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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학교에서 손호철 교수를 만났다.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학교에서 손호철 교수를 만났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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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했다. 겉으로 '새정치선언'이라고 했지만 그 내용과 과정을 보면 낡은 정치의 전범이었다. 단일화 룰협상 파행됐다가 정상화됐는데,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들도 신바람이 나기보다는 '짜증에서 안도'로 바뀔 뿐이었다."

단일화협상 파행을 되돌려놓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새정치 공동선언문'을 내놓았다. '다행이다, 정권교체 드라마의 시작'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발표 다음날인 19일 오후, 이 선언문을 놓고 대표적인 진보 정치학자 손호철 서강대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손 교수는 이 선언문이 두 가지 이유에서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밀실협상이라는 점과 단일화를 통해 축제를 만들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겉으로 '새정치선언'이라고 했지만 낡은 정치의 전범"이라며 "지켜보는 국민들도 신바람 나기보다는 '짜증에서 안도'로 바뀔 뿐이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말했다.

"(선언문은) 민주통합당이 급해서 안 후보의 투정에 양보한 것, 항복한 것"이라며 "안 후보는 CEO 입장에서 정치를 나쁜 것, 잘못된 것, 비효율적인 것, 없애야 하는 것, 기술로 풀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민주통합당 인적 쇄신 없이 안 후보와 정치개혁? 누가 믿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18일 저녁 서울 중구 정동 달개비에서 긴급회동을 갖고 야권 후보단일화 협의 재개에 합의한 뒤 악수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18일 저녁 서울 중구 정동 달개비에서 긴급회동을 갖고 야권 후보단일화 협의 재개에 합의한 뒤 악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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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문재인 후보에게도 쓴소리를 남겼다. 그는 "제일 중요한 인적청산을 하지 않고 안 후보와 정치개혁 한다면 누가 믿나"며 "(단일화 협상 중단의) 원초적 책임이 문 후보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제3후보 안철수 후보에 대해서 그는 "안철수 현상이 일어난 핵심은 진보정당의 실패에 있다"며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두 당의 이념적 거리가 멀지 않은데 그 좁은 틈으로 안 후보가 들어오면서 대선 담론구조가 더욱 협소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정책 스펙트럼을 오히려 좁혔다는 점에서 냉소적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내린 위수령으로 연행되거나 강제 징집된 학생운동 리더 180여명이 만든 '71동지회'의 멤버다. 그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거리에서, 강단에서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 운동을 펼치고 있다.

손 교수는 "진보정당 세력은 실패했지만 정책은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 진보정당이 주장했던 정책을 이제 새누리당도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 교수는 "(유의미한) 진보 후보가 없는, 사실상 진보세력이 배제된 상황에서 아무런 논쟁도 없다는 점에서 이번 대선은 비극"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공학적으로도 진보정당은 중요하다"며 "권영길의 등장으로 노무현의 중도성이 부각되면서 당선됐던 것처럼 내용으로도 사회경제적 이슈나 복지국가 논쟁도 가능하지만 이번에는 단일화 이슈에 민생 문제가 묻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 축소가 민생과 직접적으로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다음은 손호철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18일 발표된 새 정치 공동선언문, 전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나.
"후보들 스스로 지적하듯 과정이 중요했다. 하지만 두 가지 점에서 실패했다. 하나는 새 정치의 씨앗을 만들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단일화 과정은 밀실협상이었다. 단일화 과정에 지지 세력을 동원하고 시민을 참여하게 해야 하지만 소속도 없는 사람들 캠프에 모아 놓고 몰래 앉아서 티격태격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국회의원 정수 조정과 같이 토론이 필요한 문제는 국민들 앞에서 드러내놓아야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단일화를 통해 국민들에게 흥겨움, 희망을 줘야 한다는 점이다. 지지층을 확대하고 정치가 축제가 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했다. 겉으로 '새정치선언'이라고 했지만 그 내용과 과정을 보면 낡은 정치의 전범이다. 지켜보는 국민들도 신바람 나기보다는 '짜증에서 안도'로 바뀌었을 뿐이다. 봉합이 됐으니 다행이라는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 핵심 쟁점이던 국회의원 정수와 관련해 선언문에는 '조정'인데, 사실상 축소의미로 보인다. 이를 포함해 중앙당 권한·기구 축소, 국고보조금 축소 등 세부적인 쇄신안은 어떻게 보나?
"모호하게 절충한 측면이 있다. 안철수 후보의 정치 개혁안의 핵심이 반영된 것이다. 민주통합당이 급해서 안철수 후보의 투정에 양보한 것, 항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선언문에는 전반적으로 안 후보의 반(反)정치적인 흐름이 반영됐다. 안 후보는 CEO 입장에서 정치를 나쁜 것, 잘못된 것, 비효율적인 것, 없애야 하는 것, 기술로 풀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쉽게 이야기하면 '한국 정치는 바이러스니까 백신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멘탈리티가 반영된 것이다. 우려스럽다."

