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서영이>가 시청률 40%를 훨씬 상회하며 이른바 '국민드라마' 호칭을 얻고 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주인공들을 비롯, 각각의 캐릭터들이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랄 수 있겠다. 많은 드라마들에서는 여러 이유로 캐릭터들이 변형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전체 드라마의 흐름을 깨는 것은 물론, 호불호에 따라 각 인물들을 응원해왔던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 되고 만다.

그런 상황에서 꿋꿋이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내 딸 서영이>의 캐릭터들이 대중의 박수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 중, 매력적인 두 주인공 이서영(이보영 분)과 강우재(이상윤 분)외에 눈여겨볼만한 캐릭터가 둘 있다. 바로 '마초'의 전형을 보여주는 강기범(최정우 분)과 '마마걸'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최호정(최윤영 분)이다.

 MBC 일일시트콤 <스탠바이> 최정우

'마초'의 전형을 보여주는 강기범 역을 맡은 배우 최정우. ⓒ MBC


자신만의 해법 가진 전형적 '마초' 강기범

강기범에게 사업의 성공은 곧 인생의 성공이다. 그에게 가정은 자신을 완성시키는 하나의 조각에 불과하다. 아내든 자식들이든 자신의 인생의 부속품 취급은 예사다. 그는 돈이 부여한 권력과 카리스마에 주변사람들이 휘둘리는 것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에게 자신이 하는 행동들이 주변인들에게 어떠한 유기적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은 관심 밖이다.

그런 강기범에게 하나의 철칙이 있다. 외도를 하는 것은 성공한 사내의 필수조건으로 여기는 사람이지만 '절대 외박은 하지 않는다'는 것. 외도 등으로 아내와 가족들이 받을 상처에는 무감하지만 외박을 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만의 도덕성의 기준을 세운 것이다. 흔히 외도를 하는 사람이 느끼게 된다는 내적 갈등과 죄의식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그것에 있어 다른 사람들의 반론이 끼어들 자리는? 당연히 없다. 그의 독선적 성격을 잘 말해주는 예다.

그는 매사 자신만만하고 모든 결정은 남의 손에 결코 맡기지 않지만,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맘에 들지 않더라도 주저 없이 택하는 유연함도 가지고 있다. 똑똑하지만 고아의 딸로 자신의 집안에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이서영을 아들 강우재의 회사입성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받아들인 것. 

최근의 에피소드에서는 업둥이로만 알고 은근히 홀대해 왔던 막내아들 강성재(이정신 분)가 그의 친아들로 밝혀졌다. 성격대로 그는 아들의 핸드폰에 '미안하다'라는 짤막한 문자를 남긴다. 그것을 일말의 죄책감과 연민의 표시라고 한다면 그것은 강성재가 그의 '핏줄'로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다.

<내 딸 서엉이> 강기범은 막내아들 강성재가 업둥이가 아닌 자신의 핏줄로 밝혀졌음에도 뻔뻔함을 잃지 않는다. 아들과 아내에 대한 보상은 '카드 한도 인상'이다.

▲ <내 딸 서엉이> 강기범은 막내아들 강성재가 업둥이가 아닌 자신의 핏줄로 밝혀졌음에도 뻔뻔함을 잃지 않는다. 아들과 아내에 대한 보상은 '카드 한도 인상'이다. ⓒ KBS


그 일이 있은 후, 그가 막내아들에게 취한 행동은 바로 '카드 한도 인상'이다. 외도 외에 남의 자식을 자신의 아이로 알고 20년을 키워온 아내 차지선(김혜옥 분)에게 베푼 '시혜'도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결국 그것을 별 무리 없이 받아들인다. 캐릭터의 호불호를 떠나 다들 어떻게 이렇게 일관되게 속물적이고 수동적일 수가 있는가.

만일 강성재를 부둥켜안고 미안함을 토로하고, 차지선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는 강기범을 보여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사실 대부분의 드라마에서는 그런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그것이 시청자들의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내는 데 있어 더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딸 서영이>의 강기범은 자신으로 인해 가족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겪었음에도 '현금 보상'으로 '퉁치는' 과감함과 뻔뻔스러움을 택한다.

그러나 그런 그가 간과하는 것이 있다. 그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재력에 무릎 꿇을 뿐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는 사업을 떠나 가정에서는 가족과의 유대를 찾을 수 없는 인물이며, 아내 차지선을 사무치게 외롭다 느끼게 만드는 사람이다. 정서적 유대는 돈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도,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인 것. 자신에게서 돈이라는 방어막이 제거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경제불황 속에서 일찍 정년 아닌 정년을 맞이하는 요즘 풍경을 떠올리면 그건 바로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이다. 바쁘다는 것 등으로 가족과의 연대감 형성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자화상. 바로 그 모습이 드라마 속 강기범에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강기범의 불호령은 그가 가진 재력이 사라지는 순간까지는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11일 오후 서울 반포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KBS2TV주말드라마 <내 딸 서영이>제작발표회에서 최호정 역의 배우 최윤영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주말드라마 <내 딸 서영이>제작발표회 당시. 최호정 역의 배우 최윤영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이정민


남에게 휘둘리는 듯 보이는 최호정, 사실은 뚝심과 저력의 소유자

모든 것을 자신의 손안에서 쥐락펴락 하는 강기범과는 달리  최호정은 그 무엇도 스스로 결정하기를 주저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미국 유학 당시 하프를 버린 후 배운 뜨개질을 제외하면 말이다. 엄마인 김강순(송옥숙 분)의 영향이라고는 하나 나이 26살의 성인의 태도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과연 남의 말에 한없이 휘둘리기만 하는 사람일까?

