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주말드라마 <다섯손가락>의 유지호 역의 배우 주지훈이 28일 오후 서울 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SBS주말드라마 <다섯손가락>의 유지호 역의 배우 주지훈을 지난 11월 29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이정민


서로 죽도록 미워하고 괴롭힌 원수지간을 어쩔 도리 없는 모자지간으로 엮은 <다섯손가락>은 행복하게 끝을 맺을 수 없었다. 채영랑(채시라 분)은 유지호(주지훈 분)에게 어머니로 인정받았지만, 결국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죽음을 맞이했다. 이를 모른 채 웃으며 떠난 유지호에게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잔인했다.

'지독한' 모성애를 그린 드라마 <다섯손가락>이 끝난 후 만난 주지훈은 움켜쥐고 있던 손에서 힘을 뺀 느낌이었다. 그는 "차라리 더 심한 새드엔딩을 바랐다"고 말했다. 모자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며 극으로 치달았던 인물들의 감정이 더 이상 달려 나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승전결이 '위기'와 '해소'의 반복으로 이뤄졌다고 할 수 있었던 이 드라마에서 연기하는 것은 예상대로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극중 채영랑 때문에 매번 누명을 써야 했던 주지훈은 "제가 신문 1면에 몇 번 나왔는지 아세요?"라고 반문으로 유지호의 산전수전을 대신 답했다.

"극적인 긴장감을 주기 위한 위기가 계속 있었지만, 정말 세밀하게 쪼개지 않으면 같은 얘기가 반복되는 걸로 보여요. 저 역시 같은 연기를 하지 않기 위해서 시퀀스에 집중했어요."

 SBS주말드라마 <다섯손가락>의 유지호 역의 배우 주지훈이 28일 오후 서울 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지훈은 <다섯손가락>에서 어머니인 채영랑이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에 대해 "벌어진 사건도 너무 많고, 감정의 골이 깊어져서 갑자기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 이정민


엄마와 싸우던 지호, 실제로는 '살가운 아들' 지훈

드라마 <궁>(2006)으로 이름을 알리고, <마왕>(2007)에 캐스팅됐을 때만 해도 주지훈은 김지우 작가에게 '반신반의'한 배우였다. 하지만 <다섯손가락>의 최영훈 PD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캐릭터'로 주지훈을 '가장 적합한' 배우라고 점찍었다. 평가가 뒤집힐 때까지 5년, 인생 공부까지 톡톡히 하고 돌아온 주지훈은 특유의 무게감은 여전했지만, 감정 연기는 좀 더 섬세해졌다.

어머니에게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보이는 지호에게서는 증오와 연민이 동시에 느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정과의 싸움이었던 드라마 속 유지호와 달리, 실제로 주지훈은 '살가운 아들'이다.  

"제가 31살인데, 아버지가 결혼을 일찍 하셔서 연세가 53세밖에 되지 않으셨어요. 집안 자체가 독립적이에요. 어릴 때부터 저 사람이 내 아빠고 엄마이기 이전에 한 명의 남자, 여자라는 생각이 컸죠. 지금은 저 혼자 사니까 어머니가 일주일에 한 번씩 오시는데, 그때마다 둘이 데이트해요. 또, 아빠 친구들이랑 제 친구들은 같이 술도 잘 마시고요. 어릴 때는 조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할아버지랑 한 이불 덮고 잤어요."

 SBS주말드라마 <다섯손가락>의 유지호 역의 배우 주지훈이 28일 오후 서울 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다.

친엄마에게서도 버림 받은 외로운 캐릭터 유지호를 연기하며 주지훈은 "극중에서 '나여사'(차화연 분)가 가장 편했다"고 전했다. ⓒ 이정민


"특권층 아닌 연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보통 남자"

드라마가 끝났으니 이제 맘껏 독서를 할 수 있다. 책 읽는 걸 즐기는 주지훈은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 외에는 TV도 잘 보지 않는다. 필요 없는 정보 때문에 머리가 아파지는 걸 차단하기 위해서다. 소통을 위해 시작했던 SNS도 (애인이 아닌) 이성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누군가 '지금 여자 만날 때냐'고 훈계한 이후 접었다. 소통의 장이 아닌 굉장히 간편한 '컴플레인 게시판'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여기서 저를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SNS 상에서 사라졌다.

대신 주말 황금 시간대에 변장 없이 명동 거리를 활보하고, 느린 속도로 바이크 타는 걸 즐기면서 자기 방식대로 세상의 정보를 취한다. 주지훈은 한 선배의 조언을 곱씹었다. '네가 연기하는 게 사람이냐? 그럼 그냥 사람처럼 살아'

 SBS주말드라마 <다섯손가락>의 유지호 역의 배우 주지훈이 28일 오후 서울 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SBS주말드라마 <다섯손가락>의 유지호 역의 배우 주지훈이 28일 오후 서울 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 이정민


"전 그냥 욕도 잘 하고, 아직도 중학교 때 친구들 만나서 노는 보통 남자예요. 연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사람이지, 연예인이라고 해서 특권층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전 '국민의 알 권리'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해요. 권리가 있으면 나에게는 사생활을 내놔야 하는 의무가 생기잖아요. 연예인이 '공개된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어느 정도 사회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공무원과 같은 공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계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주지훈이 가장 명확하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은 앞으로의 계획이다. "재밌는 일을 하고, 꽂히는 작품을 하겠다"는 그는 당장은 영화나 드라마보다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운이 좋으면 한적한 시골 도로에서 느린 속도로 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주지훈을 발견하게 될 수도.  


주지훈 다섯손가락 유지호 마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