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람이 죽는 순간이 언제라고 생각하나?… 바로 잊혀질 때야!" - 일본만화 <원피스> 중

사람은 단순히 먹고 자는 것만 충족되면 만족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의 의미를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더 다양하고 폭넓은 인맥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고, 소수와 깊은 인간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최근 다양한 인간관계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매개체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 바로 SNS, 즉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아닐까 한다.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물론, 그보다 더욱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은 시대가 흐르며 펜팔-이메일-메신저-미니홈피를 거쳐 트위터나 페이스북같은 공간의 탄생을 낳은 셈이다.

이제 누구든 자신만의 계정을 만들고, 국경과 나이, 계층을 뛰어넘어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몇 번의 마우스 클릭이면 가능한 간편함을 동반했기에, 일부에서는 그 관계의 가벼움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건 매개체의 문제라기보다 마인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만나더라도, 상대방을 가볍게 보는 사람이라면 결국 마찬가지인 것이다.

또한, 관계는 '첫맺음' 뿐 아니라 유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만화의 대사처럼, 사람은 잊혀지지 않고 항상 누군가로부터 기억되고 회자되길 원한다. 아니, 그보다는 그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끊임없이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 혹은 걸으면서도 계속하여 SNS의 타임라인을 주시하고, 카카오톡의 메시지 수신여부를 확인하려 한다.

만약, 어느날 당신에게서 스마트폰이 사라진다면?

다양한 스마트폰들
 다양한 스마트폰들
ⓒ 김시연

관련사진보기


이것은 나의 이야기다. 너무나 찌질하고 비참하여 지인들에게조차 이야기하길 꺼리던, 스마트폰없이 지낸 나의 지난 3개월을 회상해 써보고자 한다. 2012년 나는 동업의 실패로 생긴 빚에 이어 학자금대출 연체이자가 폭탄이 되어 돌아와 '통장잔고 1만 원' 상태까지 갔던 적이 있었다. <관련기사 : "휴학하려면 등록금 내라"... 돈없어 휴학하는데도?>

선택해야만 했다. 매달 빚을 갚느라 넉넉하지 못한 경제적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식주의 해결이었다. 그 중 의복은 새로운 구매를 할 필요없이 가지고 있는 옷을 계속해서 입으면 되니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라면, 먹고 자는 일이었다.

서울에 홀몸으로 상경해서 지내온 나는, 불과 1년전까지만 해도 저렴한 가격에 기숙사가 제공되는 보안업체에서 근무했었기에 주거문제를 크게 걱정하지 않았었다. 문제는 그 뒤, 퇴사하고 학자금대출 연체이자 때문에 통장잔고가 바닥난 이후였다.

고시원 방값 23만 원을 매달 마련해야 했고, 매일 먹는 밥값 또한 문제였다. 당장 한달을 버틸 돈조차 없었기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월급날까지 기다릴 수 없어 불가능했다. 결국, 일용직 노동자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스마트폰 요금을 매달 5만 원 안팎으로 내야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실 매일 끼니를 라면으로 때우는 현실에서 SNS를 위한 스마트폰 사용은 사치였다. 하지만, 정신이 없던 당시에는 피쳐폰으로 바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요금은 계속해서 연체되고 말았다.

[1단계 발신제한] 교통카드로 전화도 할 수 있었구나

요금이 두 달 연체되자, 핸드폰의 발신기능이 정지되었다.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낼 수 없게 된 것이다. 당연히 데이터 사용도 정지되었기에, 핸드폰을 통한 SNS 사용도 불가능해졌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걸려오는 전화와 문자메시지는 받아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페이스북, 트위터에 접속하는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만 주위에선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나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왜?'라는 질문에 솔직하게 내 사정을 말하기가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아주 친한 소수에게만 사실을 털어놓고, 그 외의 지인들에게는 "당분간 전화사정이 안 좋다"고만 두리뭉실하게 말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불편한 것은 나 자신이다. 다른 사람들은 연락을 '요구'할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상황을 설명하기도 복잡하고 창피할 뿐더러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자연스레, 지인들과의 연락을 위해 공중전화와 다시 친해지기 시작한다.

공중전화? 길거리에 가로등처럼, 풍경으로서 놓여있던 그거? 맞다. 나는 대중교통 이용시 쓰던 교통카드가 이제 공중전화에서도 쓸 수 있음을 이제서야 알았다. 그 전까지는 공중전화를 자세히 쳐다보는 일조차 드물었다.

이제는 공중전화로 통화하면서, '딸깍'하고 잔액이 줄어드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을 졸이는 신세가 되었다. 핸드폰을 사용할 적엔 상상도 못할, 십수 년째 잊고 살았던 일이다. 혹시나 모르니 항상 주머니에 여분의 동전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이 때 생긴 습관이다.

