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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당시 스무 살이었던 나는 대학에 입학하고, 또래 남학생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1학년을 마친 뒤 군에 입대했습니다. 그리고 2년간의 군 복무 때문에 휴학을 한 후, 전역했습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1년만 더 휴학을 신청하려고 했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고등학생일 때 돌아가셨고, 당시 아버지께서는 경기침체로 대구에서 평생해 오던 안경 가게를 정리하는 중이었습니다. 1년간의 대학 생활을 아버지의 도움과 학자금 대출로 힘겹게 마쳤지만, 더 이상 집안에 부담되고 싶지 않았기에 휴학을 연장하기로 한 것입니다. 일하면서 돈을 모아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충당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휴학 연장을 위해 전화했을 때, 학교에서 돌아온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학교 측 : 휴학하시려면 등록금을 내고 하셔야 해요.
나        : 등록금 낼 형편이 안 돼서 휴학하려는 거라니까요.
학교 측 : 그러시면 학자금 대출을 받으셔야죠.

조금 황당했습니다. 등록금을 낼 돈이 없어서 휴학하고 싶다는데, 휴학을 위해서는 등록금을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조차 힘들다고 사정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느냐고 되물어 봐도 역시 같은 대답이었습니다. 결국 당장 일을 해야만 했던 저에게는 다른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학교는 저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제적했습니다.

한 달쯤 지났을까요. 재학 당시 담당 교수로부터 뒤늦게 전화가 왔고,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다른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았을 텐데..."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미 저는 퇴학 처분을 당한 뒤였기에 황당함은 더욱 커졌습니다. 담당 교수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시 학교다닐 생각이 있다면 입학금을 내고 재입학하면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저의 마지막 대학 생활이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 담당 교수에게 직접 상담을 요청하지 못한 것도 일정 부분 제 책임이지만, 스물 세 살의 어린 나이였던 저는 담당 직원이 "다른 방법은 도무지 없다, 휴학하려면 등록금을 내야만 한다"는 말만 믿었던 것입니다. 끝없이 돈을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대학교 생활은 가난한 저에게 '사치'라고 느껴졌고, 저는 결국 그 뒤로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청년구직자가 되었습니다.

6월 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주최 '2학기 반값등록금 실현 및 MB식 교육정책 폐기 전국대학생행동'에 참석한 대학생들이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6월 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주최 '2학기 반값등록금 실현 및 MB식 교육정책 폐기 전국대학생행동'에 참석한 대학생들이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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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년이나 지났을까요. 조금이나마 모은 돈으로 조그마한 가게를 동업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대 후반에 시작한 창업이었습니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모대학교 앞에서 소박하게 호프집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때까지도 바보 같을 정도로 순진했습니다. 2년 넘게 알고 지내던 지인과 시작한 동업입니다. 동업자와 가게 경영에 대하여 다른 견해로 사소하게 충돌하였고, 더 많은 경영권을 쥐고 있던 그에게 쫓겨나야 했습니다.

계약서, 변호사 공증?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저 사람을 믿고,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창업 전에 어른들이 '동업은 하는 게 아니다'는 말을 해주신 게 뒤늦게서야 기억이 났습니다. 그런 일들은 그저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나쁜 사람들이 저지르는 짓이겠거니, 내 주위에는 다 좋은 사람들이니 그런 일은 없겠거니 등등으로 안일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결국 비싼 대가를 치렀습니다. 제 나이 스물여덟 또, 다시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창업하느라 빚만 늘어났습니다. 저는 살아야 했습니다. 경남 통영에 내려가 조선소 생활도 해 보고, 여기저기서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2011년부터는 보안업체에 입사하여 올해 1월 말까지 일하다가 퇴사했습니다. 돈을 모으기보다는 이젠 제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부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던 저는 우연히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써 보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재미있는 일을 찾은 듯했습니다. 최근에는 <오마이스쿨-기자만들기>에도 참가했었습니다.

그때 날아든 날벼락, 학자금 대출 연체이자 독촉장

학자금 대출 독촉장
 학자금 대출 독촉장
ⓒ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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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170만 원 이상 받던 회사를 그만두고, 틈틈이 알바를 해 오며 원하는 공부와 글쓰기를 할 수 있기에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5월에 학자금 대출 연체이자 독촉장이 날아들었기 때문입니다.