"'한국 정치는 바이러스니까 백신 치료해야 한다'는 멘탈리티 반영"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덕성여대 종로캠퍼스에서 열린 '18대 대선후보 정책비교 토론회'에 손호철 서강대교수가 발언을 하고 있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덕성여대 종로캠퍼스에서 열린 '18대 대선후보 정책비교 토론회'에 손호철 서강대교수가 발언을 하고 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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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대목에서 그렇게 느꼈나.
"정치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서는 안 된다. 대중을 따라간다면 정치가 왜 필요한가? 여론조사만 하면 된다. 정치는 대중을 이끌어 가야 한다. 국민의 문제의식은 수용하되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고 국민에 의한 통제를 강화하면 된다.

국회의원 세비 인상에 분노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일괄적인 월급이 아니라 위원회 참석 횟수에 비례해 계산하는 식으로 해야 한다. 단순히 국회의원 수를 줄여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숫자가 줄어들면 권한은 더 커지고 엘리트화·특권화할 수밖에 없다.

또 중앙당을 약화시키면 정책 발굴은 누가 하나? 정당의 정책기능이 없어지고 결국 정치는 국회의원, 정치 엘리트들의 사교 모임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 인사권의 남용도 물론 막아야 한다. 하지만 선거 참모한 사람들 데려다가 자리 나눠준다고 비판하는 것은 순결적인 사고다.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향으로 고민해야 한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줄이면 관료는 누가 통제할 것인가. 관료 통제가 안 되면 대통령은 허수아비가 된다. 모피아, 공안기관, 검찰이 대통령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아무리 개혁적인 대통령이라도 관료들에 포위돼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관료들한테 포위돼 개혁 마인드가 사라진 점이 있다."

- 과정, 내용 다 문제가 있다, 기대 이하라고 했는데 애초 기대를 했나.
"처음에는 기대했었다. 민주통합당이 총선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했을 때 변할 줄 알았다. 이제는 좀 약이 되겠구나 하는 기대였다. 그런데 쇼도 못하고, 변하는 척도 못했다. 빨갱이라면 두드러기가 돋을 새누리당이 빨간 옷을 입고 나왔다. 민주통합당은 그런 쇼도 못한다. 기대 이하다.

안 후보도 공익적 리더십의 경험이 있어서 기대했다. 하지만 정치 개혁안을 발표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더 충격 받았던 것은 그 이후의 대응이었다. 국회의원수 축소에 거센 반발이 일었다. 오죽하면 최장집 교수가 500석으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을까. 교수 한두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여러 사람이 말했으면 귀담아 듣고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까 반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안 후보는 이를 '기득권층의 반발'이며 '대중을 우매하다고 보는 것'이라는 식으로 나오더라. 정말 위험한 발상이다. 히틀러의 대중선동에 가깝다고 느꼈다. 대중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새 정치를 바란다면 대중의 메시지를 읽는 것과 구체적인 개혁 방안은 달라야 한다."

"불행한 것은 안철수가 보수 양당의 중간에 있다는 점"

17일 오후 여의도에서 열린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한 조합원의 아들인 초등학교 4학년 조용균군이 후보단일화 문제로 갈등 중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 사이에 서서 양 후보의 손을 잡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있다.
 17일 오후 여의도에서 열린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한 조합원의 아들인 초등학교 4학년 조용균군이 후보단일화 문제로 갈등 중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 사이에 서서 양 후보의 손을 잡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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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후보는 소통의 리더라는 소리를 듣는데.
"소통이기보다 설교였던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박근혜 후보, 안철수 후보에게서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열려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성공한 사람이라 내가 옳다고 확신하는 것 같다."

- 굉장히 잘못되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정치 개혁이 필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 과정이 반(反)정치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비용도 있고 부작용도 있는 것이다. 본말이 전도된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식 정당명부제 비례대표는 정당정치를 활성화시키고 정책경쟁을 유도한다. 사표를 없애고 지지율에 따라 의석수가 직접 반영된다.

과거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얻은 13% 투표율은 독일식이라면 30석이어야 한다. 하지만 반도 안 되는 10석을 얻었다. 2008년 총선에서 진보신당이 2.9%를 얻었지만 비례대표는 한 석도 못 얻었다. 독일식으로 2.9%면 9석이다. 반면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비례대표에서 42%를 득표했지만 지역구를 포함해 50% 넘는 의석을 갖고 있다."

