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보고싶다>(극본 문희정·연출 이재동) 가 막을 내렸다. 21회까지 <보고싶다>는 촛점이 잘못 잡힌 사진 같았다. 어린 시절 아련한 첫사랑에 '낚인' 시청자들은 주인공 두 사람에 포커스가 집중된 멜로를 기다렸지만, 정작 <보고싶다>는 마지막까지 '가족 복수극'이었다.

도대체 이수연(윤은혜 분)은 왜 강상득을 찾아갔으며, 찾아가서 만나기는 했는지 등등 1회 이래 줄곧 던진 무수한 설정들에 대한 합리적이거나 명확한 설명도 결국은 없었다. 제작진은 마지막 회까지 하고픈 이야기만, 그것도 돌림 노래처럼 해 댔다. '한태준(한진희 분)은 나빠, 강형준(유승호 분)은 불쌍해'.

그래도 <보고싶다>를 그래도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이 와중에도 빛이 난 배우들의 열연이었다. 박유천·윤은혜·유승호, 이 세 사람 모두 그 이름 뒤에 거추장스러운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박유천과 윤은혜에겐 '아이돌 출신'이라는, 유승호에게는 '아역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그런데 이들이 제작사·작가·감독, 심지어 촬영에 편집까지도 총체적 난국이었던 드라마를 오로지 자신들의 연기만으로 메꾸어 냈다.

유승호·윤은혜·박유천, 이제 꼬리표를 뗄 때가 됐다

 MBC <보고싶다> 포스터

MBC <보고싶다> 포스터 ⓒ MBC


아직은 앳된 소년의 모습이 남아있는 유승호는 오히려 그것을 12살 아이의 상태로 정체된 강형준의 모습으로 드러내었다. 성인과 청소년의 경계선에 있는 유승호란 배우의 애매함이 강형준이란 캐릭터를 통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마지막을 향해 갈수록 서늘하면서도 때로는 광폭한 정신이상자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꽃미남 스타 이상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 로맨틱 코미디 물에서만 대접받아왔던 윤은혜가 멜로나 스릴러 장르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일 수 있는 배우라는 걸 스스로 증명해낸 것은 배우 한 사람의 성장 이상을 의미했다. 동시에 '20대 여배우'의 기근 현상을 보이는 드라마계에서는 반가운 신호였다. 비록 <보고싶다>는 이수연에 대한 배려를 다하지 못했지만, 한 순간 한 장면 속에서 윤은혜가 문득 문득 드러낸 아우라는 시청자가 그를 응원케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무엇보다 <보고싶다>를 보고싶게 만든 것은 바로 박유천이 연기한 '미친 토끼' 한정우 였다. 문희정 작가의 작품은 속 남주인공들은 언제나 한결같이 서글서글하고 솔직담백했다. 그런데도 한정우는 특별하다. 마치 지금이라도 강남 경찰서를 찾아가면 길길이 날뛰며 범죄자를 취조하다, 행여 집에서 전화라도 오면 바람 소리 나게 달려가 버리는 그를 만날 것만 같다. 복수극으로 한껏 늘어지던 드라마에 한정우가 등장하면 생기가 돌았고, 그의 눈빛 사이로 스쳐지나가는 외로움과 연민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불과 몇 달 전 조선에서 온 꽃같은 왕세자를 연기하던 같은 배우가 맞나 싶다. 한참 멋지고 잘나 보이고 싶은 20대의 배우인데도 짧은 머리에, 민낯에 가까운 날 것의 얼굴에 터진 입술에, 그대로 드러난 뺨의 흉터까지, 14년을 오로지 한 소녀만을 기다리며 처절하게 버텨왔으며 불의만 보면 터져버리고 마는 한정우란 남자를 고스란히 표현해냈다.

그저 그런 복수극이었지만, <보고싶다>를 기억하고 싶은 이유

 MBC <보고싶다> 박유천

MBC <보고싶다> 박유천 ⓒ MBC


결국 그저 그런 복수극이었음에도, <보고싶다>가 기억하고픈 드라마가 된 것은 자신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애쓰며 사는 '제대로 된 어른'이 되고자 하는 한정우의 발버둥이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또 작가가 써주고, 연출자가 디렉팅하는 행간을 뛰어넘어 배우 자신이 메꾸어낸 세 사람의 연기가 공감을 끌어냈기 때문이었다.

특히 박유천은 몇 사람을 합쳐 놓은 듯 이수연의 어머니를 만나면 온갖 애교를 떨다가, 돌아서면 쓸쓸함이 스치는가 하면, 아버지를 맞서 절규하거나, 이수연 앞에만 서면 한없이 순정남이 되어버리는 여러 얼굴의 한정우를 전혀 이물감없이 소화했다. 이런 박유천에게 이제 '아이돌 출신'이란 꼬리표는 마치 웃자란 아이에게 여전히 입혀 놓은 어린 시절의 옷과도 같다. 이젠 서슴없이 배우 박유천이라 불러주자. 배우 박유천의 다음 작품이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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