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의 법칙> 에서 열심히 활약중인 미르

<정글의 법칙> 에서 열심히 활약중인 미르 ⓒ SBS <정글의 법칙>


'리얼'에도 수위 조절이 필수이자 관건인 시대다. 하물며, 너도나도 '진정성'을 외치는 시대에 '조작' 의혹은 프로그램을 한 방에 '훅' 가게 만드는 치명타로 기능한지 오래다. 그 한방을 <정글의 법칙>이 독하게 감내하고 있다. 

"더욱 철저하게 준비하고 체크하겠습니다. 자칫 진정성을 가릴 수 있는 과장된 편집과 자막을 지양하겠습니다. 카메라 밖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장상황에 대한 설명도 친절히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서일까. 최근 불거진 일련의 조작 논란에 대해 SBS <정글의 법칙> 제작진이 내놓은 사과와 해명 글은 그 어떤 방송사 제작진의 논란 해명과 비교할 때, 상세하고 구체적이며 절절했다. 한 출연 배우 매니저의 SNS 글 하나가 불러온 파장은 그렇게 누리꾼들이 제기해 온 의혹들을 수면위로 끌어올렸고, 결국 제작진의 이례적인 장문의 해명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시청자들의 원성으로 이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제작진은 방송 화면을 통해 '오지'에서 갖은 고생을 했다고 자막과 편집으로 누누이 강조했다. 하지만 그 지역들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흔한 관광 상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 이때 드는 배신감은 그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그 관광지, 아니 오지들을 직접 체험하며 활짝 웃고 있는 외국인들의 사진은 제작진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리얼오지체험예능'이란 <정글의 법칙>의 정체성과 그간의 성과들을 한번쯤 의심하게 되는 증거자료로서 강력한 화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궁금해지는 것은 과연 <정글의 법칙>을 둘러싼 논란이 비단 제작진의 부주의에 관한 사과로 끝날 것이냐 아니면 '리얼'에 대한 근본적인 시선의 제고로 이어질 것이냐 하는 점이다.

 SBS <정글의 법칙 in 아마존>

SBS <정글의 법칙 in 아마존> ⓒ SBS


'리얼'이 지배해 온 시대의 최전선 예능 <정글의 법칙> 

<무한도전>으로부터 정착된 '리얼' 예능에 대한 의혹은 과거 '농촌 리얼버라이어티'를 표방했던 <패밀리가 떴다>의 대본과 편집 논란으로 이미 홍역을 치뤘고, 시청자들 역시 예방 접종을 단단히 맞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리얼이란 정서적 토대는 예능의 시대정신으로 공고히 자리매김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합의안에서 수 년 째 연예인들은 가상 부부로 연기를 하고(<우리 결혼했어요>),  남자들의 '야생기'와 '여행'이 강조되고(<1박2일>), 이제는 아이들과 아빠의 여정으로 진화(<아빠 어디가>)하거나, 현대인의 생활(<인간의 조건>)이나 독거인의 일상(<남자가 혼자 살때>)을 들여다보기까지 한다. 

이 와중에 <정글의 법칙>은 SBS가 찾은 노다지로 톡톡히 기능해왔다. '달인' 김병만과 그의 식구들이 벌이는 기지와 노력과 체험이 오지와 만났을 때, <정글의 법칙>은 극한의 '리얼'과 '야생'과 '다큐', 그리고 '예능'이 만난 것 같은 색다른 형식을 찾아낸 듯싶었다.

예컨대, 블록버스터 다큐 <남극의 눈물>과도 같은 환경에서 벌이는 <도전 지구 탐험대>류의 체험예능을 접합하고, 이를 최근의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업그레이드시킨 신장르 말이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21세기도 10년이 훌쩍 넘은 이 시대에 그다지 새롭지 않지만 새로운 것 같은 '리얼' 예능 <정글의 법칙>은 그렇게 '대세'가 되며, 여성 버전까지 만들어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듯 보였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이었던 말인가.   

 1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한 <정글의법칙 IN 뉴질랜드>팀의 박보영이 생각에 잠겨 있다.

1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한 <정글의법칙 IN 뉴질랜드>팀의 박보영이 생각에 잠겨 있다. ⓒ 이정민


이것은 편집과 자막의 문제가 아니다  

<정글의 법칙>의 본질은 우리가 평생에 한 번이라도 쉬이 떠날 수 없는 '오지'에서 맛보는 '대리체험'의 판타지다. 거기엔 생존본능의 현시가 있고, 도시문명에 갇힌 현대인이 접할 수 없는 자연이 있으며, 그 안에서 육체의 한계를 전시하고 체험하고 뛰어넘는 '병만족'의 활약이 자리했다.

더욱이 기존 체험프로그램이 줄 수 없는 화면과 함께 김병만을 비롯해 친숙한 연예인들이 체험하는 야생에서의 민낯이 신선함으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이번 논란에서 연기자들에 대한 질타가 절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쨌건 잘 짜인 각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연기자들의 각고의 노력이 시청자들에게 감동이란 이름의 무기로 작용했다는 반증인 셈이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할 예는 다큐멘터리의 승부처야말로 편집이라는 점이다. 기둥 서사가 선명하지 못하고 빈약할 수밖에 없는 다큐는 오히려 대상에 다가간 카메라의 정직성과 함께 어떤 편집으로 서사를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이다.

