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팀 버튼 전' 기자회견에 참석한 팀 버튼 감독.

11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팀 버튼 전' 기자회견에 참석한 팀 버튼 감독. ⓒ 현대카드컬쳐프로젝트


기자회견 자리에서 유난히도 많이 '팬심'에 대한 고백이 이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1980년대부터 자신만의 어두운 판타지와 동화로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그의 영화를 보고 자란 관객들이 이제는 30, 40대가 되어버렸다. 팀 버튼 감독만큼 자신만의 기괴하면서도 독창적인 비전으로 전 세계의 대중과 오랜 동안 소통해 온 이도 드물다는 반증이다.

그런 팀 버튼 감독이 영화가 아닌 전시회로 처음 내한했다. 이른바 '팀 버튼 전'이 그 무대다. 12일부터 2013년 4월 14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팀 버튼 전'은 주요 작품의 원천이 되는 미공개 작품들과 소장품, 영화 관련 작품 860여 점을 전시하는 이색적인 기획이다. 2009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첫 선을 보인 '팀 버튼 전'은 아시아 최초이자 마지막 전시라 더 의미가 깊다.

'팀 버튼 전'은 1985년 <피위의 대모험>으로 데뷔해 <배트맨> <에드우드> <유령신부> <찰리와 초콜릿 공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으로 사랑받은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드로잉과 회화, 데생, 조각, 사진, 모형, 그리고 그의 초기 단편작품과 캐릭터 모형 등을 총망라했다.

"어린 시절의 감성"이 창작의 원천이라는 팀 버튼 감독. 답변과 함께 보여주던 풍부한 손동작이 인상적이었던 그는 "인생의 가장 놀라운 순간"이었다는 '팀 버튼 전'을 한국 관객에게 보여주는 일이 꽤나 흥분되는 눈치였다.

다음은 11일 열린 팀 버튼 감독과의 기자회견 일문일답 내용이다.

- 한국에서 마지막 '팀 버튼 전'을 개최하게 됐다.
"사실 대부분 대중에게 보여줄 의도가 전혀 없는 습작품들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더욱이 이번 서울 '팀 버튼 전'은 전 세계 마지막 전시라 내게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 개인적인 영감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느낌이 어떤지?
"작품들의 장르와 국가를 막론해, '팀 버튼 전'이 사람들에게 더 다가가고 연결이 되길 원한다. 일반적으로 미술관에 잘 가지 않는 대중들이 전시회에 오는 걸 보면서 그들도 내면에 있는 어떤 창의적인 감성이 일깨워지는 경험을 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대중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걸 보면서 나 또한 그런 감정을 받곤 했다."

- 이번 전시엔 오브제 등 수작업들이 많다. 하지만 최근 영화는 CG 작업이 주류를 이룬다.
"최신 트렌드는 디지털 효과나 애니메이션, 픽사가 잘 하는 디지털 애니메이션들이 최대한 활용되고 있다. 디즈니에서도 핸드메이드 기법과 최신 기술을 병행하고 있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톱모션도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런 기술들이 캐릭터를 훌륭하게 구현해주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정교하게 만든 핸드메이드 피겨(Figure)들을 확인하는 재미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직접 손으로 만든, 생명력이 없는 피겨 캐릭터들 각각에 어떻게 숨결이 불어 넣어졌는지를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디지털이든 피겨든 드로잉이든, 그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컴퓨터 기술이 각광받지만, 그와는 별개로 핸드메이드 작품들이 가진 맛은 분명히 존재한다." 

