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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및 지방선거에서 당선자를 가장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곳'
'개표방송에서 '당선확정' 딱지가 가장 먼저 붙기 시작하는 곳'
'지게 작대기도 새누리당 간판만 달면 당선이 될 수 있는 곳'

제가 살고 있는 대구는 선거에 있어서 만큼은 너무나 확고한 신념과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다른 지역 사람들이나 누리꾼들로부터 '고담 대구', '동토의 땅'이라는 조소를 듣기도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대구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존심 상하고, 불쾌하기도 하지만 선거결과가 워낙 일방적이다 보니 딱히 반박할 여지가 없습니다.

대구는 여전히 새누리당의 색깔론이 가장 잘 먹히는 곳으로, 선거철이 되면 야당 후보는 여지없이 '빨갱이'가 되어버립니다.

지난 4·11 총선 때의 일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수성구에 김부겸 후보(현재 민주통합당 선대본부장)가 출마를 했습니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군포를 버리고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사지로 뛰어든 김부겸 후보는 특유의 푸근한 인상과 살가운 스킨십으로 유권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투표만 하면 오로지 새누리당 후보만 찍어왔던 저의 할머니도 김부겸 후보에게는 호감을 표시했습니다.

"할매! 김부겸 카는 사람 봤나?"
"그 노란색 잠바 있고 댕기는 사람 말이가? 그 양반 인상은 참 좋아 보이데."
"그라만 이번에는 2번 찍을 거가?"
"한번 보고, 손자 시키는 대로 하지 뭐."

선거일 전날 저는 다시 한번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매, 내일 투표하러 가가 2번 찍고 온네이!"
"……."
"할매, 고새 마음이 바낐나?"
"2번 그 사람 간첩이라 카던데."
"참 내, 누가 그런 소리 하더노?"
"동네 사람들이 다 빨개이라고 그카던데."

결국 할머니는 선거 당일 이른 아침에 1번을 찍기 위해 투표장으로 향했습니다.

야당 후보에 대한 섬뜩한 '색깔 공세'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둔 12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2가에서 열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유세에서 지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둔 12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2가에서 열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유세에서 지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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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도 대구는 여전히 '종북', '좌파', '친북', '빨갱이' 등의 단어로 표출되는 새빨간 색깔론이 그 어느 지역보다 사나운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식당이나 술집, 목욕탕 등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인 자리에서는 여지없이 야당 후보에 대한 섬뜩한 색깔 공세가 쏟아집니다.

"나라(NLL) 팔아 묵은 노무혀니 쫄병 하던 기 무신 대통령감이라꼬."
"문재인 저것도 우리가 쎄가 빠지게 번 돈 북한에 다 퍼줄 끼야."
"이정희 저거 우리 박근혜한테 말하는 거 좀 봐라, 빨개이라가 저래 독하다 아이가."
"빨개이들은 북한에 가가 총살을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이런 저주에 가까운 말들에 이어서 어르신들은 '박정희 대통령처럼 빨갱이들에게 나라를 구할 사람은 박근혜밖에 없다'며 박근혜 후보에 대한 신앙(?)과도 같은 지지를 보냅니다.

저는 세상 모든 논리가 색깔론으로 귀결되는 어르신들이 답답해 슬쩍 '박정희는 일왕(日王)에게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 하겠다며 충성 혈서를 쓰고 일본군이 되어 독립군을 때려잡았고, 남로당 활동을 한 공산주의자 전력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대거리를 하면 어르신들은 짐짓 저를 가르치듯 '그게 다 야당 같은 빨갱이들의 새빨간 공작'이라며 나무랍니다.

통상 젊은 사람들이 야당 후보를 지지하거나,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를 비판하면 어르신들은 화를 내기도 하고, 나무라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마지막에 꼭 이렇게 한마디 합니다.

"젊은 것들은 뭐를 잘 몰라가 그칸다."

실상 2030세대로 칭하는 젊은 층들은 6·25전쟁을 겪어보지 못했고, 생물학적 생존을 걱정해야 할 만큼 배가 고파본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치 떨리는 가난을 겪어야 했던 어르신들의 고통과 아픔이 어땠는지도 잘 모릅니다.

또 한편으로는 6·25전쟁으로 어르신들에게 아픔을 준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평화정책을 펼치려는 야당과 그 후보가 괘씸하고 미울 수 있다는 점, 그래서 그 감정을 대변해주고 북한을 적대시하는 여당과 그 후보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점도 이해가 됩니다. 어르신들의 그런 정서와 의사표현도 민주주의의 한 모습이기에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은 색깔론과 같은 구시대적인 냉전논리가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적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통한 '정의' 실현이 새 시대를 여는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는 새누리당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인 대구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구경북 젊은이들이여, 색깔론에 '반기'를 들어라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11월 30일 오후 대구광역시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에서 선거유세를 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시민들이 문 후보를 연호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11월 30일 오후 대구광역시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에서 선거유세를 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시민들이 문 후보를 연호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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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민주주의 꽃인 '선거'에서 젊은 세대가 이런 의사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는 투표율을 보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지난 17대 대선에서 연령대별 전국 투표율은 50대 76.6%, 60대 76.3%, 20대 46.4%, 30대 55.1% 등으로 2030 세대의 투표율이 5060 세대 보다 20% 이상 낮습니다.

대구 또한 50대 80.7%, 60대는 80.1%지만 20대는 52.4%, 30대는 58.4%로 역시 2030세대의 투표율이 현저하게 낮습니다. 비단 대선뿐만 아니라 모든 선거에서 젊은 층의 투표율은 많이 낮습니다.

선거결과에 젊은 세대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르신들의 의사가 시대정신이자 민심의 모든 것으로 왜곡될 수 있고, 그로 인해 역사의 흐름을 거꾸로 돌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색깔론'으로 대변되는 선거결과에 젊은 세대들이 반기들 들고 목소리를 제대로 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대구는 '색깔론'이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여 전국의 민심과 상당한 괴리가 있는 지역이므로 젊은 세대의 투표가 더욱 절실합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모두 미래를 이야기하고, 새 시대를 이야기합니다. 새 시대를 열 수 있는 첫 번째 과제는 바로 '색깔론'의 극복이며, 그 중심에 대구가 있고, 그 선봉에 TK 2030 세대가 서 있습니다. 민심의 균형추를 맞추고, 새 시대를 여는 대통령을 제대로 선출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들도 어르신들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와 새 시대를 투표로써 열심히 표현해야 합니다.

'우는 아이에 젖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시민들에게 '울음'은 바로 투표입니다. 2030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대구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12월 19일 투표가 새 시대의 탄생을 알리는 우렁찬 울음소리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태그:#제18대 대선, #투표, #색깔론, #문재인,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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