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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비판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오마이뉴스>는 최근 유통업계 1위인 신세계 이마트의 인사·노무 관련 내부 자료를 입수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사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힘든 수준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이마트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은 보장돼야 한다. <오마이뉴스>는 이런 문제의식으로 집중기획 '헌법 위의 이마트'를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말]


면담(面談) : 서로 만나서 이야기함 (출처 - 국립국어원)

이 기사를 클릭한 당신은 혹시 이마트에서 일하고 있는가. 혹시 이마트 관리자가 갑자기 면담하자고 하지는 않았는가. 그렇다면 조심하라. 당신은 회사가 보기에 문제(MJ) 사원, 관심(KS) 사원이거나, SOS 대상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당신 주변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마트에서 면담은 단순히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수준이 아니다. 이마트가 모은 직원들의 사찰 수준의 정보는 가족(KJ) 사원의 밀착 감시와 함께 면담을 통해 수집됐다.(관련기사 : 회사가 당신의 여자친구를 들여다본다면?) 이마트의 인력 퇴출 프로그램 SOS가 최종적으로 대상자를 퇴직시키는 수단도 바로 면담이다.(관련기사 : "어차피 정리..." 거부할 수 없는 퇴사강요)

대체 면담을 어떻게 하길래, 이런 일이 가능할까? 지금부터 이마트의 면담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면담 : 핵심 주동자 파악의 과정

전수찬 이마트 노조 위원장은 "회사에서 나에 대한 동향보고를 하는 것은 알았지만, 나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면서 "회사가 이정도로 사원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고 말했다.
 전수찬 이마트 노조 위원장은 "회사에서 나에 대한 동향보고를 하는 것은 알았지만, 나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면서 "회사가 이정도로 사원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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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지난 18일 보도한 '복수노조 관련 참고 Solution(해결방안)' 문건의 4장에는 '효과적인 면담 매뉴얼'이 수록되어 있다. 신세계 그룹에서 작성한 이 문건은 이마트 사태가 그룹 차원에서 계획됐다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관련기사 : 이마트 사찰, 신세계 그룹 차원에서 계획) 여기를 보면 신세계 그룹과 이마트가 면담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자세히 알 수 있다.

우선, 면담을 하는 목적부터 명확하다. 회사 차원에서는 ▲노사문제 발생 원인 확인 ▲핵심 주동자 파악이고, 피면담자 차원에서는 ▲회사의 경영철학에 대한 명확한 인지 ▲동조/가담에 따른 불이익에 대한 인지라고 적시되어 있다. 여기서 '회사의 경영철학'이란 무노조 경영을 의미한다.

면담 장소는 "주변과 차단된 회의실 등의 공간"을 사용하되, "피면담자가 출입문, 창문 등을 등지고 앉도록 위치"하라고 했다. 또 "제3의 장소에서 면담과정을 볼 수 있으면 좋음"이라고 덧붙였다. 매뉴얼은 피면담자에게 "면담 내용에 대한 익명성 보장에 관한 신뢰를 심을 것"이라고 하고 있지만, 면담 과정을 다른 곳에서 제3자가 볼 수 있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면담보다는 수사에 가깝다.

면담 시간은 근무시간 중 실시를 원칙으로 한다. 면담도 업무의 일환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면담자도 아무나 하지 말라고 되어 있다. 공식적으로는 "피면담자가 신뢰할 수 있는 관리자 또는 간부"가 진행하거나, 비공식적으로는 "피면담자와 교류가 충분한" 사람이 진행하라고 밝혔다. "가족, 옛 동료 등 외부인력을 일차 면담 후 필요시 면담자로도 선정 활용"하라고 권유하기로 했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본격적인 면담 매뉴얼로 들어가보자.

면담 초반 : "들어오는 순간부터 표정과 행동거지 관찰"

면담은 피면담자인 직원이 면담 장소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효과적인 면담과정 예시'를 보면 첫줄부터 "들어오는 순간부터 표정과 행동거지 관찰 → 심리적 상태 확인"이라고 되어 있다. 우선 앉을 것을 권하고 음료수를 제공한 후에 "피면담자가 많은 말을 하도록 개방형 질문을 실시"한다. 어색함을 깨는 단계(Ice Break)다.

이후 면담을 실시하는 배경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되 "노사문제를 직접 언급하는 것은 회피"하고, 현장의 분위기나 다른 사원들이 느끼는 고충과 불만 등에 대해 묻는다. 문건은 이를 "주변부터 시작해 핵심으로 접근한다"고 밝혔다.

