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다>의 네 주인공은 각각 어린 시절 크고작은 상처를 겪었다. 14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것들은 아물지 못하고 있다. 안팎으로 압박해오는 심리적, 상황적 공포가 여전히 산재해 있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의 사건들의 중심에 서 있는 네 주인공을 살펴봤다.

<보고싶다> 14년만에 다시 만난 한정우와 이수연. 그들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까.

▲ <보고싶다> 14년만에 다시 만난 한정우와 이수연. 그들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까. ⓒ MBC


한정우, 운명을 개척하는 능동적 에너지의 소유자

대개의 드라마들에서 남자주인공들은 매우 독립적으로 그려진다. <보고싶다>의 경우도 마찬가지. 한정우(박유천 분)는 아버지 한태준(한진희 분)의 그늘을 벗어났다. 평탄한 앞날이 보장된 생활을 박차고 나와 수연 모 김명희(송옥숙 분)와 같이 살아왔던 것이다.

그는 김명희, 김형사(전광렬 분)의 딸 김은주(장미인애 분), 이복동생 한아름(이세영 분)에게는 기둥같은 존재. 이수연(윤은혜 분)에 대한 죄책감으로 14년을 살아왔지만 세 사람과의 교류가 있어 안정된 정서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동료형사들과의 우정도 그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데 한몫하고 있다. 그는 '미친 토끼'라는 억센 별명을 가졌지만 주변을 생동감 있게 만드는 에너지의 소유자다.

이수연에 대한 죄책감은 그에게 가장 큰 문제다. 또한 폭압적 아버지 밑에서 자란 경험과 납치, 주변인들의 불행한 죽음 등을 겪은 터라 마음의 상처가 크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죄책감을 가진 행위들에 대해 도피할 구실을 찾거나 합리화하지 않고 운명에 당당히 맞서왔다. 이제 이수연을 만난 그는 그 능동적 에너지를 발산할 기회를 찾게 되었다.

<보고싶다> 강형준이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달라질 이수연의 모습과 그에 대응하는 강형준의 변신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 <보고싶다> 강형준이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달라질 이수연의 모습과 그에 대응하는 강형준의 변신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 MBC


이수연, 치유의 기회를 갖지 못한 14년, 극복할 방법 찾아야

그는 지난 14년을 강형준(유승호 분)의 우산 속에서 지냈다. 불안한 심리상태의 이수연이 재력과 강한 소유욕을 갖춘 그에게 극도로 의지하고 기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짐작케 한다. 한정우에 대한 원망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 등 참담한 심리상태에서 벗어날만한 환경이 전혀 조성되지 못했던 것.

이수연이 파리에서 귀국하며 공항에서 보여준 잔뜩 움츠러든 모습은 현재 그가 가진 심리상태를 말해준다. 다시 엄마를 만난 자리에서도 그는 죄책감과 불안감 등이 그대로 남아있음이 드러났다. 14년 전 살인범으로 몰린 아버지의 피해자들이 들이닥치자 죄송하다며 자책했던 그 모습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

그러나 강형준에게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한정우와 엄마 김명희의 헌신 뒤에 숨는 방법을 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불행을 자신의 내적 실패로 돌리는 경향을 극복하는 방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14년간 받지 못했던 온전한 사랑을 통해 치유의 과정을 밟아가는 것이 지금의 그에게는 최선책으로 보인다.

강형준, 골방에서 키운 복수심, 폭발력을 갖다

이 드라마에서 자기연민이 가장 강한 캐릭터가 바로 강형준(유승호 분)이다. 억울하게 죽은 엄마(차화연 분)에 대한 복수심은 그의 자아 조성에 한몫했다. 또한 돈이 가진 영향력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체득했기에 그것을 이용하는 데 거침이 없다. 

그 또한 이수연 못지않게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어린아이 상태로 남아있다. 복수심에 날개를 달아 준 그의 재력과 이수연이라는 존재는 그를 지탱해 준 두 가지였다. 그런데 이제 후자에 변화가 일기 시작하면서 그의 불안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예기치 않게 가정과 사회에서 거부당한 경험은 그를 소외감에 빠지게 했고, '사회화'되지 못한 애어른으로 자라게 했다.

그는 어린 시절 방에 갇히자 불을 내 탈출을 시도했고, 김형사의 죽음에도 관여했다. 그 외 여러 사건들에 그가 개입되었을 것으로 의심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문제를 폭력적 방법으로 푸는 것이 일상화된 것. 분노의 응어리가 응축되어 있는 상태로 여러 일들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니 않으려 하는 것도 그의 특징. 아직도 '골방'에 갇힌 어린아이 상태인 그를 구하는 것이 과연 누가 될까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보고싶다> 김은주는 아버지 김형사의 인간미와 유머를 그대로 물려받은 유쾌한 인물. 성인으로 넘어오며 그것이 잘 드러나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 <보고싶다> 김은주는 아버지 김형사의 인간미와 유머를 그대로 물려받은 유쾌한 인물. 성인으로 넘어오며 그것이 잘 드러나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 MBC


김은주, 어린 시절에 갇혀버린 캐릭터, 이제 불을 지펴야

<보고싶다>에서 가장 아쉬운 캐릭터다. 어린 시절의 그는 겉보기에 장난스럽고 때론 불량해 보이지만 정의감과 인정이 넘쳤던 아버지의 기질을 그대로 닮은 소녀였다. 그의 뜻밖의 죽음으로 커다란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이지만 왠일인지 성인이 된 후 이제 드라마에서 거의 소외되고 있다. 

극 전체를 아우르던 김형사의 인간미를 대신할 사람은 이제 고스란히 수연 모 김명희의 몫이 되었다. 이수연이 없던 14년을 한 집에서 보낸 한정우와 수연 모, 그리고 김은주 간에는 가족의 정이 생기지 않았을까. 그러나 모자처럼 보이는 앞의 두 사람에 비해 김은주는 이방인같이 겉도는 느낌만을 주고 있다.

김은주는 위의 세 사람에 비해 비교적 건강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 캐릭터가 중요한 이유는 그 건강함이 이 드라마를 지치지 않게끔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 어린 시절의 그를 생각해 보자. 한정우를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아했지만 무리하게 탐내지 않았고, 처음에는 이수연을 거부했지만 곧 그에게 연민을 보내며 진정으로 그를 포용하지 않았던가. 아버지 김형사의 의문의 죽음을 풀어가는 데 꼭 필요한 장치로서 이제 이 캐릭터에 불을 지펴야 할 이유다.

MBC 보고싶다 한정우 이수연 강형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