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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문명기행 집필에 즈음하여

법학을 하는 내가 주제를 모르고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쓰고 싶다. 세계 이곳저곳에 다녀본 나의 경험을 우리의 이웃, 그중에서도 교양에 목말라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문명의 발상지를 돌아보면서 느끼고 깨달은 소중한 지식은 내 것만이 아니다. 우리가 모두 함께 공유해야 할 하나의 사회적 자산이다. 나는 그 자산을 나눌 뿐이다.

오늘부터 나는 내 시간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내가 직접 보고 느낀 로마문명을 내 방법대로 기술해 보고자 한다. 벌써 여러 해가 흘렀다, 서양문명의 뿌리를 알아보고자 로마의 역사를 공부한 것이. 책을 읽어가면서 언젠가 로마제국의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을 하나하나 답사하기로 맘을 먹었다. 로마가 있는 이탈리아 반도를 위시하여 지중해권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는 유적지를 직접 가서 확인하고 싶었다. 로마제국의 유물이 전시된 유수한 박물관에 가서 그 유물을 만든 2천 년 전의 로마인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제 그 계획의 일부를 이루었고, 그것을 글로 옮겨야 할 때다.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보다는 사실 흥분감이 앞선다. 어떻게 내가 이 거창한 문명을 여러 독자에게 생생하게 옮길 수 있을까. 전문가가 써 놓은 글들을 적당히 번역하여 옮기는 방법도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법학을 하는 내게 그런 일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번역한다면 그 분야 전문가들이 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지중해 이곳저곳을 다닌 것을 단순히 기행문 형식으로 엮고 싶지도 않다. 전문 여행가처럼 수십 일을 들여가면서 이곳저곳을 샅샅이 훑고 다니면서 현장을 묘사할 시간적 여유도 없고 또 그런 유의 글들은 시중에 적잖게 나와 있지 않은가.

그래서 택한 것이 나만의 기법으로 로마문명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주제별 접근 방법이 그것이다. 현장 중심의 문명기행을 넘어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나의 경험을 정리해 보는 것이다.

예컨대, "로마인의 길"이라는 주제를 걸고 로마인들이 만든 위대한 로마가도를 설명해 보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식의 문명 기행기는 나로서는 일찍이 보지 못했다. 그것을 내가 시도해 보고자 한다. 솔직히 내가 그것을 얼마나 제대로 해낼지 자신이 없다. 그저 정성을 기울여서 내가 본 것을 주제별로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시도할 것이다. 독자 제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말만 하고 로마문명기행을 시작한다.

조각품이 초상화라니?

오늘 나는 첫 번째 로마문명기행을 로마황제의 초상화로 정했다. 아마 서양의 유명 박물관을 가본 사람들은 대충 알겠지만, 그들 박물관에는 로마 시대 조각품(sculpture)이 적지 않게 전시되어 있다. 개 중에는 로마황제 누구의 초상화(portrait)라고 쓰인 것을 보았을 것이다. 바로 그것을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오늘 기행의 목적이다.

먼저, 초상화가 무엇인가. 누군가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다.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으면 초상화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 얼굴을 소재로 한 다른 장르의 예술품일 뿐이다. 오늘날 초상화는 대체로 종이 위에 그린다. 서구 역사에서 보면 대체로 종이 위에 그린 초상화는 15~16세기 르네상스 이후 대중화되었다. 그 이전에도 물론 종이 위에 그린 것이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초상화는 오늘날 보기 어렵다. 보존연한이 끝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이전 것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내구성이 종이보다 훨씬 긴 소재 위에 그린 것이다.