이제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본격적인 면담을 실시하는데, "모르겠다 or 없다는 식의 답변을 할 경우 NJ(노조)가 제기했거나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문제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질문"하라고 되어있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 현장의 정서를 알아야 밝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여사님뿐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 듣자하니 근속이 오래된 분들과 새로 들어온 분 시급 차이에 대해 말들이 있는 것 같던데 주로 어떤 말들이 나오는지요?

그래도 지속적으로 답변을 거부할 경우 예시된 문장은 다음과 같다.

-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현장과 회사의 눈높이를 맞춰나가는 것이 관리자인 저의 역할입니다.
- 다른 사람이나 외부인이 아닌 우리의 노력으로 만들어야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NJ(노조)는 우리가 아닌 외부라는 구분의식 시사"다.

면담 중반 : "갈등을 피하지 말고 공세적으로 돌파한다"

면담은 계속된다. "피면담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NJ(노조)식 의도된 갈등 유발 질문을 할 경우 장황한 설명 내지 설득조의 답변은 피할 것"이라며 "갈등을 피하지 말고 공세적으로 돌파"하라고 조언했다.

- 왜 갑자기 면담을 하시죠?
→ 왜 면담을 한다고 생각하십시까?
→ 부서장이 사원을 면담하는데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나요?

이 기간 내내 피면담자의 행동언어를 관찰해 심리상태를 분석하라고 매뉴얼은 조언했다.

매뉴얼은 직원이 사실에 관한 문제제기 내지 지적을 할 경우 수용하되 "I agree가 아닌 I see 메시지를 전달"하고 "역지사지 관점 제시, 동병상련 입장 전달"하라고 적었다. 또한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나 지적을 했을 경우 "제가 확인을 하고 다음에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등 답변을 유보하라고 밝혔다.

면담 후반 : "순간의 착오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지 말 것"

어느덧 면담의 후반부다. 매뉴얼은 "신뢰와 공감대를 유지하면서 면담을 마무리"하라고 했다. 그리고 회사는 사원들을 위한 개선을 실행중이고 계속할 것이라는 점을 밝히라고 했다. "최초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을 했고",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을 했고" 등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NJ(노조)와 무관하게 개선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제 마무리 시간. 이 때가 제일 중요하다. 매뉴얼은 "회사를 믿고 함께하는 사원은 반드시 보호한다, 그러나 이를 거부하면 함께 갈 수가 없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하라고 밝혔다. "순간의 착오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지 말 것을 안내"하라는 것이다. 예시된 문장은 다음과 같다.

- 사원과 회사는 동반자입니다.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한 방향으로 함께 의지하고 격려해 나가는 동반자입니다.
- 누구도 우리를 대신할 수 없어, 집안 문제는 가족끼리 해결할 때 후유증도 없고, 가장 바람직하게 해결되는 것입니다.
- 회사는 지금 이 순간 이전까지 상황은 묻지 않겠지만 기회를 부여했음에도 다른 선택을 한다면 그에 상응한 분명한 조치를 할 것입니다.

매뉴얼은 면담을 정리하는 마지막 예시 문장으로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대가를 치를만한 가치가 있는지 현명하게 판단하길 바랍니다"를 적어놓았다.

면담 정리 : 당신은 몇 등급을 받겠는가

면담은 끝났다. 직원은 면담 장소를 나가겠지만, 면담자는 면담 결과를 정리할 것이다. 직원의 주요 관심사항이나 의견 제시 등을 직원 표현 그대로로 기술하고(면담 주요내용), 특정질문에 대한 표현, 손, 목소리 변화 등을 적은 후(행동언어 및 특이사항), 면담자의 입장에서 "직감적으로 느끼거나 추정되는 사실"을 적는다(면담자 의견). 마지막으로 "면담 결과 면담자 입장에서 피면담자의 감염정도"에 따라 A-B-C-D-S 중 한 등급을 부여한다.

A급 : 주동세력
B급 : 비주류로 가입됐을 것으로 추정
C급 : 불분명하나 NJ(노조)에 대해 긍정적
D급 : 현 상황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행동
S급 : 외부에 의한 문제발생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음

자, 당신이 만약 신세계 그룹에서 면담을 겪게 된다면 견딜 자신이 있는가. 당신이 면담을 받고 나오는 과연 몇 등급을 받겠는가.

아래는 신세계 그룹에서 작성한 '효과적인 면담과정 예시' 전체 흐름도다.




태그:#이마트, #헌법 위의 이마트,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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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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