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남자사용설명서>에서 존재감없는 국민흔녀 CF조감독 최보나 역의 배우 이시영이 6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남자사용설명서>에서 존재감없는 국민흔녀 CF조감독 최보나 역의 배우 이시영이 6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순간 이런 상상을 했다. 인터뷰 장소가 아닌 링 위에서 이시영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상대를 노려보면서도 빈틈을 파악해야 하고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기 싸움에서도 지지 말아야 한다. 인터뷰하는 자로서 과연 그녀와 팽팽하게 긴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게 엉뚱한 상상만은 아니다. 적어도 배우 이시영으로서도 복싱은 분명 큰 도움이 되는 운동이니 말이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자신이 맡은 해당 장면에선 짧은 시간이라도 그 순간은 주인공이며 분명한 한 방을 던져야 한다. 한눈을 파는 순간 카메라는 정직하게도 그걸 잡아내며 본인 역시 그 사실에 부끄러워할 일이 되기 때문이다.

영화 <남자사용설명서>를 두고 이시영은 "주연으로 참여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첫 작품"이라는 소감을 말했다. 1982년생에 2008년 다소 늦은 데뷔를 했던 터에 누구보다 치열하게 배우생활을 했을 법했다. 어쩌면 영화 속 광고 조감독 최보나는 이시영의 배우 성장기와 '일부' 닮았을지 모르겠다. 국민 '흔녀'(흔한 여자)가 '훈녀'(훈훈한 여자)가 돼 능력과 자질을 인정받는 최보나는 이제 막 상업 영화의 주연으로 자시의 가능성을 증명해 보이는 이시영이었다.

① <남자사용설명서>에 대한 이시영의 설명서

영화를 접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건 여전히 여성을 도구처럼 대상화하는 우리 사회 모순에 대한 비판?' 겉으론 남자의 마음을 훔치며 자신의 매력을 증명해 보이려는 한 여성의 일화 같지만 말이다. 밑도 끝도 없는 이 감상평에 대한 이시영의 설명은 이렇다.

"여러 가지가 담겼다고 봐요. 남자의 모순을 역으로 이용하는 보나의 모습도, 재치 있지만 뼈가 있는 부분도 있어요. 한 영화에 너무나 많은 걸 담으려면 안 좋을 수 있지만 보나가 남자 사용 설명서를 통해서 감독이 되고 남자를 얻는 건 영화적 장치가 아닐까요?

분명 광고 디렉팅을 할 능력이 있는 친구고 사랑을 할 수 있는 열정이 있는 친군데 본인은 모르는 거죠. 그래서 '남자사용설명서'라는 비디오테이프가 보나에겐 큰 행운이기보다 자신의 진가를 깨닫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봐요. 영화를 보면 보나는 지저분해 보이고 뭔가 후줄근하게 입고 다니지만, 집에다 정리해놓은 글이나 사물들을 보면 체계가 잡혀 있잖아요. 열등감으로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거죠. 결국, 설명서는 보나에겐 필요 없는 거였어요."

우선 겉보기에 <남자사용설명서>는 구성이 독특하다. B급 유머, 그리고 저렴해 보이지만 절대 저렴하지만은 않은 컴퓨터 그래픽들, 게다가 어색한 재연배우처럼 보이는 외국 배우들의 조합이 그렇다. 자칫 영화판 '서프라이즈'(재연 배우 중심의 TV 프로그램)가 될 수도 있었다고 물으니 이시영은 박장대소했다.

"이게 지금은 영화의 매력일 수 있는데 설명서에 등장하는 외국 배우분들은 딱 봐도 엉성하잖아요. 촬영 당시엔 훨씬 엉성했어요. 근데 결과물을 보니 역시 감독님이구나 생각했죠. 걱정이 많아져서 정세 오빠랑은 촬영하면서 개봉과 동시에 어디론가 숨어야 할지도 했을 정도였어요. 감독님이 혼자 고민이 많으셨을 거예요. 겉으론 우리에게 파이팅을 외쳤지만 얼마나 머리가 아팠을까요."