- 안철수 후보의 말 한 마디에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사퇴했다. 민주통합당 문제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 달라.
"문 후보가 해야 할 최대의 과제는 다른 게 아니라 민주통합당의 혁신이었다. 지난 총선 이후, 민주통합당하면 사람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이해찬 당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 등 인적 청산이 중요했다. 제일 중요한 걸 하지 않고 문 후보가 안 후보와 함께 정치개혁 한다고 하면 누가 믿나. 원초적인 책임, 문 후보에게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안 후보도 좀 더 적극적으로 민주통합당 개혁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어야 했다. 안 후보는 이 문제는 하나도 제기 안 하다가 (민주통합당 내에서)양보론 나왔다고 해서 협상 중단했다."

- 한국 정치에서 제3후보는 필연적인 거라 보나.
"1990년에 3당 합당을 하고 나니까 PK의 야권 유권자는 찍을 사람이 없어졌다. YS찍기에는 찜찜하고 DJ찍기에는 지역주의 때문에 싫으니까 그게 제3의 후보의 뿌리가 됐다. 이제 진보정당이 나와서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진보정당은 스스로의 잘못에 의해 좌초됐다. 안철수 현상의 핵심은 진보정당의 실패에 있다.

불행한 것은 안 후보가 보수 양당의 중간에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진보정당이 양당 구조를 깨고 진보적인 대안을 제시해왔다.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두 당의 이념적 거리가 멀지 않은데 그 좁은 틈으로 안 후보가 들어오면서 대선 담론구조가 더욱 협소해졌다. 때문에 세 후보의 정책의 70%가 같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안 후보가 정책의 스펙트럼을 좁혔다는 점에서 냉소적으로 본다."

"대선 1:1 대결될 것...그게 옳은 방향은 아니다"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학교에서 손호철 교수를 만났다.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학교에서 손호철 교수를 만났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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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대선에서 진보정당의 진로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나.
"큰 틀에서는 야권 단일화에 포함될 거라고 본다. 통합진보당이 문제다. 민주통합당이 표 떨어질까 봐 안 받아줄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딜레마가 생길 텐데, 통진당은 정권교체라는 명분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기치를 내릴 것이라고 본다.

전체적으로는 1:1의 대결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게 옳은 방향은 아니다. 최근 세 번의 대선에서 진보 후보가 있었다. 1997년부터 2002년, 2007년까지 모두 진보정당의 독자 후보가 있었다. 2007년에는 큰 표 차이로 졌지만 단일화를 안 했어도 1997년과 2002년에는 김대중, 노무현 자유주의 세력이 승리했다. 자유주의 세력이 진보세력과 연합을 안 해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공학적으로도 진보정당은 필요하다. 권영길의 등장으로 노무현의 중도성이 부각되면서 당선됐던 것처럼 내용적으로도 사회경제적 이슈나 복지국가 논쟁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일화 이슈에 민생 문제가 묻혔다.

진보정당이 주장했던 내용들을 이제 새누리당에서도 말하지 않나? 진보정당은 세력으로는 실패했지만 정책으로는 승리했다. (유의미한)진보 후보가 없는, 사실상 진보세력이 배제된 상황에서 아무런 논쟁도 없다는 점에서 이번 대선은 비극이다. 국회의원 축소가 민생과 직접적으로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냐?"

- 손 교수는 진보정당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왔다. 대선 이후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진보정당에 조언을 한다면.
"진보정당은 대중 정치인, 활동가, 당원, 일반 대중, 4계층의 선순환을 만들지 않으면 실패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진보정당은 활동가 중심이다. 이들이 정파가 돼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는 정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활동가들은 당의 중요한 자산이지만 그들이 중심이 되면 대중을 계몽하려는 전위정당이 된다. 현재의 진보정당은 해체돼야 한다. 유시민의 국민참여당계, 안철수 후보측과 민주통합당이 통합해서 하나의 자유주의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나머지 진보정당은 현재 이념적으로 갈라져 있다. 현실적으로 통합진보당과 새로 만들어야 할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 두 개의 진보정당이 인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 달라.
"긴 호흡으로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 1997년 대선 당시의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절박감과 지금의 절박감을 비교해보자. 그때도 진보의 활발한 논쟁이 있었고 진보정당이 독자적인 길을 갔다. 그래도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풍부한 역사적 상상력을 가지고 높이, 그리고 멀리 봤으면 좋겠다."


태그:#손호철 교수, #안철수 후보, #문재인 후보, #새정치 공동선언문, #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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