최호정은 첫 만남에서 이상우(박해진 분)에게 반한 후, 3년의 유학 기간 중에도 그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고, 국내로 돌아와 드디어 결혼에 골인한다. 그는 사랑의 방법도 인터넷을 통해 연구하고, 각종 사랑영화를 섭렵하여 연애기술을 익혀왔다. 노트 한 권에 빼곡히 적힌 비법들은 그의 행동지침서다.

비단 연애기술만이 아니다. 심지어 엄마와의 대화조차도 미리 작성해 놓은 모범답안에 들어맞으면 기뻐하는 그다. 오매불망 꿈에 그리던 사람과 결혼에 성공한 것도 결국은 김미경(박정아 분)과의 갈등을 피하고 누나인 이서영을 위해 행한 이상우의 결단이 아니었으면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러나 최호정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의 결혼임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결혼은 이상우의 결단에 '마지못해' 끌린 것이 아니라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받아들인 것이다. 3년의 유예기간 중에도 이상우를 향한 절절한 일편단심을 보였지만 그와 김미경이 절절히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과감히 포기를 선언했던 그였다.

일부에서는 최호정의 현재 모습을 가리켜 '가부장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로망'일 뿐이라고 말한다.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따르고, 시아버지를 비롯 남편인 이상우를 하늘처럼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강요된 것이 아닌 그의 자발적 선택임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는 어찌 보면 자신의 의지 따위는 없는 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평은 그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그에겐 인터넷의 연애기술 따위는 애초에 필요 없었다. 엄마의 선보라는 강권 따위는 귓등으로 흘려버리는 게 당연하다. 이리저리 휘둘리는 듯 보여도 결국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사람, 그게 바로 최호정이다.

생각해 보면, 그는 이상우를 사랑하는 과정에서도 철저히 자신의 뜻대로 행동했고, 걸림돌이 있으면 잠시 멈추어 기다렸으며, 자신의 연적에게도 애정 어린 충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우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에도 오로지 자신의 사랑만 믿고 결혼을 감행했다. 그리고 지금은 조용히 그의 사랑을 얻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내 딸 서영이> 최호정은 이상우에게 첫 눈에 반한 후, 3년 여의 유학을 마치고서 결국 그와의 결혼에 성공한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알지만, 강요하지 않고 조용히 그의 사랑을 기다리는 중이다.

▲ <내 딸 서영이> 최호정은 이상우에게 첫 눈에 반한 후, 3년 여의 유학을 마치고서 결국 그와의 결혼에 성공한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알지만, 강요하지 않고 조용히 그의 사랑을 기다리는 중이다. ⓒ KBS


캐릭터, 그것이 바로 <내 딸 서영이>를 떠받히는 힘이다

두 사람은 이 드라마에서 극과 극의 캐릭터로 보인다.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하는 사람과 사소한 대화조차 메뉴얼이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 그러나 두 사람의 양 극단은 맞닿아 있다. 고집스럽게 자신들의 뜻을 관철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다만 그 방법에 있어 다른 점이라면 강기범은 돈이 부여한 권력, 최호정은 바보스러울 정도의 우직함이 무기라는 것이다.  

'카드한도 인상'은 재력과 권력의 정점에 서 있음을 자부하는 강기범이라는 캐릭터를 공고히 했다. 이상우와의 결혼은 최호정의 뚝심의 결과물이었다. 그렇게 인물들이 가진 속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쉽게 변하지 않는 그것을 가볍게, 또 때론 묵직하게 풀어내는 것. <내 딸 서영이>가 가진 매력은 바로 그런 점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과 그 주변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 그 변화에 있어 다른 점은 강기범은 다른 사람들로 인해 변해갈 것이고, 최호정은 그 스스로 주변을 변화시키리라는 점이다. 모든 면에서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대개 강력한 카리스마의 인물일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최소한 정서적인 부분만을 고려한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주말 저녁, <내 딸 서영이>의 등장인물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서서히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흔한 기억상실증의 설정 없이도, 강력사건 하나 없어도, 사람냄새 나는 인물들의 부대낌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이 드라마 인기의 원동력이 아닐까.
 11일 오후 서울 반포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KBS2TV주말드라마 <내 딸 서영이>제작발표회에서 유현기 PD, 배우 이상윤, 박해진, 천호진, 이보영, 최윤영, 박정아, 이정신이 다정한 모습으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내 딸 서영이> 제작발표회 당시. 유현기 PD, 배우 이상윤, 박해진, 천호진, 이보영, 최윤영, 박정아, 이정신이 다정한 모습으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이정민



KBS 내딸 서영이 최호정 강기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