남자사용설명서 여자라면 모르는 남자의 심리를 줄줄이 꿰어차게 만드는 연애 교과서인 '남자사용설명서'는 Dr.스왈스키 버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다.

▲ 남자사용설명서 ⓒ 영화사 소풍, 데이지엔터테인먼트


② 배우 이시영에 대한 '이시영 설명서'

앞서 말했지만 다소 늦은 데뷔였다. 한국 나이로 서른둘이라지만 연기경력으로 치면 이제 6년이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경력보다 적절한 시기에 주연작을 잘 만났다 싶었다. 게다가 동안의 외모에 개성까지 겸비했으니 앞으로가 더 궁금해지는 배우가 이시영이었다. 이에 대한 이시영의 설명은 이랬다.

"그러고 보니 이번 영화는 저도 그렇고 정세 오빠도 그랬고 다 첫 주연이었어요. 게다가 감독님도 데뷔작이야! (웃음) 주연이 갖는 부담감을 처음 느꼈죠. 생각이 많아지고,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어요. 같이 힘을 모아 하나의 영화를 만들어 내야 하잖아요.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끝나고 보니 다들 힘들어했더라고요. 

지금 보면 정세 오빠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안하기도 하고. 감독님하고도 제가 질문도 많이 했고 토론도 많았거든요. 피곤하실 정도로요. 감독님이 치밀한 엉성함을 강조했는데 그냥 엉성함과 한끝 차이잖아요. 웰메이드 비급 영화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임시편집본을 봤을 땐 절망적이었어요. 게다가 CG(컴퓨터 그래픽)도 많이 들어가야 해서 걱정이었죠. 근데 갈수록 나아지더라고요. 보통은 편집본을 보고 완성본 보곤 했는데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본 건 처음이었어요. '편집과 후반 작업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네?' 혼자 생각하면서 공부되는 게 많더라고요."



<남자사용설명서>를 얘기하면서 지난해 또 다른 로맨틱 코미디인 <커플즈>를 뺄 수 없었다. 상업적으로 실패라면 실패지만 나름 신선한 시도를 한 작품에 이시영은 자신의 몫을 해냈다.

"아쉽죠. <커플즈>는 제게 상업영화 데뷔나 마찬가지고 좋은 분들과 인연이 된 작품이에요. 결과는 아쉽지만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어떤 땐 열심히 안 했는데도 작품이 잘될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본인 만족감은 크지 않을 거예요. 그땐 제가 할 수 있는 폭 안에서 최선을 다했어요. 근데 <남사용>이 더 힘들더라고요(웃음).

말씀하신 대로 제가 2008년 데뷔를 했어요. 우연한 기회에 시작했는데 너무 어렸을 때 데뷔를 했으면 오히려 열심히 안 했을 지도 몰라요. 저와 동갑이거나 어리지만, 경력으론 훨씬 선배인 분도 많아요. 영화의 주연이라면 그만큼의 역할과 연기를 해야 하는데 못하면 데뷔시기가 늦고 경력이 짧다는 건 핑계가 안 되잖아요. 그 틈을 극복하려다 보니 생각이 많아지는 거 같아요.

하지만 조급함은 없었어요. 저는 되도록 길게 보는 편이에요. 단지 이런 조급함은 있어요. 제 나이 또래의 역할이 있는데 종종 저보다 훨씬 어린 역할을 하고 있기도 했잖아요. 나이에 맞는 역을 빨리 잘하고 싶었던 건 있어요. 20년 뒤에도 로코 장르를 제가 자연스럽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 부분을 보더라도 좋은 배우로 성장하고 싶은 생각이 강한 거죠."

 영화<남자사용설명서>에서 존재감없는 국민흔녀 CF조감독 최보나 역의 배우 이시영이 6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영화<남자사용설명서>에서 존재감없는 국민흔녀 CF조감독 최보나 역의 배우 이시영이 6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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