비잔틴 제국은 세라믹 혹은 유리를 사용한 모자이크 벽화 초상화를 남겼다. 그 이전 것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역시 벽화 초상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 이집트 문명이나 지중해 문명권은 건조한 날씨 덕에 2천 년 이상 벽화가 제대로 보존된 것이 꽤 있다. 빛은 바랬지만 그런대로 형태를 알 수 있고, 때론 놀라울 정도로 보존이 잘 되어 있는 것도 있다. 로마제국 시절의 벽화 초상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폼페이 유적에서 나온 벽화 초상화, 빵집 주인 테레니우스 네오와 그의 부인 초상화다. 제작연대는 기원후 55-79년 사이. 한편, 영국박물관(britishmuseum)에서 <폼페이(Pompeii)와 Herculaneum> 주제로 2013년 3월28일부터 9월 29일까지 전시회가 열린다.
 폼페이 유적에서 나온 벽화 초상화, 빵집 주인 테레니우스 네오와 그의 부인 초상화다. 제작연대는 기원후 55-79년 사이. 한편, 영국박물관(britishmuseum)에서 <폼페이(Pompeii)와 Herculaneum> 주제로 2013년 3월28일부터 9월 29일까지 전시회가 열린다.
ⓒ DeAgostini/Sup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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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폼페이 유적에서 나온 몇 장의 초상화는 지금 보아도 아주 생생하다. 그중에서도 빵집 주인 테레니우스 네오 부부의 초상화는 마치 몇 년 전에 그린 것 같이 완벽하다. 화산재가 도시 전체를 덮어 완벽하게 원형을 보존해 준 덕분이다. 폼페이는 기원 후 79년에 땅 속으로 사라졌으니 거의 2천 년을 견뎌 온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로마제국 시절에 만들어진 초상화로 으뜸은 역시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상이다. 조각상이 초상화라니? 조금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조각상은 그저 인간의 상상이 가미된 예술품이지 그것이 어찌 초상화가 될 수 있는가. 하지만 서구 박물관을 돌아다니면서 2천 년 전의 조각품을 꾸준히 본 결과 조각품 아래에 쓰인 "PORTRAIT"이라는 글자는 그냥 쓰인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 단어가 뜻하는 대로 그 조각품은 단순한 예술품이 아니라 당대의 황제나 정치가 혹은 철학자의 실제 얼굴을 그린 초상화였던 것이다. 오늘 이야기는 바로 그에 관한 것이다. 내가 고대 그리스나 로마제국의 조각상을 본 것은 유럽의 여러 박물관에서다. 그중에서 오늘 설명을 위해 세 곳의 박물관(미술관)을 선정했다.

나로서는 이 세 곳에서 로마제국의 황제들을 가장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 그리스 아테네의 국립 고고학박물관 그리고 덴마크 코펜하겐의 칼스버그 미술관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 박물관은 내가 몇 번에 걸쳐 발로 답사한 박물관이라 지금 이 순간도 박물관 내에서 황제들의 초상화를 찬찬히 음미하던 기억이 새롭다.

[대영박물관] 먼저 런던의 대영박물관을 가보자

영국박물관
 영국박물관
ⓒ 박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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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박물관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라도 물어보면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라고 할 것이다. 내가 다녀 본 경험으로도 전 세계에서 두 개의 박물관만 꼽으라면 런던의 대영박물관과 파리의 루브르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박물관의 이름은 영 맘에 들지 않는다. 대영(大英) 박물관이라니, 제국주의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 영국이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을 때는 이 이름이 자연스러웠겠지만, 지금이야 이 이름이 제격일 수 없다. 그래서 혹자는 이 박물관의 영문명(British Museum) 그대로 <영국박물관>이라고 해야 한다고 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영국박물관이라 칭하자.

영국박물관의 시작은 대부분의 서구 박물관처럼 누군가의 예술품 기증에서 시작되었다. 18세기 중엽 한스 슬로안(Hans Sloan)경이 평생 모았던 컬렉션을 영국 정부에 모두 기증한 것이 계기가 되어 박물관이 만들어졌는데, 여기에 영국 왕실의 컬렉션이 보태졌다. 영국박물관은 이러한 컬렉션을 토대로 1759년 개관되었다. 영국박물관이 세계 최고의 컬렉션을 갖게 된 것은 영국의 화려한 19세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24시간 지지 않는 태양의 나라 빅토리아 왕조는 세계 각처에서 수많은 명품 유물을 거두어들여 영국박물관의 수장고를 채웠던 것이다.

로제타 스톤, 영국박물관. 이 유물로 인해서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해독되었다.
 로제타 스톤, 영국박물관. 이 유물로 인해서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해독되었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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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서 영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맹주가 되었다.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 집권 직전 나폴레옹을 격파하고 유럽의 패자가 된 후 나폴레옹이 이집트에서 가져온 로제타스톤을 가져왔고, 그리스 아테네 한가운데 있는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는 주요 부위를 떼어내어 몽땅 박물관으로 가져오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분명 문화재 약탈이다. 이집트나 그리스는 이것 때문에 가장 중요한 국보를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원통해했겠는가. 수없이 문화재 반환을 요구했지만, 영국이 귀를 기울일 일은 만무한 일이었다.

빅토리아 시대는 서구 박물관에게 발굴의 시대였다. 주요 박물관들이 이집트로, 중동으로, 이집트로 달려가 고대 문명 유적지를 발굴하였다. 영국박물관은 여기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였다. 중동의 대부분 나라가 영국의 반식민지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발굴권도 쉽게 땄고 발굴품을 영국으로 가져오기도 쉬웠다. 지금 같아서야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영국박물관 내의 아시리아관 일부
 영국박물관 내의 아시리아관 일부
ⓒ 박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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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영국박물관 내에 있는 이집트관이나 아시리아관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니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든, 이집트 문명이든, 그리스 문명이든, 알짜배기 유물은 영국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게 되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영국이 주요 문명권의 최고의 유물을 최고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 이것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이 장물을 돌려주지 않고서도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이유다.


태그:#세계문명기행, #로마문명, #대영박물관,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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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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