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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선자님.

먼저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에 박 당선자님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아리고 아립니다. 아린 마음을 조금 추스린 후 편지를 씁니다. 5년 전에도 이명박 당선자에게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비록 지지는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대한민국 5년을 이끌어갈 대통령이기에 유권자와 시민으로서 간절한 바람을 편지로 씁니다. 어쩌면 이번 글이 박 당선자에 대한 축하와 기대가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은 쓴소리 듣는 자리, 비판에 귀 기울여야...

대통령이란 자리는 '쓴소리'를 듣는 자리이지,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를 듣는 자리가 아닙니다. 독재란 총칼로 시민을 다잡는 것만 아니라 쓴소리를 듣지 않고 대통령이란 권력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명박 정권은 총칼로 민주시민들을 억압하지 않았지만 비판하는 이들을 잡아갔고, 특히 언론들 밥줄을 끊었습니다. 쌍용자동차 해직 노동자처럼 생명을 끊는 노동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4대강은 밀어붙였습니다.

박 당선자님은 이명박 대통령을 반면교사 삼지 않으면 또 다시 민주시민은 저항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공권력을 이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권력이 아니라 쓴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5년 후 불행한 대통령으로 국민들 비판을 온몸을 받을 것입니다.

박 당선자님은 야당과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1470만명 대한민국을 먼저 안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문재인 후보가 내걸었던 공약과 그를 지지했던 1470만명 유권자들이 바라는 것을 과감히 수용해야 합니다. 그럴 때 박근혜 정부는 이전 정부와는 분명 다를 것입니다.

'독재자 딸' 벗는 길, 인혁당과 정수장학회 깔끔하게 해결해야

박 당선자님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독재자였습니다. 박 당선자님이 대통령이 되자 우리나라 언론들은 "첫 여성 대통령 탄생"이라고 추켜세웠지만 국외 언론들은 "독재자 딸, 대통령 당선"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날 <뉴욕타임스>는 서울발 기사를 내보내면서 '독재자(dictator)의 딸이 한국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제목을 뽑았다. 아울러 기사는 "한국의 최장기간 독재자의 딸(the daughter of South Korea's longest-ruling dictator)이 대선에서 승리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됐다"고 전했다. <LA타임스>도 이날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을 지배했던 독재자(strongman)의 딸이 양분되고 치열하게 전개된 대선에서 승리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됐다"고 보도했다.

통신사들 중 AFP 통신은 이날 새벽 "한국, 독재자의 딸 첫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이란 제목의 기사를, 또 로이터 통신은 "전직 군사 통치자(former military ruler)의 딸이 한국대선에서 승리했다"고 전했다. -22일 <오마이뉴스> "독재자의 딸 대선 승리" 외신의 이유있는 고집

 <타임>지 아시아판 최신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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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당선자님은 국외 언론이 '독재자 딸' 규정한 것이 듣기 싫을 것입니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독재자이기 때문입니다. 박 당선자님은 후보시절 몇 번이나 박정희 시절 자행했던 일에 대해 머리를 숙였지만 사실은 사과하는 '척'했을 뿐, 진심어린 사과는 없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인 정수장학회와 인혁당 사건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정수장학회를 깔끔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나와는 상관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이름부터 고쳐야 합니다. 인혁당 피해자 가족에게 찾아가 무릎꿇고 사죄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되었으니 정수장학회와 인혁당 사건을 어물쩍 넘어간다면 국민들은 후보시절 머리숙인 것이 그저 대통령이 되기 위한 '쇼'였음을 증명하는 일이기에 대통령 취임 전이라도 박정희 독재 유산 청산에 나서야 합니다. 노파심에서 드러난 말씀인데 혹여나 박정희 명예 회복같은 것은 꿈도 꾸지 마십시오.

문재인 후보 공약 과감히 도입해야

대통령이 되기 위해 수많은 공약을 내놓았습니다. 누리꾼들이 길거리에 내걸린 펼침막 공약을 사진으로 찍어 모았습니다. 혹시 내가 이런 공약도 했었나? 라는 생각을 하시면 안 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나는 반값등록금 공약을 하지 않았다"고 변명한 것처럼 하시면 안 됩니다.

