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 줄거리가 담겨 있습니다.

버릴 수 없는 편지가 있어요. 제겐 지울 수 없는 기억들이 있어요. 그 사람과의 먼 거리의 공백을 채우는 것은 편지지를 가득 메운 문장들이었어요.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부메랑처럼 다른 글씨의 모양과 다른 편지지의 색깔을 가지고 제게 돌아와요.

그것을 읽고 읽으면 어느새 그 사람과 나를 갈라놨던 공간들은 어디론가 스며들듯 사라져요. 책꽂이 한편에 놓아둔 그 사람이 전해줬던 시집의 첫장을 아주 가끔 보게 돼요. 제법 유치한 문장들이 그때의 기억들을 생생하게 되살리게 해요. 그러나 전 그 시집 첫 장을 오래 펼쳐 놓기를 매번 실패해요. 두려웠거든요. 그때를 떠올리기가 고통스러웠나 봐요. 아직도 전 이유를 알 수 없어요. 왜 우리가 서로에게서 다시 머나먼 공백을 더하게 됐는지를. 한 번도 연락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그때는 왜 그래야만 했는지도 묻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그게 서로를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했나 봐요. 하지만 문득 전 그와 함께했던 그 공간들을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무심코 스쳐 지났던 것을 기억해요. 그때 그 공간들은 제겐 제법 멀게만 느껴졌었는데 이젠 제가 그 공단들을 제 거친 숨소리로 채우고 있어요. 왜 그랬을까요?

영화 <남쪽으로 간다>를 보며 오랜만에 그 사람이 생각났어요. 우린 더 나아갈 수 있었을까요? 그때 심장이 멎을 만큼 뛰는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봤을 때 누군가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더라면 지금은 어땠을까요? 제겐 그것이 금지된 욕망이었나 봐요. 발현할 수 없는 것들 말이에요. 남들이 모두 다 그렇다고 하는 곳으로 흘러 흘러 이곳까지 왔는데 가녀린 슬픔의 기억들은 결코 사라질 기새가 없네요.

금지된 욕망이 발현들

 목을 옥죄하는 포비아

목을 옥죄하는 포비아 ⓒ 시네마달


기태(김재흠)는 오로지 혼자서 금지된 욕망들을 하나하나 발현해 나가요.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들밭 옆을 스쳐지나가는 강한 바람인지도 몰라요. 아니면 무심히 파란 하늘, 누런 진흙길. 그것도 아니라면 그 사람 준영(전신환 분)의 채취였을까요? 그 발현들은 하나가 다 불온한 것들이에요. 금지된 표지판이 보이고 밭 한 구석에서 소변을 보거나 맥주를 한없이 들이키며 길을 운전해 나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다음 것들에 비하면. 그는 귀대를 앞둔 군인이며 반드시 군에 복귀해야만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는 북쪽으로 내달려야 하는데 오히려 차를 반대로 몰고 있어요. 그곳은 남쪽. 둘만이 이야기했던 그곳으로 가려고 해요. 그 어떤 사람도 인정할 수 없는 사랑의 실현을 위해서 금지된 약을 투여하며 금지된 행동을 서슴지 않으며 그날이 마지막인 것처럼 남쪽으로 가요.

아마도 그는 사랑하는 준영과 이별을 고하기 위해 떠났을 거에요.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준영이 야속하게만 느껴졌겠죠. 확인하고 싶었을 거에요. 그때 그가 말했던 '야옹'의 울부짓음이 사실이었는지를.

"사창가에서 뒹구는 것도 사랑이냐?"라는 말을 준영에게서 듣기 전까지 기태는 믿고 싶었을거에요. 자신만의 사랑이 아니였다고. 하지만 기태와 준영의 공백은 그들을 향한 생각의 거리만큼 작지 않아요. 아주 멀리 온거죠.

"다 그럴 수 있어. 누구나 군대에서는 외로우니까."

준영은 기태가 사실 얼마나 외로워 했는지 알지 못해요. 전화해도 받지 않고 전역해서 나 몰라라 하는 기태로 인해 준영은 아주 많이 외로웠는데 말이죠.그래서 그 외로움의 끝을 향해 가보려고 하는 거에요. 욕망과 세상도 모두 끝나는 곳에 말이죠.

 멍하고 혼란스런 기태의 눈빛

멍하고 혼란스런 기태의 눈빛 ⓒ 시네마달


기차를 타면 그 열차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살펴보게 돼요. 아주 길게 눈을 감고 그곳까지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제 기차표에 활자화된 종착지보다 그곳은 제게 더욱 더 매력적인 곳이에요.

하지만 한번도 전 그 매력적인 곳으로의 모험을 실행해 본 적이 없어요. 아마도 전 무척이나 나약한 사람인가 봐요. 처음부터 전 기태가 남쪽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기태의 눈빛이 흔들리는 바람에 무장해제됐을 때, 그의 알몸이 진흙길에서 송장처름 길게 누워져 있을 때 분명 기태가 갈 공간은 남쪽이라고 생각했어요.

모든 이가 그것이 옳다고 말하는 북쪽은 그에게 이제는 매력적인 공간이 아니거든요.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하는 준영과의 거리가, 그 공백이 더 커졌을 때 기태는 다시 돌아가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돼요. 그래서 떠나는 준영의 뒷모습을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기태의 모습은 처연하게 아려와요.

순간 모든 것들이 흔들리기 시작해요. 바람·구름·하늘·그의 몸·카메라. 사실 카메라는 흔들리지 않았지만 전 그랬다고 생각해요. 모르겠어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싶은 것처럼. "나는 신나게 춤추며 살거다" 그것이 욕망의 끝, 세상의 끝인 남쪽이든 어두운 터널의 한가운데든 상관 없어요. 그는 신나게 춤만 추면 되요. 흔들리는 그의 몸짓. 전 들리는 것만 같았어요. 그의 속삼임.

'난 남쪽으로  갈거야.'

금지된 욕망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발현되는 것이죠.

 진흙탕길에서 맨몸을 드러내는 기태와 준영

진흙탕길에서 맨몸을 드러내는 기태와 준영 ⓒ 시네마달


그리고 블랙아웃. 전 45분이라는 시간이 무척이나 짧다고 생각했어요. 기태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거든요. 가녀린 몸에서 서사의 문장들의 옷을 입혀주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그것이 다에요.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고 전 목이 잠겼어요.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포비아를 견디고 살아가야 하는 기태의 몸사위가 제겐 몸서리치듯 다가왔어요. 그러니 움직일 수 있는 상황도 되지 못했어요.

헌데 이상한 것은 제 몸이 신나게 춤을 추고 싶다는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에요. 춤을 춘다는 것은 음악에 몸을 맡긴다는 것만이 아님을 기태를 통해 알 수 있었잖아요. 그리고 다음에는 기차를 타야겠죠. 자 이제 오랫동안 눈을 감고 두 팔, 두 다리를 길게 늘어트리면 되요. 왜 그러냐고요? 한 번도 실행해보지 않았던 매력적인 곳, 남쪽으로 가보기 위해서에요.

시네마달 김재흠 전신환 이송희일 남쪽으로 간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6 전주국제영화제 관객평론가 2008 시네마디지털서울 관객심사단 2009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관객심사단 2010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

이 기자의 최신기사 '물안에서' 이미 죽은 이의 꿈
top