창업과 실패 등등으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고, 창업으로 쌓인 빚을 갚기에도 벅찬 생활이었습니다. 그게 학자금 대출 상환을 미룬 변명은 안 되겠죠.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레 날아든 독촉장에는 '원금과 이자를 포함한 금액을 상환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 하겠다'는 무서운 단어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흔히들 하는 표현으로 '멘붕(멘탈붕괴)'였습니다. 겨우 빚들을 정리하고 내 생활을 찾는 가 했는데, 또 다시 빚더미 위에 앉게 된 것입니다. 학자금 대출 상환을 위해 가진 돈을 모두 송금해도 부족했습니다. 현재 제 통장 잔고는 만 원입니다. 단기로 하던 알바는 종료된 상태라 현재 무직입니다. 마냥 놀 수 없기에 육체노동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 삶을 살아오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을 두고, 다른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모두 제 책임이겠죠. 제가 경솔했고, 부주의했고, 바보 같을 정도로 지나치게 세상물정을 모르고 순진했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사정이 이리 어렵게 된 것은 순전히 학자금 때문만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등록금이 현 세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큰 시름이 되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저 역시도 그 등록금 때문에 퇴학처리를 당하고, 빚에 허덕이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대학 졸업은 필수라는 사회, 빚 되어 쌓이는 대학등록금

대한민국의 최고 재산은 '인재'라고 말하기도 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은 우수한 두뇌 양성이라며, 너도나도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치열한 교육체제 속에 뛰어들어 '공부만이 살길'이라는 풍토가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을 지배해 왔습니다.

그 사이 대학교 등록금은 매년 치솟았습니다. 교육 현실이나 교육의 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말이죠. 통계상 대한민국의 대학 등록금 인상률은 매년 10%를 웃돌면서 세계 1위, 등록금이 많은 것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보기)

그 사이 서민들은 오르는 물가와 대학 등록금에 힘겨워했습니다. 이를 반영한 듯이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반값등록금을 공약으로 선언합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2012년 대한민국에서 반값등록금 공약은 지켜지질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반값등록금이 시행 중인 대학은 '서울시립대' 딱 한 곳이고, 이것은 새누리당이 아닌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킨 공약 덕분입니다.

대학생들이 집회에 나서서 '반값등록금 공약 이행 촉구'를 요구하자, 정치인들은 '재정 확보가 어렵다', '대학 졸업자가 지나치게 많은 과잉학력이 문제', '꼭 대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취업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갑자기 딴소리합니다. 정작 반값등록금 공약을 걸었던 정치인들마저 이런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이제와서 '등록금 타령하지 말고 대학교에 가겠다는 욕심을 버려라'는 식입니다.

재정 확보가 정말 어려운가요? 충분한 검토 기간을 거치지 않아 실효성이 미지수였던 4대강 사업에는 거침없이 수십조 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던 정부입니다. 결국, 반값등록금을 위한 예산이 없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지금 당장 반값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힘들다면, 몇 년에 걸쳐서 점차 10%, 20%씩이라도 등록금을 지원해주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4대강 등 다른 정책들은 날치기 법안통과 등 불도저 같이 밀어붙이던 것과 다르게, 반값등록금 정책은 시도 자체를 꺼리는 듯이 소극적인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애초에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 자체가 진정성이 없었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부패한다지만, 정치인의 이런 빈말뿐인 공약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합니다.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 아니 최소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이라도 하는 정치인을 보고 싶은 것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정말 큰 욕심에 불과한 걸까요?

청년들에게 희망 되찾아주기, 반값등록금부터 시작해야

저는 대학교에 다시 입학할 생각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전히 제 형편은 대학교를 다니기에는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또, 대학교 교육을 받기보다 다른 길을 찾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값등록금 공약이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제가 직접적인 혜택을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반값등록금 공약이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 청년들은 꿈을 잃고, 그저 일자리를 위한 무한경쟁과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젊은 청춘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대학교 등록금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졸업 이후에 수천만 원의 빚을 떠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청년들에게는 '등록금 대출 청산'이라는 과제가 최우선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에게조차 미래가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다시 희망을 찾아주려면, 사회생활을 빚쟁이 인생에서 시작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반값등록금 공약의 실행은 대학생이라는 일부 계층만을 위한 일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이 등록금과 대출의 부담에서 벗어나면 소비를 더욱 활발히 할 수도 있을 테고, 이는 내수 경제에도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청년들이 취업만을 위해 달려가는 소득 없는 경주를 멈출 수 있게 된다면, 더 창의적인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는 정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 말에 동의합니다. 정치인의 작은 노력이 법과 정책을 만들고, 그것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아가게 하니까요. 그런 정치인이 이제 청년들의 세상을 바꾸는 것을 시작하면 어떨까요. 그것을 위해서, 저는 반드시 반값등록금 공약이 시행되어야 한다고 감히 주장합니다. 지금의 어딘가 침체한 듯한 대한민국, 왠지 모르게 우울한 부분을 감출 수 없는 현실을 바꾸어 나가려면 청년들에게 다시 희망적인 삶을 되찾아 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태그:#반값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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