많은 공약 중 "비정규직도 차별없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만 아니라 이 땅의 노동자들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진중공업 노조 간부가 "158억 원 손해바상 철회하라. 민주노조를 지켜야 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4강 외교도 해야 하고, 인수위 구성같은 당선자 업무가 너무 바빠 한 노동자가 목매 숨진 것은 아예 보고 조차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도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이들은 안아주지 않고 '국민대통합', '중산층 70%' 같은 공약은 헛구호일 뿐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당선자님 당선을 위해 온힘을 쏟았던 보수 언론은 벌써부터 복지 공약을 수정하라고 아우성입니다.

"박 당선인이 선거 기간 동안 국민행복시대를 내걸고 출산과 보육에서부터 노후 대비까지 모든 세대의 걱정을 절반으로 줄여주겠다고 약속하고 총 131조 원이 들어가는 201개 공약했다.… 당선인은 선거 기간 국민에게 '해주겠다'는 말만 했는데, 이제부턴 '참아달라'는 말을 함께 해야 한다"-20일<조선일보> 박근혜 당선인, 겸허하게 온 국민 껴안는 걸로 시작하라
"성장이 일정 수준으로 버텨야 복지도, 일자리도, 교육도, 민생도 개선할 수 있다"-20일 ,중앙일보>여성 대통령 박근혜…화려한 기록, 무거운 짐
"복지 공약의 우선순위를 따져 접을 것은 접고, 지켜야 할 것은 재원 확보 방안을 마련해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20일 <동아일보>朴 당선인, 국민통합과 위기관리의 巨人 되길

이들 주장은 한 마디로 경제가 어려우니 복지보다는 성장 우선 정책을 펴라는 말입니다. 그 동안 자본이 끊임없이 주장했던 논리입니다. 파이를 키우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입니다. 혹시 박 당선자님도 이들 주장에 동의해 복지 정책을 후퇴시킨다면 엄청난 저항에 받을 것입니다. 오히려 문재인 후보 공약을 과감히 도입해야 합니다. 이것야 말로 국민대통합입니다.

쌍차 노동자와 1470만 유권자 힐링해야

쌍용자동차 해직 노동자들에게 달려가야 합니다. 그들은 안아주어야 합니다. 그들 고통을 안아주지 않고, 어떻게 중산층 복원 운운할 수 있습니까?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1470만 유권자를 힐링해야 합니다. 특히 문 후보를 지지했던 이들은 2030세대가 많습니다. 이들은 박 당선자를 지지했던 5060시대보다 앞으로 살아갈 삶이 더 많습니다. 이들이 받은 충격은 심각합니다. 이른바 '멘붕'입니다. 이들을 위로해야 합니다. 치료해야 합니다.

이들은 지금 위로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요즘 표창원 경찰대 교수가 젊은이들을 위로하는 '프리허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표 교수와 프리허그를 하면서 울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번 대선 결과가 이들 젊은이들이 충격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한민국 미래를 짊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을 위로하고 보다는 오히려 지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주지 않으면 박근혜 5년 동안 끊임없는 저항 세력이 될 것입니다. 이는 박근혜 정부만 아니라 이들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했던 세력보다는 반대한 세력을 더 생각해야 합니다.

언론에 손 떼야

마지막으로 언론에 손을 떼야 합니다. 이명박 정권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인들 밥줄을 끊어버렸습니다. 이들을 하루빨리 복직시켜야 합니다. 무엇보다 다시는 낙하산 사장은 없어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언론은 권력을 비판하는 존재이지, 권력에 아부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비판하는 언론이 당장이 싫겠지만 오히려 박근혜 정권 성공 일등공신이 될 것입니다. 비판하는 언론 목소리를 들을 때에 정권은 고칠 곳은 고치고,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습니다. 당연히 대한민국은 발전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MBC를 'MB씨'로, KBS를 '김비서'로 만들었습니다. 이 비극은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끝나야 합니다.

박 당선자님은 MB씨를 MBC로, 김비서를 KBS가 될 수 있도록 측근이나, 박비어천가를 외치는 사장을 앉히면 안 됩니다. 권력은 비판받는 것이 숙명입니다. 그 숙명을 감당하는 것이 언론입니다. 언론에 재갈 물칠 생각은 아예 머리에서 지워야 합니다. 그리고 박근혜판 '미네르바'도 없어야 합니다. 이명박이 시절이 더 좋았다는 통곡이 없도록 인터넷과 누리꾼에게 비판하는 자유를 허락해야 합니다.

이런 바람이 이루어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해야 합니다. 하지만 않으면 우리 국민은 5년 후 또 한 명의 불행한 대통령의 마지막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태그:#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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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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