이러한 속성은 영화나 방송 다큐에서 도드라지지만 다큐적 속성과 리얼을 강조하는 예능 역시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편집 논란을 거쳤던 역시 SBS 예능 <패밀리가 떴다>를 떠올려보라. 존재할 수밖에 없는 대본과 연기자들의 애드립, 그 안에서 잡아낸 생생한 화면이 '리얼 예능'의 강점이라면 이를 적절히 뒷받침하는 것이 편집의 예술이라는 것은 동일하다는 얘기다.

허나 <정글의 법칙> 제작진은 단순한 편집이나 대본 설정의 수위를 넘어선 '오버페이스'로 화를 좌초해 버렸다. 오지가 아닌 장소를 오지로, 위험하지 않은 관광지를 위험지역으로, 관광 상품까지 파는 부족을 오지 부족으로 둔갑시킨 프로그램의 전제는 그 카메라 안에서 그 체험과 '실연'해야 하는 연기자들의 고생을 '연기'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자신들이 내건 토대와 설정을 스스로 무너뜨린 환경에 대한 의도된 무시 혹은 몰이해. 이는 결코 "과장된 편집과 자막" 그리고 "현장상황에 대한 설명"이란 해명으론 시청자들을 순순히 납득시킬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서왔던 것으로 보인다. '리얼'을 약속한 '우결'의 한 커플이 '열애설' 한 방으로 하차하는 상황과는 다르게, 근본적인 '약속'을 꽤나 오래전부터 스스로 깨버린 것과 같다고 할까. 
 <정글의 법칙>의 진정성은 김병만으로부터 비롯됐다.

<정글의 법칙>의 진정성은 김병만으로부터 비롯됐다. ⓒ SBS


'리얼 예능'이란 스스로의 토대를 무너뜨린 책무의 방기 

시청자들이 즐겼던 환상의 토대가 전제부터 거짓이었다는 브라운관 밖 현실은 그렇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정글의 법칙>의 그것은 '각본 없는 드라마'라 선전할 수밖에 없는 기존 '리얼 예능'과는 또 다른 영역이었다. 오지에서의 '리얼 체험'을 창조해낸 제작진의 시청자들에 대한 기만 아닌 기만은 프로그램의 인기와 지속을 위한 과욕이라 눈감아 주기엔 프로그램의 근간을 뒤흔들 만한 성질의 것이 맞다. 제작진과 연기자들의 고충을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말이다.

여기서 연출을 어디까지 용인하느냐의 문제는 질문의 성질 자체가 다르다. 연기자들을 보호하고, 제작 환경을 고려해야 하며, 감동과 볼거리와 눈물을 포함해 예능의 재미를 이끌어내는 것은 제작진의 본업이자 의무일 뿐이다. 그러나 그 출발이 과장된 연출이었다는 점이 밝혀진 지금, 그 재미에 순수하게 감응하지 못하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리얼'에 대한 과잉된 선호나 집착으로 돌릴 수는 없다.  

'오지'와 '체험'이라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정글의 법칙>이 점점 더 하드코어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위태로워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더더욱 1년 넘게 육체적인 고통을 감내하며 프로그램을 성공으로 이끈 연기자들의 노고가 폄훼돼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주어진 환경과 틀 안에서 그야말로 '리얼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연기자'들이었을 뿐이니까.

결과론적으로 '리얼'의 의미에 대한 방송사와 시청자들의 합의는 더욱 공고해지고 단단해질 것이다. 그 바탕에 '세상의 흔한 진정성'이 기반이 돼야한다고 설파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불륜현장을 급습하는 미국의 <치터스>처럼 선정성으로 승부를 하고 하드코어로 점철돼도 어디까지가 '리얼'이고, 어디까지가 설정인지에 대한 감시의 눈은 더 철저해질 거란 얘기다.

이러한 변화는 아무리 창조적인 설정과 형식이더라도 납득할 만한 토대와 프로그램의 성격에 맞는 시청자와의 약속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는 기본으로 회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워낙 뉴스가 뉴스답지 못하고, 토론이 토론답지 못하며, 개그를 개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대와 방송계 환경을 이해한다고 해도 말이다. 어쩌면 이러한 기본기는 드라마와 함께 TV를 양분하고 그 영향력을 키워온 예능, 그 중에서도 '리얼' 예능의 제작진이 가져가야 할 최소한의 책무였을 수도 있다.

'힐링 팔이'란 화두가 지속되고 있는 2013년, 그런 점에서 예능과 연성화 된 교양의 접목이 또 다른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리얼'의 최전선을 표방했던 <정글의 법칙> 논란은 또 한번 예능 트렌드의 변화를 앞당길 단초를 마련해 줄 사건으로 기록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도 (외국에서 타전된)SNS로 촉발됐다는 것마저도 지극히 동시대성을 담보해낸 사건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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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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