 11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팀 버튼 전' 기자회견에 참석한 팀 버튼 감독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대규모 전시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1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팀 버튼 전' 기자회견에 참석한 팀 버튼 감독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대규모 전시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현대카드컬쳐프로젝트


'팀 버튼 전'은 인생의 가장 놀라운 순간

- 상상력의 원천이 궁금하다. 이를 유지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이 무엇인가.
"내 경우, 어릴 적 느꼈던 감정들을 떠올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같다. 아이는 모든 게 처음이라 세상에 강한 흥미를 느끼면서 새로운 방식과 관점으로 사물을 본다. 반면 어른들은 여러 부분에 책임을 가져야 하고,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벨에 시달리는 가운데 순수한 감정을 잃어가게 되지 않나. 그래서 되도록 어릴 적 감정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 공개하지 않으려던 작품들도 많다고 들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큐레이터들이 수고가 많았다. 몇 년 동안 우리 집과 스튜디오를 방문해서 고고학자처럼 박스나 서랍을 뒤져 가며 내 모든 작품을 찾아냈다. 심지어 내가 그려놓고도 존재 자체를 잊고 있던 작품들까지 다 찾아내 전시회로 가져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제가 정리정돈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분들이 그렇게 찾아낸 작품들을 가지고 전시회의 전체 구조와 균형감을 잘 잡아줬다.

- 조니뎁을 비롯해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전시회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 
"전시를 보고 제가 놀랐던 것처럼 가족들이나 친구들 모두 굉장히 깜짝 놀랐다. 제 작품들이 'MoMA'에서 또 뉴욕에서 전시된다는 건 놀랍고도 초현실적인 사건이었다. 사실 인생을  살면서 놀라운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이 좋은 것 같은데, '팀 버튼 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놀라운 순간이었다."

 '팀 버튼 전'의 오브제 작품

'팀 버튼 전'의 오브제 작품 ⓒ 현대카드컬쳐프로젝트


책이나 미술관보단 영화에서 영감 받고 자라

- 전시에서도, 영화에서도 '악몽'은 주요한 소재인 것 같다.
"악몽이라고 해도 사실 특별한 의미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살면서 실제로 꾸는 꿈이나 실생활에 기반을 했다고 보면 된다. 예컨대, 잠자리에 들었을 때 '아, 내일 학교에 가야 하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나. 다른 사람들이 어떤 진 모르겠지만, 가기 싫은 친척집에 꼭 가야한다는 압력에 시달리는, 그런 일상을 악몽으로 묘사하곤 한다."

- 중요시 여기는 어릴 적 감정이나 꿈이 현재는 어떤 의미로 작용하나.
"살면서 많은 일들을 겪고 변하게 되는 감정들이 영화에도 똑같이 반영되는 것 같다. <빅피쉬>란 영화가 특히 그렇다. 그 영화를 찍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아버지가 주인공인 <빅피쉬>는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책임이 생기고, 새로운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감정들을 기반으로 작품들도 똑같이 변화해나가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어릴 적 영감들은 '어린아이로 남아있으라'라기 보다 '어린 시절 사물을 봤던 시각을 유지해라'에 더 가까울 것 같다."

- 팀 버튼 본인은 어떤 아티스트의 영향을 받았나.
"책이나 미술관보단 영화에서 영감을 받고 자라왔다. 개인적으론 괴물영화를 굉장히 좋아했고. 영화는 나만이 생각하는 나만의 예술 형태인 것 같다. 영화 속엔 꿈도 있고, 비주얼도 있고, 스토리도 있다. 이걸 묶어서 볼 때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런 영화를 내 업으로 삼아서 무척이나 행복하다."

-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또 창작 과정의 경험을 공유해 준다면?
"모든 작품을 볼 때 하나하나가 다 내 일부분인 것처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영화도 비슷하다. 영화 역시 만드는 과정을 즐기지만, 예술작업이나 영화나 일반대중에게 공개를 하고 나면 내 자신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런 점에서 전시는 영화를 공개할 때 감정보다 더 표현하기 힘들다. 예컨대, 어릴 적 애니메이터 시절에 디즈니사에서 거절했던 작품까지 다 끄집어내졌기 때문에 더 특별할 것 같다. 그래서 전시를 직접 둘러보면 내안의 하나하나가 전시되는 느낌이 든다. 그런 측면에서 종이에 그린 그림이든 오브제든, 하나를 꼽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팀버튼전 팀버튼 MOMA 뉴욕현대미술관 현대카드컬쳐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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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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