[2단계 수신제한] 전화 받을 수 없어 더 어려워진 구직

발신이 제한된 그 다음 달에도 요금을 내지 못했다. 몸이 아파서 며칠 일을 나가지 못했더니, 그 사이에 다른 사람을 구했다는 대답을 들었다. 언제나 누구로든 대체될 수 있는 일용직이니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전화기는 수신까지 제한이 되어서 먹통이 되었다. 이제 내 스마트폰은 시계, 그리고 음악재생기능 외엔 다른 쓸모가 없어졌다. 당시엔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문제는, 전화가 사라지니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어졌다는 거였다. 수신이라도 되던 때에는, 알바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제출하고 전화를 기다릴 수가 있었다. 이제는, 전화가 걸려오더라도 받지 못한다. 영화 <터미널>에서 주인공 톰 행크스는 공항 안의 공중전화 앞에서 채용공고를 기다리는 장면이 나오지만, 내게 그건 불가능했다.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현장에서 바로 채용가능한 일자리를 찾아 뛰어다녔다. 당연히 단순한 육체노동이다. 막노동을 폄하할 생각은 결코 없다. 다만, 몇 달간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서 하루에 한끼를 먹고살던 나에겐 버거운 일이었다.

결국, 며칠 일하고 며칠 쉬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통장잔고는 늘어날 생각이 없었고, 그러다보니 난 하루 한끼 라면 등을 먹는 부실한 식단으로 살았다. 그러다보니 더 자주 아프고, 일은 매일 나가지 못했다. 악순환이었다.

[3단계 망각] SNS에선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3개월 가까이 유무선 연락을 거의 못하고 살았다. SNS에선 지인들이 나를 잊어갔다. 컴퓨터를 통해 뜸하게 접속해본 SNS 공간에서는, 내 빈자리는 커녕 아예 처음부터 나라는 존재가 없었던 듯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들만 기억하고 그 순간만이 존재했다. 화면상에 보이지 않는 사람까지 기억해주는 일은, 빠르게 채워지는 새로운 게시글들의 홍수속에서 매우 드문 일이었다.

누군가는 어떠한 일로든 내게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을런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가 불편했던 초반과는 달리, 나는 무덤덤해졌지만 나를 찾거나 연락할 지인들이 되레 불편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수신과 발신이 모두 차단된 이상 내가 연락을 받거나 부재중 통화기록을 확인할 길은 없다. 그저 짐작하거나,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제 나도 자포자기의 상태에 가까워졌다. 길거리를 나서도 언제든지 온라인 상태를 유지하던 일은 과거가 되어버렸다. 이젠 다시 스마트폰을 사용하던 이전의 시절로 되돌아온 듯 했다. 그 대신 이동 중이나 대중교통 이용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으니 책을 가지고 다니며 읽게 되었다. 이 습관은 거의 유일하게 긍정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더욱 중요한 것을 제쳐두고 SNS에 매달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다만, 사람들이 나를 잊어가는 것이 조금은 가슴 아팠다. 하지만 그것까지도 그저 투정에 지나지 않으리라. 내가 요금을 매달 지불하지 못했고, 그것은 정당하게 서비스를 누릴 자격이 없음을 뜻하는 것일테니까.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SNS와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못하는 불편함도 몇 달의 시간을 거치면서 옅어졌다.

단 한 사람, 한 분 남은 부모님인 아버지와의 연락이 원활하지 못한 것만은 못내 마음에 걸렸다. 이제 내가 공중전화를 찾는 경우의 대부분은, 아버지와의 전화통화였다. 전화가 정지된 것을 걱정하시는 아버지께 곧 해결하겠노라고 말씀드리며 안심시켜드리려 했지만, 내 상황은 점차 더욱 악화되어갔다. 그럼에도 형편이 어려우신 아버지께 솔직히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할 수는 없었다. 그럴 염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 덕분에 다시 돌아온 세상

빚을 갚는 게 최우선, 그 외 남은 최소한의 돈으로 숙식을 해결하는 나로서는 연체된 요금을 해결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새해가 되기 직전에 아버지께서 나 대신 대리점을 찾아 해결해주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연락? 몇 달만에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자, 그게 신기하고 또 겁이 났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게 왜 갑자기 울리는거지? 내가 드디어 미친건가?

받아보니 부모님의 전화였다. 군대를 다녀온 뒤로, 단 한 번도 도움을 청해본 적 없었던 아버지께서 24만 원의 요금을 대신 내주셨다는 말에 너무 죄송하고 또 감사했다. 빚을 갚느라 허덕이고 있는 자식을 생각하셨을 부모님 마음을 어찌 내가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래도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앞으로는 더 연락을 자주 드리는 아들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부끄럽지만, 덕분에 SNS의 세계에도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몇 달간 소식이 뜸했던 내게 지인들은 '다시 보니 반갑다'는 인사로 맞이해주었다. 그 이상은 물어오지 않았다.

다행히도 나는 잊혀지지 않았고, 다시 돌아왔다. 스마트폰이 없던 몇 개월간, 그 전보다 연락하던 지인이 줄어들긴 했지만 괜찮다. 그동안 오프라인으로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지인들의 수는 더욱 늘어났고, 온라인에서 시간을 보내는 습관이 줄어들면서 독서 등 다른 일을 위해 하루를 보내는 것이 더욱 익숙해졌다.

이제 더는, SNS 게시글의 새로운 댓글이나 카카오톡 알림음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게 되었다. 혹시나 본인이 SNS중독, 혹은 스마트폰 중독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단 며칠만이라도 서서히 시간을 정하여 사용하는 빈도를 줄여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 3개월, 스마트폰없이 지내면서 나는 잃은만큼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텍스트가 아닌 살아있는 표정과 함께하는 대화. 그리고 온라인생활과 별개인 나만의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함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태그:#스마트폰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