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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되돌아가고 있는 고향은> 표지
 <날마다 되돌아가고 있는 고향은> 표지
ⓒ 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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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가르는
맑은 바람과 청결한 생수를 뿜는
숲이고 벌판인
흙사람들이 사는 곳
봄엔 진달래 되고 여름엔 목백일홍 되고
가을엔 국화 되고 겨울엔 동백 되고
밤엔 등불 되고 낮엔 햇빛 되는
흙사람들이 노래하는 곳
어리고 병든 목숨에겐 어미가 되어주고
약하고 힘없는 생명에겐 아비가 되어주는
흙사람들 춤추는 곳
- 14쪽 <날마다 되돌아가고 있는 고향은> 몇 토막

내가 꿈꾸는 나라, 내 혼이 담긴 고향은 어떤 곳일까. 그대가 살고 싶은 나라, 꿈에도 사무치게 만드는 고향은 어떤 빛깔일까. 이 시가 읊조리는 것처럼 "봄엔 진달래 되고 여름엔 목백일홍 되고/ 가을엔 국화 되고 겨울엔 동백 되고/ 밤엔 등불 되고 낮엔 햇빛 되는", 그런 아무런 어긋남 없이 스스럼없이 흘러가는 그런 세상일까.  

시인 차옥혜가 지난해 12월 허리춤께 펴낸 열 번째 시집 <날마다 되돌아가고 있는 고향은>(시문학사)을 꺼내 읽는다. 이 시집을 뒤적이고 있으면 사람과 대자연, 대자연과 사람 사이에 놓인 키보드가 무엇인지, 그 키보드를 어떻게 두드려야 이 세상이 엇박자를 치지 않고 곱고 아름다운 음표로 날아오를 수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 시집은 모두 4부에 77편이 지구촌 곳곳에서 살아가는 삼라만상이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고 있는 갈등과 평화 그 속내를 들춘다. 그뿐이 아니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우리 사회가 위태로운 벼랑처럼 끌어안고 있는 돈이 지닌 탐욕과 원자력발전소 같은 모순덩어리까지 하나하나 까발리고 있다.

<서리꽃> <겨울 나그네의 꿈> <빙하꽃> <서리태 글자로 쓴 시가 얼어죽었다> <동물들에게 두 손 모아 절한다> <비속에서도 밥상을 차려대는 참나리꽃> <우포늪> <어느 마사이족 부부의 밤> <초식동물이 번성하는 까닭> <군고구마> <문> <여름 바이칼호수> <빙하나물> <록키산맥의 오월> <그 겨울 새벽 어머니의 맨가슴> <어느 종유석의 그리움> 등이 그 시편들.

시인 차옥혜는 '시인의 말'에서 "10번째 시집을 낸다. 감회가 새롭다. 그동안 서사시 한 권을 빼고 9권의 시집에 648편의 시를 담았다"고 되짚는다. 시인이 새삼 스스로 쓴 시를 차분히 되돌아보는 까닭은 무엇일까. "몇 편이나 독자들의 마음을 울렸을까?", 앞으로 울릴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자 갑자기 마음이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래도 애써 마음을 다그친다. "한용운, 윤동주 시인들은 한 권의 시집만으로도 영원하시"고, 시인에게 있어서 "아직도 시는 '부르다가 내가 죽을' 깊고 먼 그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오늘도 나는 한 편의 좋은 시를 찾아서 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시의 길에 안개처럼 몰려오는 삶의 울음소리들을" 시인이 쓰는 시가 품을 때까지.

동물과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살던 초원을 사람들에게 빼앗긴
인도의 엄마 코끼리와 아들 코끼리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 도시에 나타나
달리는 차를 쫓아가 들이받고
집을 부수기도 하더니
달아나는 사람을 밟아 죽이거나 다치게 하다가
생포되었다

붙잡힌 코끼리 모자가
긴 코를 하늘로 쳐들고
소리치며 울고 있다
- 50쪽, <성난 코끼리 모자> 모두

글쓴이는 TV를 켜면 '동물의 왕국'이나 여러 동물들 세계를 다룬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여러 동물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 죽이고, 서로 죽임을 당하는 여러 가지 모습을 바라보면서 동물과 자연, 동물과 사람, 자연과 사람 그 사이에 거미줄처럼 얽힌 속내를 되짚어보기 위해서다.

시인 차옥혜는 글쓴이와는 다르게 직접 몸으로 뛴다. 시인은 지구촌 곳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동물과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는다. 시인이 찾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은 사람이다. 사람이 동물들이 살아가는 자연을 자꾸만 빼앗고 있기 때문에 동물과 자연도 살기 위해 사람에게 대든다는 것이다. 

시인은 "지구가 하나의 나라가 되고/ 세계 나라들이 자치 도시가 되어/ 지구 굶어 죽는 어린이 없고/ 지구 어디서나 맑은 물 먹을 수 있고/ 지구 병든 사람들 무료로 치료받고/ 어떤 종교든 서로 축복하고/ 신을 믿거나 안 믿거나 서로 존중하며/ 지구의 모든 무기 묻어버리고/ 사랑이 넘치는 지구나라"(<겨울 나그네의 꿈>)를 꿈꾼다.

