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비판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오마이뉴스>는 최근 유통업계 1위인 신세계 이마트의 인사·노무 관련 내부 자료를 입수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사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힘든 수준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이마트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은 보장돼야 한다. <오마이뉴스>는 이런 문제의식으로 집중기획 '헌법 위의 이마트'를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말]


이마트의 인력 퇴출프로그램 SOS(Strategic Outplacement Service·전략적 전직 서비스)는 어떤 식으로 진행됐을까?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이마트의 내부 문서에는 SOS 시행 계획뿐 아니라 대상자 선정 과정과 퇴직서 작성 상황, 최종 결과까지 자세히 나와 있었다.

매년 40~50명가량의 직원을 퇴출시키는 작업이지만, 대상자 명단 작성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이뤄졌다. 2012년 SOS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마트의 본사와 각 권역별 인사담당자들이 주고받은 몇 통의 이메일로 퇴출 대상이 선정됐음을 알 수 있다.

대상자 선정하는 몇 통의 이메일... O-△-×로 운명 갈리다

이마트 본사 직원이 인력퇴출프로그램 SOS의 명단 작성을 각 권역별 담당자에게 지시하는 이메일.
 이마트 본사 직원이 인력퇴출프로그램 SOS의 명단 작성을 각 권역별 담당자에게 지시하는 이메일.
ⓒ 최지용

관련사진보기


2012년 1월 27일(금) 오후 1시 34분 본사 인사기획팀의 고아무개 과장은 각 권역의 기업문화팀 인사담당자에게 2회 이상 진급누락자 169명의 명단을 발송했다. 이 가운데 담당자가 해당하는 지역의 SOS 대상자를 선정해 보고하라는 것이다. 고 과장은 "예상 SOS 대상자에 대한 시나리오를 사전 작성하려고 한다"며 한 시간 후인 2시 30분까지 답변을 요청했다.

"첨부는 2회 이상 누락자(공통직)입니다. 이에 따라, 예상 SOS 대상자에 대한 시나리오를 사전 작성하려고 합니다. 첨부의 양식에 승격예상자면 O, 애매하거나 모호하면 △, SOS(누락) 예상자면 ×로 표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될 수 있으면, 애매모호는(△) 사양합니다. 빠른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금일 14시30분까지입니다."

여기에 각 담당자들이 답장을 보냈다. 이메일 첨부파일에는 고 과장이 보낸 파일에 자기 권역의 대상자들을 O, △, ×로 표기해 다시 발송한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각 권역별 담당자의 답장은 같은 날 오후 1시 40분부터 주말이 지나고 난 후인 30일 오전까지 접수돼 있다.

같은 날 본사 인사기획팀 고 과장은 보고되지 않은 일부 권역을 제외하고 취합된 명단을 종합해 기업문화팀 임아무개 팀장에게 발송했다. 최초 169명의 대상자 가운데 92명의 이름이 들어간 이 명단에는 '×'가 19명, '△'가 17명으로 집계돼 있었다.

예상자 → 대상자 → 퇴사자... 한 달도 안 걸려

이마트 SOS 진행 실적. 2011년 2월 14일 SOS 대상자 명단이 작성되고 3월 9일까지 단 한명을 제외한 전원이 퇴사했음을 보여주는 자료. 최종적으로는 나머지 한 명까지 모두 퇴사했다.
 이마트 SOS 진행 실적. 2011년 2월 14일 SOS 대상자 명단이 작성되고 3월 9일까지 단 한명을 제외한 전원이 퇴사했음을 보여주는 자료. 최종적으로는 나머지 한 명까지 모두 퇴사했다.
ⓒ 이은영

관련사진보기


이런 과정을 통해 작성된 SOS 명단은 각 권역별 담당자가 면담을 통해 퇴직서를 받는 과정을 거쳤다. 총 42명이 SOS로 퇴사한 2011년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마트 내부 문서 가운데 2011년 2월 14일 작성된 '2011년도 SOS 예상자(권역별)'에는 직원 56명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아직은 예상자 상태. 이 가운데 최종적으로 SOS 명단에 오른 사람은 42명이었다. 같은 해 3월 3일 작성된 'SOS 일정'이라는 또 다른 문서에는 42명을 대상으로 각 권역담당자가 누굴 만날 예정인지 상세히 나타나 있었다. 담당자들이 면담을 통해 직접 퇴직원을 받는 것이다. 이 문서에서 이미 퇴직원을 작성한 인원은 28명이었다.

엿새 후인 3월 9일 작성된 'SOS 진행실적'이라는 문서에는 총 41명이 '실적'으로 올라와 있었다. 며칠 만에 대상자 대부분이 퇴사한 것이다. 예상자 선정(2월 14일)부터 한 명을 제외하고 퇴사 작업이 거의 마무리 되기까지(3월 9일)는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나머지 한 명도 결국 회사를 떠났다.

회사에서 면담 때 하는 말 "어차피 정리해야 하는데..."

SOS 진행 과정 중에 면담 내용. SOS 대상자인 A팀장의 퇴사가 기정사실화 돼 있다.
 SOS 진행 과정 중에 면담 내용. SOS 대상자인 A팀장의 퇴사가 기정사실화 돼 있다.
ⓒ 최지용

관련사진보기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다른 내부 자료는 이마트가 SOS 대상자들과 면담 때 어떤 방식으로 퇴사를 유도하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2012년 SOS 대상자에 오른 H팀장. 그는 앞서 취합된 2012년 SOS 예상자 명단에서 '△'로 분류돼 있었다. 그는 2011년 상반기 인사고과에서 C, 하반기에 A를 받았지만 결국 퇴출 대상에 올랐다. 직급상 과장(S)에 해당하는 그와의 면담은 2012년 2월 3일 오전 본사에서 조아무개 수석이 진행했다. 그날 보고 메일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조 수석 "보안업체 새로 생기는 데가 있는데, 그쪽에서 근무해 볼 생각 있는가? 어차피 올해 승격이 안 될 거고 그러면 정리를 해야 하는데, 그쪽에서 근무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는가?"
H 팀장 "고민해 보고 다음 주 월요일까지 답변을 주겠다. 그리고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았는데, 22일에 갑상선 수술을 한다."

조 수석의 "올해 승격이 안 될 거고 그러면 정리해야 한다"는 말은 H 팀장의 퇴사가 기정사실화 돼 있음을 의미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 권영국 변호사는 "법망을 피하려고 하는 교묘한 방법"이라며 "본인이 해고를 당한다고 하면 당사자는 큰 저항감이 생기는데, 다른 직장을 추천하며 그 저항감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퇴사를 결정해놓고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외형을 만든다는 것이다.

권 변호사는 "회사가 이미 그만둬야 한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표현했는데, 당사자는 더 다닐 수가 없다"며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것에 대한 저항감을 포기하게 만드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다른 직장을 추천했다는 것과 퇴사를 해야만 한다고 하는 건 다른 문제"라며 "승격이 안 됐다고 직원을 내보낼 수 있다면 회사가 해고의 자유권을 가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태그:#이마트, #신세계, #SOS, #정용진, #퇴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