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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번 버스킹 오리엔테이션
 멜번 버스킹 오리엔테이션
ⓒ 고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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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한 시간 반, 비행기를 타고 멜번에 도착한 지도 삼일 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틀간 우리는 버스킹을 할 수 없었다. 버스킹(거리 공연) 허가를 담당하는 멜번 타운홀 부서가 일주일에 단 한 번, 화요일에만 문을 여는 터라 이틀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화요일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화요일 아홉시 반부터 버스킹 심사가 있다는 이야기에 악기를 들고 삼십분 일찍 그 앞으로 갔다.

이미 많은 대기자들이 아홉시 반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글링을 하려는 사람부터 기타나 젬베같은 악기 연주를 하려는 사람까지 다양했다. 정확히 아홉시 반에 문이 열렸고 안내에 따라 위층으로 향했다. 위층에는 버스킹에 관한 오리엔테이션이 준비되어 있었다. 시드니에서 손쉽게 허가를 받은 터라 별 걱정은 없었다. 차라리 얼마나 빨리 될지가 궁금했다.

75데시벨 이상은 거리 공연 허가가 안 된다고?

75데시벨 이상은 허가가 안 된다니?
 75데시벨 이상은 허가가 안 된다니?
ⓒ 고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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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팀의 모습을 떠올리면 평탄한 포장도로보다는 비포장도로에 가깝지 않았던가? 무난하게 해결될 것만 같았던 멜번 버스킹 허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다소 소리가 큰 우리 악기가 멜번 버스킹 규정에 걸려버린 것이다. 멜번 버스킹은 시드니와는 다르게 소리에 제한이 있었다. 75데시벨 이상의 소리는 멜번 버스킹 정책 상, 제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재빨리 인터넷을 뒤졌다. 75데시벨, 우리가 흔히 타는 지하철 내부의 소음이 75데시벨이란다. 이건 뭐, 사물놀이는 굳이 측정해보지 않아도 75데시벨 이상 될 것이 뻔했다. 계속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는 중간에 긴급회의를 열었다.

"어떻게 할래?"
"그냥 포기하고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아…."
"내 생각도 그래…. 75데시벨은 확실히 넘잖아."

긴급회의 결과, 결국 돌아가는 것에 다섯 명의 의견이 모였다. 소리를 자체적으로 줄여서 작게 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일부러 작게 치는 것은 우리가 하려는 우리 음악의 거짓된 모습이라는 생각에 그냥 포기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남은 4일간 공연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 토니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 토니
ⓒ 고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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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오기 전, 대학 동기의 도움으로 멜번이 속한 '빅토리아주 공원'에서 일을 하고 있는 토니라는 분과 연락이 닿았다. 토니는 고맙게도 우리가 거리 공연을 하려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공원에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겠다는 이야기를 이메일을 통해 전해왔다. 이메일로 주고받은 내용이라 아직 확실하지 않았지만, 멜번 시내에서 공연을 하지 못하게 된 이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곳은 오직 토니뿐이었다. 무사 만루 위기에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구원 투수였다.

운 좋게도, 허가를 받지 못한 바로 그날 토니와 처음 만나 함께 멜번 외곽 지역의 한 공원에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타운홀에서 허탕을 치고 나와 약속 장소에서 토니의 차를 타고 공원으로 출발했다. 차 안에서 우리는 토니에게 오늘 멜번 타운홀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억울함을 털어놓았다. 토니는 우리의 억울함에 맞장구를 쳤다. 그 규정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러고선 자신이 멜번 거리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도울 순 없지만 자신이 일하는 공원에서는 마음껏 공연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말을 재차 했다. 당장, 지금 가고 있는 '단데농 공원'에서부터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깜깜했던 눈앞이 그나마 맑아진 것 같았다. 

위기 뒤에 주어진 소중한 공연 그 결과는?

줄을 서서 옷을 갈아입자
 줄을 서서 옷을 갈아입자
ⓒ Tony Varc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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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데농 공원은 우리나라 관광객은 물론, 멜번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자주 찾는 공원으로 유명하다. 도착한 단데농 공원에는 그 유명세에 걸맞게 많은 사람이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또, 우리가 공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멜번에서 사물놀이를 연습하고 있는 한인 한마당 패 분들도 모두 찾아오셨다. 시드니에서 한 버스킹보다 훨~씬 많은 관객이었다. 긴장에 약한 우리, 또 말이 없어진다. 묵묵히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앉아 공연을 준비했다. 그렇게 멜번에서 처음으로, 조용한 공원에서 우리 음악이 울려 퍼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 평화로운 단데농에서의 사물놀이
ⓒ 강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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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길거리는 아니었지만 단데농 공원에서의 멜번 첫 버스킹도 성공적이었다. 공연 중간에 큰 버스에서 단체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내렸는데 하라는 공원 구경은 안 하고 우리에게 몰려들었으니 성공적이라 할 만 했다. 토니가 가져다준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 물은 단데농 공원 입구에서 상점을 하는 아저씨가 우리 공연을 멀찍이 지켜보다 건네준 것이라고 했다. 음악을 통해 말이 아닌 마음으로 통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하는 건가?
 이렇게 하는 건가?
ⓒ 고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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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통한 여운 때문일까? 공연이 끝났는데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우리를 멀뚱멀뚱 쳐다본다. 다시 평상복으로 갈아입는 모습마저 신기한 모양이다. 한 귀여운 꼬마는 장구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이내 장구채를 이용해서 마구 두들겨도 본다. 이 꼬맹이 '흥'을 아는지 두들기는 내내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그렇게 자리를 뜨지 않는 관객들 덕에 공연은 끝났는데 많은 사람이 계속 몰렸다. 공연이 끝난 것이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선 한 번 더 하고 싶었지만 이미 지친 몸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지금까지 버스킹 중에서 가장 많은 관객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었다. 고마웠다. 우리를 위한 공연장이 하나 생긴 것 같은 행복한 기분이었다. 다시 한 번, 이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토니에게 감사의 말을 서툴게 전했다. 아침에 좌절됐던 멜번 거리 버스킹은 말끔하게 잊고 마음과 마음이 만난 행복한 기분만 가득했다.

행복한 기분, 고마워요.
 행복한 기분, 고마워요.
ⓒ 고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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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사랏골 소리사위 26기 상훈, 행문, 동호, 하영, 진실 다섯 명이 사물(꽹과리, 징, 장구, 북)을 들고 호주로 떠난 버스킹 여행 이야기입니다.



태그:#버스킹, #호주, #사물놀이, #길거리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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