여름을 맞이한 시베리아 자작나무숲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혼자였으면 벌써 얼어 죽었을 것을 함께여서 서로서로 언 뿌리 붙들어주고 녹여"(<시베리아 여름 자작나무 숲>)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시인은 "체!/ 상대를 쓰러뜨려야 박수를 받는/ 세상"(<소싸움>)이 몹시 싫다. "여름내 비가 너무 자주 와/ 가을이 되고도 여물지 못한 서리태 글자"(<서리태 글자로 쓴 시가 얼어죽었다>)가 너무 안타깝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유출로/ 30km 떨어진 농장에서/ 어미 토끼가 방사능에 오염된 풀을 먹"(<귀가 없는 토끼>)고 태어난 귀 없는 토끼가 씹는 풀은 "억장이 무너져서" 노여움을 씹는 것으로 비쳐진다. 시인은 그런 세상이 몸서리나게 싫다. 그저 "두 손에 꼭 쥐어지는/ 작은 부싯돌 두 개 있어/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숭늉을 끓이고/ 언 몸을 녹일 불을 지필 수 있으면 족"(<작은 부싯돌 둘이면>)하다.   

그래. 글쓴이도 그런 세상을 꿈꾼다. 문제는 가진 게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이 세상살이가 글쓴이를 그냥 놓아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누군가는 욕심을 버리면 된다고 하지만 글쓴이도 시인처럼 먹고살기 위해 "작은 부싯돌 두 개"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작은 부싯돌 두 개 갖는 것도 욕심이라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사람이 희망이라고 울면서 다시 쓴다

세상의 화덕에서
겉 타고 속 타
화가 솟구치는 몸

덴 마음
온몸의 화상
겨울바람도
어쩌지 못하는구나
- 63쪽 <군고구마> 모두

시인 차옥혜는 인도나 시베리아 같은 먼 곳에서 살고 있는 동식물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은 그렇게 대자연을 마구 무너뜨리는, 잘난(?) 사람들만 사는 곳이 아니라 거칠고 모진 삶에 데여 쓰라린 화상을 입은 사람들도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 화상도 동물과 자연이 입은 깊은 상처처럼 패인 골이 너무 깊다.  

시인은 가난하지만 너무 착해 화상을 입은 사람들을 군고구마에 빗댄다. "세상의 화덕에서/ 겉 타고 속 타"는 이 세상살이가 "덴 마음/ 온몸의 화상"을 입고 있는 군고구마를 닮았다는 것이다. 군고구마처럼 몸과 마음마저 새까맣게 타버린 그 깊은 상처는 겨울바람뿐만 아니라 그 어떤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아물게 할 수 없다.

시인은 화상 입은 사람들에게 가만가만 속삭인다. "절망하지 마라 슬퍼하지 마라/ 꿈과 희망은/ 부대끼고 흔들리며 매 맞고/ 놀라고 쥐나며 젖는/ 아픈 세상 뒤에 있다"고. 군고구마이기에 앞서 생고구마였던 "네 몸이 그리 선명한 자주색"이었던 것도 흙속에서 "마음을 갈고 닦아/ 꿈꾸고 기도했"(<고구마를 캐며>기 때문이었다고.

시인이 "사람이 절망이다/ 써놓았던 말 다시 지우고/ 사람이 희망이라고/ 울면서 다시" 쓰는 것도 "칠레 산호세 광산 매몰 광부 33명이/ 지하 700m 땅속에서 구조캡슐을 타고/ 한 명씩 지상으로 나와/ 69일 만에 생환한 날"(<다시 사람이 희망이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무리 칼바람과 눈보라가 이 세상을 꽁꽁 얼려도 곧 봄이 다가온다는 희망 때문에 가까스로 이겨낼 수 있지 않겠는가.

너는 내 눈물 먹고
동굴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종유석
나는 동굴 천장에서 울어 길어나는 종유석
나는 너에게로 너는 나에게로
그리움을 태우며 가고 있는지 몇 천 년
어둠을 뚫으며 얼마를 더 견뎌야
나와 나 타는 살 섞을 수 있을 거나
그래도 어느 날엔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될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 있으니
이 세상에서 가장 더니 걸음일지라도
오너라 멈추지 말고 나에게로
가마 멈추지 않고 너에게로
- 107쪽 <어느 종유석의 그리움> 모두    

시인 차옥혜는 열 번째 시집 <날마다 되돌아가고 있는 고향은>에서 사람과 동물과 자연이 지구촌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 그 세상에는 "지구의 마음이 깃들어 있"고, "우주의 마음이 깃들어 있"고, "허공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사람들 몸에 "뼈, 살, 오장육부, 피"가 있고, "온갖 균들이 살고" 있고, "내 마음이 깃들어"(<몸과 마음>) 있는 것처럼 그렇게.  

시인 차옥혜는
시인 차옥혜
 시인 차옥혜
ⓒ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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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차옥혜는 1945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여고를 졸업한 뒤, 경희대학교 영문과와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4년 '겨울나무'와 '여인'으로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깊고 먼 그 이름> <비로 오는 그 사람> <발 아래 있는 하늘> <흙바람 속으로> <아름다운 독> <위험한 향나무를 버릴 수 없다> <허공에서 싹트다> <식물 글자로 시를 쓴다>가 있다. 서사시집으로 <바람 바람꽃>, 시선집으로 <연기 오르는 마을에서>를 펴냈다. 1997년 경희문학상 받음.

덧붙이는 글 | * <날마다 되돌아가고 있는 고향은> 차옥혜 씀, 시문학사 펴냄, 2012년 12월, 140쪽, 7000원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날마다 되돌아가고 있는 고향은

차옥혜 지음, 시문학사(2012)


태그:#시인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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