의 많은 인물 조각상 중 상당수가 제작 당시에는 이같이 왼쪽과 같은 작품이었다. 조각 자체가 매우 사실적인데 거기에 정교한 채색까지 해서 이 조각상을 보는 이들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을 대하는 듯했을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로마의 인물 조각상은 일반적인 초상화 그림보다 더 사실적인 초상화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칼스버그 박물관 내의 그리스 로마시대 조각상, 학생들이 조각품 앞에서 데생을 하고 있다.
 칼스버그 박물관 내의 그리스 로마시대 조각상, 학생들이 조각품 앞에서 데생을 하고 있다.
ⓒ 박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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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엔 다른 것은 몰라도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품, 그중에서도 로마황제의 초상 조각품은 이곳이 세계 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박물관이라고 할지라도 로마황제의 초상 조각을 이렇게까지 많이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므로 나의 설명은 바로 이 칼스버그 박물관의 로마황제 초상 조각을 기준으로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태그:#세계문명기행, #로마문명, #아테네 박물관, #칼스버그 박물관, #로마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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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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